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오늘날 중동 정세를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축 가운데 하나다. 양국은 한때 전략적 동맹에 가까운 관계였지만, 지금은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적대적 공존' 상태에 놓여 있다. 단순한 외교 갈등을 넘어 수십년간 축적된 불신과 체제 충돌이 맞물린 결과다.
양국 갈등의 뿌리는 냉전 시절인 20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이란에서 벌어진 모사데크 정권 교체 쿠데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반미 감정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당시 미국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이유로 이란 내 정치에 직접 개입했고, 이는 이란 사회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이후 1979년 이슬람 혁명을 통해 반미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국 관계는 급격히 악화됐고, 그 직후 발생한 주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은 양국 간 적대감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국내 대표적인 중동 전문가인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 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1953년 모사데크 정권 교체가 이란의 반미 기점이 됐다"며 "국민의 뜻과 민중혁명으로 가장 민주적으로 선출된 존경받는 지도자를 자기 이익에 맞지 않는다고 직접 개입하여 쿠데타로 정권 무너뜨리는 미국의 각인된 기억이 반미로 이란을 유지하게 하는 최고 동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79년 혁명공화국이 반미 노선을 취하자 이후 47년간 고강도 경제 제재가 가해졌고, 결과적으로 결집된 반미와 애국심이 이란 신정 폭압 정권을 연명케 한 결정적 이유"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이 단순한 이해관계 충돌을 넘어 체제 경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국제 질서를 유지하려는 반면, 이란은 이슬람 혁명 이념과 반미 정서를 토대로 독자적 질서를 구축하려 한다. 이 같은 가치와 체제의 충돌은 양국 간 타협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일시적인 긴장 완화 시도도 없지 않았다. 2015년 이란 핵합의(JCPOA)는 양국 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하는 듯했으나,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1기 시절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다시 갈등이 격화됐다. 협상과 파기가 반복되며 상호 신뢰는 더욱 약화됐고, 외교적 해법에 대한 기대 역시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습과 올해 이란 전쟁 역시 미국과 이란이 핵 협상을 진행하는 와중에 발생한 것인 만큼 양측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 상태이다. 이 교수는 양국 관계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모든 협상을 세 차례나 파기하고 두 차례 부당한 침략전쟁을 치른 대상과 관계 개선은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서로의 생존을 위해 당연히 실리적인 협상을 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이 발언은 현재의 미·이란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양측 모두 전면 충돌은 부담스러운 선택이지만, 동시에 근본적인 신뢰 회복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현실적인 선택지는 긴장 속 관리된 공존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양국 간 충돌 가능성은 다시 국제사회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갈등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작은 충돌 하나가 국제 유가 급등과 공급망 불안을 촉발할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양국 갈등은 단순한 양자 문제를 넘어 중국과 러시아 등 다른 강대국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며 국제 정치의 다층적 경쟁 구도로 확장되고 있다. 이란은 반서방 연대를 강화하며 외교적 공간을 넓히려 하고, 미국 역시 동맹국들과 공조를 강화하며 압박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갈등의 장기화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미·이란 관계는 이번 전쟁이 끝나더라도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구조적 갈등 위에 놓여 있다. 역사적 불신, 체제 경쟁,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힌 상황에서 양국은 협상과 충돌 사이를 오가는 불안정한 균형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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