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늘 위기의 언어로 시작한다. 그러나 모든 위기가 같은 결말로 향하지는 않는다. 어떤 위기는 균열을 낳고, 어떤 위기는 지도자를 만든다. 지금 국민의힘이 서 있는 자리는 분명 위기의 자리다. 강성 지지층에 갇힌 구조, 수도권 확장력의 약화, 그리고 바깥에서 날아드는 개혁 보수의 압박 등이 그렇다. 그 중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선택은 단순한 개인의 행보가 아니라 보수 정치의 향배를 가를 분기점이 되고 있다.
이준석의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는 너무 노골적이다. 연대는 없다고 하고, 국민의힘이 바뀌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 한다. 'TK 자민련'이라는 자극적 표현까지 등장시켰다. 이 메시지는 국민의힘을 겨냥했지만, 동시에 오세훈을 향한 간접 시험이기도 하다. '당신은 어디에 설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심 구조는 강성화됐고, 음모론과 유튜버 정치의 그림자를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수도권에서의 확장 전략은 보이지 않고, 안전지대에 안주한다는 인식은 짙어지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외부의 비판은 아프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당이 지금 필요한 것은 반박이 아니라 방향이다.
오세훈은 그 방향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그는 수도권에서 승리한 경험을 가진 정치인이고, 행정 성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온 인물이다. 그는 가장 최근에 발간한 책에서 구사한 '도시는 멈추면 쇠락한다'는 언어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행정의 철학이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지금 보수 정치가 필요한 것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기준의 명확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세훈이 당을 떠나 외곽과 손을 잡는 모험을 할 상황은 아니다. 공개적 연대나 세력화 시도는 당내 갈등을 폭발시킬 뿐이다. 오히려 그가 택해야 할 길은 더 어렵다. 당 안에 머물되, 당의 한계를 그대로 안지 않는 것이다. 강성 지지층의 언어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당을 공격하지 않는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원칙을 말하되, 특정인을 겨냥하지 않는 절제도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언어다.
이준석이 '개혁 보수'를 외치며 중도층을 선점하려 할수록, 오세훈은 '실전 보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비판이 아니라 성과로, 논쟁이 아니라 정책으로 응답하는 방식이다. 수도권에서 이길 수 있는 보수, 극단과 거리를 두는 보수, 품격을 지키는 보수의 상징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정치는 결국 책임의 문제다. 이준석은 밖에서 흔들고 있다. 당 지도부는 안에서 방어하고 있다. 그러나 기준을 세우는 사람은 아직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보수의 다음 장이 결정될 것이다.
오세훈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러나 기회는 분명하다. 당을 지키되 당에 갇히지 않고, 비판에 흔들리지 않되 변화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중도를 말로 설득하기보다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 또 선거공학이 아니라 시대정신으로 승부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이번 위기는 오히려 보수 재편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흔들리는 조직에서 필요한 것은 더 큰 소리가 아니라 더 분명한 기준이다. 분열의 언어가 아니라 통합의 언어, 분노의 정치가 아니라 책임의 정치가 필요하다. 지금 보수가 묻고 있는 질문은 단 하나다. 누가 그 기준을 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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