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통상 압박이 다시 다층화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브라질·중국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하고, 아시아 국가들의 ‘과잉생산’ 문제에 대해서도 조사 착수를 예고했다. 상호관세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122조·301조·232조 등 다양한 법적 수단을 동원해 관세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문제는 그 조사 범위에 한국이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된다는 점이다. 미국의 주요 무역적자국이자 철강·배터리·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서 비중이 큰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통상의 본질은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그러나 그 충돌을 관리하는 데에는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는 예측 가능성, 둘째는 상호주의, 셋째는 규범 기반 질서다. 최근 미국이 강조하는 ‘불공정 관행’이나 ‘과잉생산’ 개념은 해석의 폭이 넓다. 객관적 기준보다 정책 판단의 비중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투자와 공급망 전략에 불확실성을 더할 소지가 있다.
한국의 대응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가야 한다.
첫째, 원칙을 분명히 하되 협상의 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한국은 자유무역 질서의 수혜국이다. 일방적 조치에는 필요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되, 동시에 실무 협의를 통해 쟁점을 구체화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논의를 유도해야 한다. 과잉생산이 문제라면 산업별 수급 현황과 글로벌 투자 계획을 투명하게 제시해 객관적 근거 위에서 논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둘째, 한미 경제안보의 상호의존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은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와 고용 창출에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 배터리·반도체·자동차 분야의 투자 사례는 단순한 무역수지 수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적 연계를 보여준다. 한국을 일방적 흑자국으로만 보는 시각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셋째, 통상 이슈를 산업 고도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정 품목이 조사 대상이 될 경우 단기적 부담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고부가가치화와 기술 경쟁력 제고, 시장 다변화를 촉진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는 피해 최소화 대책과 함께 산업 체질 개선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넷째, 국내 여론 관리 또한 전략의 일부다. 통상 갈등은 쉽게 ‘굴욕’과 ‘강경’의 이분법으로 흐른다. 그러나 외교와 통상은 냉정한 계산의 영역이다. 정치적 구호보다 장기적 국익과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이 우선해야 한다.
관세는 숫자이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의 문제가 놓여 있다. 힘의 논리가 강화될수록 중견 개방국의 전략은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기존 협정과 제도적 틀을 최대한 활용해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사와 보복의 악순환은 누구에게도 이익이 아니다.
한국은 감정이 아니라 원칙과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 규범을 존중하되 현실을 직시하고, 갈등을 관리하되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 그것이 통상의 기본이며, 원칙이고,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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