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이란전쟁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파국의 문턱에서—트럼프의 시간, 그리고 한국은 세 시나리오를 넘어 행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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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동의 밤하늘은 오래전부터 불안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불길은 과거와 결이 다르다. 이번 전쟁은 단순한 국지 충돌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동맥을 겨누는 구조적 충격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가스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길목이다. 이 수로의 봉쇄나 부분 마비가 길어질수록 국제 유가는 급등하고, 보험료와 운임이 뛰며, 아시아와 유럽의 수입국 경제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최근 국제 시장에서는 브렌트유가 전쟁 발발 뒤 50% 넘게 뛰며 한때 배럴당 119달러를 넘어섰고, 주요 시나리오 분석에서는 134달러 안팎의 평균 가격, 더 나쁜 경우 150~200달러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시장은 이미 “일시 충격”이 아니라 “장기 불안”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또 하나의 대형 변수로 얹혀 있다. 그는 공개적으로는 협상과 종전을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란에 시한을 제시하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신뢰다. 과거 이란 핵합의를 깬 전력이 있는 트럼프의 메시지는 테헤란 입장에서 곧장 신뢰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더구나 이스라엘이 독자적 군사 행동을 이어가고, 미국도 군사적·외교적 압박을 병행하는 가운데, 시장은 “누가 전쟁을 통제하고 있는가”보다 “아무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는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 보도를 보면 트럼프는 호르무즈 개방을 요구하며 시한을 연장했지만, 투자자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고, 뉴욕 증시는 조정 국면 압박을 받았으며 유가는 다시 뛰었다.
 
우리는 감정이 아니라 시나리오로,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대응으로 넘어가야 한다. 전쟁의 향방을 우리가 결정할 수는 없지만, 그 전쟁이 한국 경제와 산업, 가계에 주는 충격을 어떻게 흡수하고 줄일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하나의 예언이 아니라 세 가지 시나리오에 대한 동시 대비다.
 
첫째, 비관적 시나리오다. 이것은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적으로 사실상 봉쇄되거나, 봉쇄와 준봉쇄를 반복하며 시장의 공포가 상시화되는 경우다. 여기에 이란과 걸프 지역의 주요 유전, 가스전, 수출 터미널, 정유시설까지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는다면 상황은 단순한 에너지 가격 상승을 넘어선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 180달러, 심지어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
 
천연가스 가격은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 동반 급등하고, 전력요금과 난방비가 전 산업에 다시 전가된다. 원자재 시장도 연쇄 충격을 받는다. 나프타와 에틸렌, 프로필렌 같은 석유화학 기초 원료가 오르면 ABS, 폴리카보네이트, 폴리우레탄 같은 중간재 가격이 줄줄이 뛴다. 자동차 내장재, 가전 외장재, 반도체 제조 관련 소재, 건설용 화학제품, 생활용 플라스틱 제품까지 원가 상승의 파동이 번진다. 중동 지역이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황 공급이 꼬이면 비료 가격이 치솟고, 이는 농산물 가격과 식량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 이 경우 원유가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화학, 농업, 물류, 제조업, 서비스업이 모두 동시에 흔들린다.
 
원·달러 환율은 1600원대, 심하면 1700원대 위협까지 거론될 수 있고, 달러 초강세 속에 신흥국 통화는 동반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금리는 더욱 어렵다. 물가가 급등하니 중앙은행은 긴축 압력을 느끼지만, 경기는 침체로 빠지니 성장 방어 필요도 커진다. 결국 단기 금리와 장기 금리의 움직임이 엇갈리고, 시장은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를 다시 꺼내들게 된다. 주식시장은 제조업, 항공, 화학, 소비재를 중심으로 급락 압력을 받고, 투자심리는 얼어붙는다. 최근 일부 분석이 “호르무즈 차질이 더 길어지면 유가 150달러가 유력하다”고 보고, 더 강한 경고는 “200달러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중간 시나리오다. 이것은 전쟁은 이어지되 핵심 인프라가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고, 호르무즈 해협도 완전 봉쇄가 아니라 간헐적 통제와 고위험 운항 상태가 장기화되는 경우다. 이 경우 세계는 파국으로 바로 떨어지지는 않지만, “비싸고 불안한 세계”로 들어간다. 국제 유가는 110~130달러 선에서 높은 변동성을 보이며, 천연가스와 석유화학 원료 가격도 평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공급은 완전히 끊기지 않지만, 운송비와 보험료, 재고 조달 비용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이익률이 급격히 나빠진다. 환율은 1450~1550원 안팎에서 등락하고, 외환시장은 사소한 뉴스에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금리는 물가와 경기 둔화 사이에서 방향성을 잃은 채 널뛰기하게 된다. 주식시장은 급락 후 반등, 반등 후 재조정이 반복되는 박스권 불안 장세에 들어가고, 세계 경제는 저성장·고물가·고비용 구조로 오래 버텨야 하는 국면에 직면한다.
 
이 시나리오는 겉보기에 비관적 시나리오보다 덜 무서워 보이지만, 실제 정책과 기업 경영에는 더 어렵다. 왜냐하면 전면적 비상체제로 한 번에 전환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평시처럼 버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견뎌야 하는 위기”다. 지금 국제시장이 보여주는 모습도 이 중간 시나리오에 가장 가까운 쪽으로 기울어 있다. 유가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되 하루가 멀다 하고 방향을 바꾸고, 주식시장은 악재에 즉각 반응하며, 각국 정책당국은 긴축과 경기방어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셋째, 낙관적 시나리오다. 이것은 충돌이 제한적으로 관리되고, 외교적 개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며,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단계적으로 정상화되는 경우다. 유가는 단기적으로 100달러를 웃돌더라도 점차 80~90달러대로 안정되고, 천연가스와 석유화학 원료 가격도 서서히 균형을 되찾는다. 환율은 1300원대 후반 혹은 1400원 초반대로 진정되고, 금융시장도 안도 랠리를 보일 수 있다. 주식시장은 초기에 받은 충격을 되돌리며 기술주, 산업재, 인프라 관련주가 회복을 주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조차도 전쟁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는 이번 충격을 계기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에너지 안보를 국가안보로 격상하며, 원자재와 전략물자의 확보 경쟁을 더 강화할 것이다. 다시 말해 낙관적 시나리오도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는 뜻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고 재편의 시간을 맞는다”는 뜻이다. 로이터통신과 시장 분석들은 해협 통행이 다시 열리고 전쟁 위험이 완화되면 유가가 크게 내려갈 수 있다고 보지만, 그 경우에도 높은 위험 프리미엄이 한동안 남을 가능성을 함께 본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시나리오 자체보다 정부와 정치권, 기업, 가계가 어떤 전략으로 움직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전쟁의 강도는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지만, 충격의 깊이와 지속 기간은 우리의 대응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정부다. 정부는 지금 단순한 시장 진정 메시지를 내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첫째, 에너지 안보를 비상경제의 최우선 축으로 격상해야 한다. 전략비축유는 “쌓아둔 재고”가 아니라 “시차를 버는 정책 수단”이다. 비축유 방출 시점, 규모, 재축적 계획까지 패키지로 설계해야 하며, 중동 의존을 줄이기 위한 도입선 다변화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둘째,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의 동시 안정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외환보유액 활용 원칙, 시장 개입 기준, 필요시 통화스와프 협력 구상까지 일관된 메시지로 제시해야 한다.
 
셋째, 산업별 충격 분석을 세밀하게 해야 한다. 정유·석유화학·항공·해운·비료·식품·전력다소비 업종 등은 충격의 크기와 속도가 다르다. 전 업종을 똑같이 지원하는 방식은 재정 낭비다. 무엇을 먼저 살리고 무엇을 질서 있게 조정할 것인지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넷째, 물가 관리도 단순한 가격 통제식 접근이 아니라 취약계층 보호 중심이어야 한다. 유류세, 전기요금, 교통비, 생계비 지원을 정교하게 조합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 차원의 공급망 상황실을 상설화해야 한다. 원유와 가스, 곡물과 비료, 화학원료, 주요 금속과 반도체 소재까지 하나의 지도로 보고 즉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권의 역할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위기 시기에 정치가 소음을 키우면 시장은 공포를 배가한다. 지금 정치권은 정쟁으로 정부를 흔들거나, 반대로 정부가 야당을 배제한 채 일방 추진하는 방식 모두를 피해야 한다. 초당적 비상경제 협의체를 가동하고, 에너지안보·물가안정·산업지원·세제조정과 관련된 법안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치권은 국민에게 “이 위기는 길게 갈 수 있다”는 점을 솔직히 설명해야 한다. 과장된 낙관도, 선정적 비관도 금물이다. 위기관리에서 신뢰는 숫자보다 강하다. 정치는 그 신뢰를 만드는 제도적 장치가 되어야지, 불신을 키우는 확성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은 더욱 냉정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원가절감이 아니라 구조 전환이다.
 
첫째, 조달선을 다변화해야 한다. 특정 지역이나 특정 항로에 의존하는 구조를 그대로 두면 다음 충격에서 더 크게 흔들린다. 둘째, 에너지 효율을 전면 점검해야 한다. 같은 원가를 써도 더 적은 전력과 연료로 생산할 수 있는 공정으로 옮겨가야 한다. 셋째, 원자재 가격 헤지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 재고 정책을 평시 기준으로만 운영해서는 안 된다. 핵심 원료와 부품은 전략재고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석유기반 소재 의존도를 줄이는 중장기 연구개발을 확대해야 한다. 친환경 대체소재, 재활용 원료, 전기·수소 기반 생산 전환은 이제 ESG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여섯째, 수출기업들은 환율 급등을 무조건 반길 일이 아니다. 수입 원가 상승과 금융시장 불안이 동시에 오면 환차익은 쉽게 상쇄된다. 그러므로 단순 환율 기대가 아니라 종합적인 현금흐름 방어 전략이 중요하다.
 
가계 역시 수동적 관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계는 경제의 마지막 방파제다. 첫째,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 특히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금리 변동이 동시에 오는 국면에서는 자동차 유지비, 난방비, 외식비, 여행비처럼 쉽게 늘어나는 지출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둘째, 변동금리 부채 구조를 점검해야 한다. 금리 방향이 불안한 국면에서는 월 상환 부담의 급등이 가계 전체를 흔들 수 있다. 셋째, 자산배분을 다시 살펴야 한다. 위기기에는 고수익보다 유동성과 안전성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넷째, 생필품과 에너지 소비를 절제하는 생활 습관이 필요하다. 다섯째, 지나친 공포 소비나 투매, 무리한 투자는 피해야 한다. 위기의 시기에는 “얼마를 더 벌 것인가”보다 “얼마를 덜 잃을 것인가”가 먼저다.
 
마지막으로 과학과 기술이다.
 
이것이 빠지면 정부도, 기업도, 가계도 결국 버티기만 하게 된다. 인공지능 기반 수요 예측, 공급망 시뮬레이션, 에너지 효율 최적화, 대체 소재 개발, 저장 기술 고도화는 더 이상 부수적 과제가 아니다. 위기를 견디는 국가는 정책이 빠른 국가이고, 위기를 넘어서 도약하는 국가는 기술이 강한 국가다. 한국이 이번 전쟁의 충격 속에서도 버티고 나아가려면, 단기 처방과 함께 기술 전환의 속도를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
 
성경은 말한다. “깨어 있으라.” 불경의 구절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은 사람이 만든 모든 현상과 질서는 꿈과 환영, 물거품과 그림자처럼 늘 변하고 오래 붙잡아둘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의 국제 질서와 시장 안정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경고다. 도덕경의 구절 “知足不辱 知止不殆”는,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과도한 낙관도, 과도한 탐욕도, 과도한 공포도 모두 경계하라는 말이다.
 
전쟁은 언제나 예측을 벗어난다. 그러나 대응은 예측 밖에 있어서는 안 된다. 트럼프의 한마디가 시장을 흔들 수는 있어도, 한국의 운명까지 대신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치밀한 시나리오 경영이며, 그 시나리오 위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정부와 정치권, 기업과 가계의 행동이다. 파국은 가능성이다. 그러나 대응의 실패는 선택이다.
 
지금은 세계를 한탄할 시간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정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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