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을 쓴 건 1995년이다. 기술 혁신이 일자리를 줄이고, 궁극엔 전체 노동시장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렸다. 붕괴의 시작점은 자동화·로봇화의 직격탄을 맞을 블루칼라 계층이라고 리프킨은 전망했다.
그로부터 30년. 미국 뉴욕의 리서치펌 시트리니(Citrini)가 올해 2월 보고서를 하나 냈다. 제목은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다. AI 기술혁신으로 빚어질 2028년 미래의 산업구조와 이로 인한 금융시장의 변화를 다룬 보고서다. 핵심은 AI 진화로 소위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라 불리는 소프트웨어와 IT서비스 기업들의 설 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것이다. 보고서 내용은 화이트칼라 업종의 위기가 더 먼저, 더 광범위하게 닥칠 것이란 대목만 다를 뿐 리프킨의 전망과 흡사하다.
그런데 가상 시나리오 혹은 픽션(Fiction)에 가까운 이 보고서에 전 세계 증시는 발작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AI 혁신이 'SaaS 산업'과 '일자리' 위기에 그치지 않고 금융·신용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에 있다. AI 진화→기업(Saas 등) 실적 악화→사모대출 부실→금융시장 경색이 보고서가 제시한 위기의 전이·확산 경로다. 특히 시트리니는 사모대출펀드(Private Credit Fund)가 레버리지 붕괴의 트리거(trigger)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적시했다.
보고서의 지적대로 지금 미국 월가는 사모대출펀드(PCF) 때문에 어수선하다. PCF는 높아진 은행권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하는 비상장 기업에 대출을 해주고 이자수익을 배분해주는 구조다. 성장성이 높다고 알려진 SaaS, 플랫폼 기업 등에 투자해 10~15% 이상 고수익을 내는 식으로 운용돼 왔는데, AI로 대출 자산 가치가 부풀려져 대출 회수가 안 될 수 있다는 게 PCF 위기의 실체다. 블루아울, 블랙록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에 환매 요구가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PCF 위기 확산 경로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흡사하다. 위기의 전이·확산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슷하다. 글로벌 PCF 규모는 현재까지 2조3000억 달러(약 3500조원)로 알려져 있지만 추가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PCF 대출이 흘러간 기업들의 리스트도 아직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며, 대출 자산의 형태가 어디까지 다변화된 건지도 불분명한 상태다.
다행히 국내 증권사의 PCF 투자 잔액은 17조원 정도다. 태평양 건너편의 위기가 국내로 전이될 걱정을 할 수준은 아니라고 정부는 말한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도 최근 개인 SNS(페이스북)에 "PCF 사태를 2008년 금융위기와 동일선상에서 보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글로벌 금융위기 시즌2'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실핏줄처럼 얽히고설킨 복잡한 금융회로는 언제든 빠르게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전이가 국경, 업종을 쉽사리 넘나든다는 걸 우리는 리먼 사태 때 목도했다. 한 마리의 바퀴벌레가 보이면 더 많은 바퀴벌레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금융위기 때마다 언급되는 '바퀴벌레 이론'이다. 지금 바다 건너편에 바퀴벌레 한 마리(PCF 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주경계를 더 철저히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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