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로제타 셔우드 홀 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사랑과 헌신의 백년

  • —한 외국 여인의 눈물에서 고대 의대 100주년의 비전으로

의학은 언제 시작되는가. 병을 고치는 기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고통 받는 인간을 외면하지 않는 순간, 그때 의학은 시작된다. 그 출발점에 한 사람이 있다. 로제타 셔우드 홀. 그녀의 삶은 의학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하나의 답이었다.
 
189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대를 졸업한 그녀는 조선에 들어왔다. 여성은 치료받지 못했고, 장애인은 교육받지 못했으며, 가난한 이들은 생명을 지킬 수 없던 시대였다. 그녀는 그 현실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여성들을 치료하며 인간 존엄의 문을 열었고, 평양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다. 의학을 통해 인간의 권리를 회복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비극과 함께했다.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은 전염병 환자를 돌보다 순직했고, 어린 딸까지 조선에서 잃었다. 인간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조선 속으로 들어갔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자신의 생애로 증명했다.
 
그녀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여성 의사 양성이었다. 조선 여성들이 스스로 의사가 되어 생명을 살리는 구조를 만드는 것.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러나 재정난과 식민지 상황 속에서 학교는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바로 그때 우석 김종익 선생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여성 의학교육을 지탱했다. 이 결단으로 강습소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로 발전했고, 이후 서울여자의과대학, 수도의과대학, 우석대학교 의과대학을 거쳐 1971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과 통합되며 오늘의 고대 의대로 이어진다.
 
이것은 단순한 학교의 역사적 계보가 아니다. 한 선교사의 사랑, 한 민족 지도자의 결단, 그리고 시대의 고통이 결합된 의학의 계보다.
 
로제타 셔우드 홀의 마지막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노년에 “더 이상 조선에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며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떠난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다시 조선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1951년,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남편과 딸과 함께 잠들었다.
 
로제타 셔우드 홀 말고도 아들 셔우드 홀과 며느리 매리언도 조선 결핵 퇴치에 힘썼다. 2대에 걸쳐 조선에 의료봉사활동을 하였고 1991년 이들 부부도 양화진 묘역에 묻혔다. 한 가족이 한 나라를 위해 살고, 그 땅에 함께 묻혔다. 이것이 사랑의 완성이다.

 
1928년 조선여자의학강습소 개강 당시 기념 사진 아래 왼쪽에서 세 번째가 로제타 셔우드 홀이다
1928년 조선여자의학강습소 개강 당시 기념 사진. 아래 왼쪽에서 세 번째가 로제타 셔우드 홀이다. [사진=고려대학교 의료원] 

 이제 백년이 흘렀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은 안암, 구로, 안산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수도권 의료의 핵심 기관으로 성장했다. 이 공간들은 화려한 중심이 아니다. 삶의 무게가 내려앉은 곳, 중산층과 서민, 사회적 약자가 살아가는 현장이다. 바로 이 점에서 고대 의대는 로제타 홀의 정신과 가장 깊이 맞닿아 있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전환점이 열리고 있다. 2028년 개교 100주년을 향한 준비가 본격화되고 있다.
 
고대 의대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가 지난 2024년 3월19일 공식 출범했다. 공동의장은 윤을식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과 장일태 의대 교우회장이 맡았다. 이와 함께 편성범 의과대학장, 정희진 구로병원장, KU-Medicine 발전위원회 문규영 위원장과 김영훈 부위원장, 권오섭 사회공헌위원회 분과장, 윤형선 의대교우회 수석부회장, 김철중 대외협력부회장 등 의료원과 교우회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함께 참여했다. 50여 명이 모인 이 발대식은 단순한 행사 출범이 아니라, 백년을 향한 결단의 선언이었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조선여자의학강습소 제1회 입학생이자 경성여자의학강습소 제1회 졸업생인 고 박순정 여사의 졸업증서 기증이 이루어졌다. 이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이 학교의 시작이 어떤 정신 위에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앞으로 준비위원회는 행사, 인재, 역사편찬, 홍보, 건축, 국제학술, 기금 등 7개 분야로 나뉘어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한다. 이는 단순한 기념사업이 아니라, 미래 의학의 설계도다.
 
윤을식 의무부총장은 분명한 목표를 제시했다. “2028년까지 연구 인프라 투자를 통해 국내 1위, 세계 30위권의 초격차 연구 중심 의료기관으로 도약하겠다.”
 
장일태 교우회장은 더 근본적인 방향을 강조했다. “조선여자의학강습소의 정신, 즉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학을 이어가야 한다.”
 
문규영 위원장은 이를 하나의 역사적 사명으로 규정했다. “100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 다음 백년이 시작된다. 고려대 의료원은 이 100주년을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대전환의 출발점”으로 규정하고 있다. 핵심 비전은 ‘THE NEXT MEDICINE’이다. 이는 단순한 의료 발전이 아니라, 미래 의료 생태계를 새롭게 설계하겠다는 선언이다.
 
그 비전의 중심에는 다섯 가지 축이 있다.
 
첫째, 미래형 거점병원이다. 안암·구로·안산 병원에 더해 동탄 제4병원을 축으로 미래 의료 거점을 구축한다. 단순한 병원 확장이 아니라, 디지털 헬스케어와 정밀의학이 결합된 새로운 의료 플랫폼이다.
 
둘째, 연구 혁신이다. “연구는 진료를 바꾸고, 진료는 산업을 이끈다”는 철학 아래, 인공지능·정밀의학·백신 연구를 중심으로 글로벌 연구 생태계를 구축한다.
 
셋째, 중증질환 대응 역량 강화다. ‘미라클 센터(Miracle Center)’를 통해 난치성 질환 치료의 최전선을 구축한다
 
넷째,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이다. 고려대 의료원은 지난 100년 동안 가장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의료를 이어왔다. 앞으로도 그 공공성을 핵심 가치로 삼겠다는 선언이다.
 
다섯째, 인재다. 미래 의료는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세계 30위권 의과대학 진입 목표 역시 결국 인재 확보와 육성 전략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고려대 의료원은 3000억 원 규모의 발전기금 모금, 미래의학관, 백신혁신센터 구축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 모든 계획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어떤 의학을 할 것인가.” 기술은 따라잡을 수 있다. 시설은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은 계승해야 한다.
 
성경은 말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로제타 셔우드 홀은 이 말씀을 삶으로 증명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는 참았고, 견뎠고, 끝까지 사랑했다. 의학은 결국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그 사랑이 한 세기를 건너 오늘에 도달했다. 이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다음 백년이 시작된다. 그 백년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로 결정된다. 사람을 향한 눈,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끝까지 책임지는 용기. 로제타 셔우드 홀은 과거가 아니다.
 
그녀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의학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로제타의 백년은 헛되지 않았고, 고대 의대의 다음 백년은 더욱 위대할 것이라고.
 
1890년 조선에 올 무렵 25살의 로제타 셔우드 홀
1890년, 조선에 올 무렵 25살의 로제타 셔우드 홀 [사진=고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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