[기원상컬럼]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란 무엇인가

  • ― 통계가 끝나는 지점에서 정치는 시작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종로구 통인시장을 찾았다. 소머리국밥을 먹고 유자차를 마시며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이렇게 말했다. “정책 성과는 통계가 아니라 국민의 일상에서 확인돼야 한다.” 이 장면이 주목받은 이유는 전통시장 방문이라는 형식 때문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오래도록 해 온 질문을 꺼냈기 때문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무엇인가.
 
 
한국 경제는 늘 이 질문 앞에서 갈라져 왔다. 수출은 늘고, 성장률은 개선되고, 주가는 오른다. 통계는 호전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바구니 물가와 월세, 외식비 앞에서 체감은 다르다. 이 괴리는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신호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저녁 식사를 위해 방문한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상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저녁 식사를 위해 방문한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상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밥 한 끼 먹어보면 안다’는 말은 감성적 수사가 아니다. 경제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총량과 평균의 언어가 아니라, 하루 매출과 고정비, 손님 수의 변화에서 경제를 보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방향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그 방향을 어떻게 정책으로 구현하느냐에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통계와 체감은 대립 관계가 아니다. 통계는 현실을 가리는 숫자가 아니라, 현실을 집계한 결과다. 다만 지금의 통계는 국민의 체감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평균 성장률은 올랐지만, 그 성장이 어디서 시작됐고 누구에게 먼저 도달했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체감 경기의 핵심은 ‘얼마나 성장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언제, 무엇을 통해 변화를 느끼는가’에 있다.
 
 
이 점에서 체감 경기를 강조하는 정치적 메시지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메시지에서 정책으로 넘어가는 구간은 훨씬 더 냉정해야 한다. 체감은 말로 설득되지 않는다. 시스템이 바뀔 때만 움직인다. 외식비 부담이 줄어들고, 집세와 금융비용이 낮아지고, 소비 여력이 회복될 때 체감은 뒤따른다. 현장 방문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감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조를 읽기 위해서다.
 
 
해외 사례들이 주는 교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정부들은 성장률 방어보다 생활비 압박을 완화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옮겨왔다. 수수료 규제, 요금 상한, 보조금 정책은 모두 체감의 급격한 붕괴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 다만 이들 정책은 어디까지나 ‘방어선’이었다. 체감을 안정시키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체감을 끌어올리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감 경제 정책은 단기 처방과 중장기 구조 개혁을 구분하지 않으면 곧 한계에 부딪힌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대기업 실적 회복이 지역 상권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지는 않는다. 낙수 효과는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임금 구조, 고정비 부담, 소비 여력이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체감은 생기지 않는다. 대통령이 식당 사장에게 던진 질문이 정확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그 답이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체감 경기를 정책의 중심에 놓겠다면, 몇 가지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낮출 것인지, 어디서부터 바꿀 것인지, 어느 계층이 먼저 변화를 느끼게 할 것인지가 제시돼야 한다.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말은 정치의 언어로는 충분할지 모르지만, 정책의 언어로는 부족하다. 정책은 언제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반복성이다. 현장은 한 번 방문하고 끝나는 장소가 아니다. 들은 이야기가 어떤 정책으로 이어졌고, 그 정책이 다시 현장에서 어떻게 평가받는지가 연결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장은 곧 사진을 찍는 장소로 소진된다. 체감 경제는 상징이 아니라 과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한식당에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저녁 식사를 하며 식당 주인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한식당에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저녁 식사를 하며 식당 주인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통계는 여전히 중요하다. 국정은 숫자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가 다뤄야 할 영역은 통계가 끝나는 지점 이후다. 숫자가 설명하지 못하는 삶의 속도와 부담을 어떻게 정책으로 번역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경제가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결국 국민의 일상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 인식이 실제 구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가. 그 평가는 다시 현장에서 내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 국민은 통계가 아니라, 자기 삶의 변화로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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