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칼럼] 초중등 학생 대상으로 실험하는 교육정책의 비윤리성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지난 12일 국회에서 유아(만3세~초등 취학 전) 대상 학원에서 레벨 테스트(일종의 선발 시험)를 금지하는 학원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는데, 아동에게 과도한 조기교육 경쟁과 정서적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한 의미 있는 조치다. 한편 초·중등 학생에게 미숙한 교육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실험 대상이 되게 하는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교육정책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에 관하여 공적으로 제시하는 기본 방침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개혁적 방식으로 급격하게 실시되기도 하지만, 정상적 상황에서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 먼저 교육적 문제를 인식하면, 정책을 수립·입안하고, 목표와 실행 계획에 따라 현장에 적용한 후, 모니터링단을 운영하여 점검·평가하고, 정책을 보완하거나 개선해 간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시행되는 교육정책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부작용이나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점검하여 예방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큰 영향을 미친 교육정책 중에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전격적으로 실행되어 정착된 정책들이 많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 실시된 초등 무상의무교육, 1960-70년대에 실시된 중학교 무시험 진학과 고교평준화, 1980년 7.30교육개혁에서 시행된 과외 금지, 대학 졸업정원제 실시와 본고사 폐지, 1995년 5.31교육개혁에서 시행된 학교운영위원회와 학생생활기록부 도입, 초등영어교육 실시 등 굵직한 정책들을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문민정부 이후 시행된 교육정책 중에는 중·고등학교 무상교육처럼 안착한 정책도 있지만, 미숙한 상태로 무리하게 추진하다 자주 변화하거나 동력을 잃고 중도에 사실상 폐기된 정책들도 상당하다.

학업성취도평가는 1959년에 시도 교육청 단위 평가로 처음 도입된 후 1986년부터 교육부 주관 국가수준 평가로 전환되었는데, 이후에도 전수평가와 표집평가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사고)는 평준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정부에서 시범 운영한 후 확대되어 왔다. 위 두 정책은 보수 정부와 진보 교육감들의 견해 차이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학업성취도평가를 보수 정부에서는 ‘전수평가’로 실시하려고 하지만, 진보 교육감들은 이를 ‘일제고사’로 규정하여 반대하고 있다. 또한 자사고를 보수 정부에서는 유지하려고 하지만, 진보 교육감은 이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혁신학교를 확대하려고 한다.

중학교 자유학기제는 중학교에서 한 학기 또는 두 학기 동안 시험 부담 없이 진로 탐색에 주력하는 학기로서 박근혜정부에서 시작했다. 2013년에 시범학교에서 시작하여, 2016년부터는 전국의 모든 중학교에서 전면 시행되었으며, 2020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전국 중학교에 자유학년제로 시행되다가 2025학년도 신입생부터 전국의 모든 중학교가 자유학기제로 복귀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교과목을 선택·이수해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로서 문재인정부에서 시작했다. 2018년부터 연구·선도 학교를 운영했고, 2020년부터 마이스터고에 시행했으며, 2025년부터 전체 고교에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개설 교과목과 교원 수급, 학점 이수 기준과 평가 등에 논란이 거듭되면서 정책이 많이 완화되는 변화를 겪고 있다.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AIDT)는 윤석열정부가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추진하여 2025년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자 교과용 도서(교과서)에서 교육용 보조자료로 지위가 격하되면서 사실상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또한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기는 방안은 김영삼정부 이후 역대 정부에 걸쳐 제안 또는 추진된 난제였다. 윤석열정부는 교육격차 해소를 명분으로 이 계획을 불쑥 발표했다가 각종 교육관련 단체와 맞벌이 학부모 등이 반대하자 철회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교육정책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책이 미숙한 상태로 발표 또는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앞당기는 정책은 박순애 당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교육부 업무보고를 통해 내용이 알려진 후 여론의 반대가 심하자 “정책 추진이 시작되면 교육청, 관련 단체, 학부모 등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발언한 것이 큰 문제였다. 교육정책을 수립·입안하기 전에 관련 전문가 집단과 학부모 등의 의견 수렴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에 어느 교육감의 설익은 발표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혼란을 준 경우도 있다. 교육감 업무 개시 한 달이 지나는 시점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1학년의 중간·기말고사를 올 2학기부터 전면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다음 날 ‘중학교 1학년은 종전대로 중간·기말고사를 모두 진행’하겠다고 전날의 발표를 번복했다. 이처럼 책임자가 교육정책을 가볍게 대하면 학부모와 교육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신뢰를 상실한다.

둘째, 교육부와 교육감들이 입장을 달리하는 교육정책들이라는 점이다. 시도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학교 교육정책이 다를 수 있고, 보수와 진보 집단, 부유층과 빈곤층 간에 다를 수도 있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간의 이견이 있는 정책은 학업성취도평가와 자사고 정책 이외에 학생인권조례와 심야시간 학원수강 금지 등 여러 면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교육감들이 선출직이라는 점을 내세워 아집을 부릴 일이 아니다.

초중등 교육정책은 학생과 학부모 및 교원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책 시안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관련 당사자의 동의나 사회적 합의 없이 시행해서는 안된다.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 전에 교육정책을 시행한다면 학생을 실험 대상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 영역에서는 2013년부터 인간을 연구대상자로 사용하고자 할 때 연구윤리 심의를 거치도록 연구윤리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 설치를 의무화하여 인간, 즉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실험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교육부, 국가교육위원회 및 시도 교육청의 교육정책 담당자들도 연구자의 자세로 학생이 실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정책 입안부터 심도있게 검토해야 한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오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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