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1일 개봉한 영화는 현재 누적 관객 수 182만 명(3월 1일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을 기록하며 극장가에서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가는 중. 설 연휴 극장가에 찾아온 활기와 동료 감독들의 선전에 류승완 감독은 감사의 인사를 먼저 전했다.
"실제로 제가 느끼고 있는 체감은 간만에 극장이 활력이 돈다는 거예요. 지난해 설 연휴와 비교했을 때 완전히 다른 느낌이죠. 그게 일단 감사합니다. 장항준 감독님이 잘 돼서 정말 좋아요. '왕과 사는 남자' 촬영 감독님도 저와 평생 일하던 감독님이고 유해진 씨와도 친하니까요. 어쨌든 서로 다른 성향의 영화가 두 편이 나와서 관객들이 극장에 나와준다는 게 참 기분 좋습니다. 우리도 계속해서 무대인사하고 관객들을 만나고 있으니까요."
영화 '휴민트'는 류 감독은 작품의 시작점에는 과거 취재 중 마주했던 실화의 비극과 그로 인한 분노가 자리한다고 밝혔다.
비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만큼 만드는 이의 시선이 대상을 착취하지 않도록 카메라의 거리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 소재를 선택하는 순간 편하고 불편하고는 이미 없었습니다. 화가 나는 일이니까 불편할 수밖에 없죠. 여기에서 만드는 사람의 숙제는 우리 시선이 대상을 착취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카메라와 대상의 거리 세팅이 참 조심스러웠습니다. 이걸 강조하거나 구경거리로 다루지 않는 게 우선이었어요. 심지어 후반 작업을 하면서 후반부 공장 지하 이미지에서 (여성들이) 도드라진다면 그걸 다 막았어요. 그쪽으로 시선이 가서 혹시나 스크린 안에서 대상에 대한 착취의 시선이 생길까 봐서예요. 소재 자체가 이 이야기를 다뤄야 하는데 고민이 많았던 거죠. 현장에서도 힘들고 조심스럽고 그랬어요."
공간이 주는 정서를 위해 요란함을 걷어내고 인물이 걷는 풍경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촬영에 임했다.
"액션의 스펙터클을 강조하기보다는 인물 감정선을 살리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영화 속 길거리에 다니는 요란한 보조 출연자들을 다 빼고 간 거예요. 포커스를 인물들에게만 주려고요. 인물이 걷는 풍경 하나도 그 공간 건축물들, 그 도시를 샅샅이 뒤지면서 하나하나 세세하게 체크했고요. 북한 식당은 세트를 지었지만 그 외는 모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촬영했습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어요. 스태프들의 발품이었죠."
류승완 감독은 이번 영화의 핵심 이미지로 '관계 속에서도 결국 혼자 있는 사람'을 꼽았다.
"영화 제목이 '휴민트'잖아요. 이 세계 안에 처한 인물들. 영화 오프닝과 엔딩에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 깨어나고 잠드는 사람의 모습이 담기는데 그게 (영화의) 이미지라고 볼 수 있죠. 관계를 촘촘히 맺고 있고 그 관계 속에서도 결국 혼자 있는 사람입니다. 키워드는 '이별'이고, '헤어지는 사람'인 거죠. 그게 제게는 중요한 키워드였어요. 이 영화는 액션 영화지만 그 액션에 도달할 때 감정이 제가 다루던 나쁜 놈을 때려잡는 쾌감이 아니라 차분하게 잡아놓은 감정선 안에서 응축돼 폭발하는 형태의 액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해결 방법이 액션보다는 인물을 다듬는 태도나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감독은 기교 대신 관객을 숨 죽이게 만드는 전통적인 서스펜스에 집중했다.
"극장 안에서 100명 이상이 영화를 볼 때 숨을 죽이고 볼만한 서스펜스를 바랐어요. 극장에서 집중했을 때 도는 침묵은 우리가 느끼잖아요. 그동안 유머를 구사하는 걸 많이 해왔는데 그런 방식보다 극장에서 진짜 전통적인 서스펜스를 구사하며 가보자고 생각했어요.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배우들 보는 매력이 느껴지도록. 액션도 액션이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걸 해보자고 한 거죠. 이게 과학적 데이터로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익숙하게 본 거 같으면 질리고 너무 새로우면 거부감이 들잖아요.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 어떻게 조화를 만드느냐. 차곡차곡 인물의 정서 밀도 쌓아놓고 후반부 클라이맥스 시간을 당겨서 몰아치는 방식이 새롭지 않을까 생각한 거고요."
류승완 감독은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의 수미상관을 언급, "조인성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필모그래피 중 가장 노골적으로 수미상관 구성을 시도하였고 오롯이 인물의 잔상이 관객의 뇌리에 담길 바랐다는 부연이었다.
"영화에 수미상관을 노골적으로 둔 게 처음인데요. 그게 조과장, 조인성 때문에 가능했어요. 어쩌면 이 이야기는 조과장의 회고하는 형식의 이야기지 않나 싶어요. 이 영화는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게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데. 오롯이 '사람'이 잔상에 남기를 바랐어요."
현실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과정에서는 가족들의 피드백과 감독으로서의 철학이 강하게 작용했다.
"여성 캐릭터를 다룰 때 굉장히 강력한 검열가들이 있어요. 바로 아내와 딸입니다. 하하. 우리가 사실은 현실에서도 기대는 사람에게는 매력을 못 느끼잖아요. 독립적이어야 매력을 느끼지. 채선화는 가뜩이나 '휴민트'의 사건을 발생시키는 원인이고 결과까지 이르게 하는 인물이잖아요. 이 인물을 단순히 액션 영화 속 소비되는 인물이라고 치면 동력 자체를 잃어버려요. 여성 동료들을 구하는 과정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이건 선화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총을 맞고 쓰러지는 인물도 자기들끼리 구하고 지키는 형태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저는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그게 멋있다고 생각하고요."
감독은 관객들의 불호 포인트와 피드백에 대해서도 창작자로서 겸허히 받아들이며 배움의 기회로 삼았다.
"제가 들었던 것 중에 충격적이었던 게 실제로는 단체로 유리관에 (상품처럼) 들어가 있고 그런 모습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 안의 사람들의 상태 자체도 그렇고요. 그걸 실제에 가깝게 표현할 수는 없어서 우리 딴에 가장 순화라고 하면 좀 그렇고요, 이런 행위가 발생하는 거에 있어서 단죄하고 싶은데 고심 끝에 한 나름의 세팅이었어요. 액션을 찍다 보면 어떻게 해야 흥미로운 세팅이 될까 고민도 했는데. (관객들의 불호 포인트는) 거기까지 미처 생각을 못 했구나, 새겨들을 만한 부분이라고 여겼습니다. 앞으로 그런 부분을 짚어가면서 만들어야겠다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저조차 이 출발 자체가 '한번 쫙 뽑아내고 싶네'가 아니었으니까요. 조심스럽게 세세하게 봤어야 했는데 부족했습니다. 관객들의 피드백을 들으며 많이 배우고 있어요."
지난 20년의 영화 인생을 정리하며 류승완 감독은 이번 작품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변곡점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영화를 마치고 개봉하고 이 순간에 이르러 홀가분하고 미련이 없어졌어요.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 그런 기분이죠. '내일 죽어도 호상이다' 싶습니다. 하하. 물론 제게 숙제도 남았죠. 생각지 못했던 반응에 대해서는 '아, 이건 내가 더 생각해야 하는구나' 싶어요. 이 영화가 고마운 건 어쩌면 제게 분기점이 되겠구나 싶거든요. 저의 취향, 하고 싶었던 것, 모든 것들을 20년 동안 다 해보았고 다음 영화는 되게 다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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