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추어리] 사람은 떠났지만 길은 남았다…서명숙, 제주에 '치유의 길'을 남기고 가다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7일,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 고인의 영결식은 12일 오전 9시 어릴적 놀이터인 서귀포시 서복공원 잔디광장에서 엄수된다. 
 
고향 제주에 길을 내어 세상에 위로와 치유의 방식을 전했던 한 사람이, 정작 자신의 몸에 스며든 병은 미처 막아내지 못한 채 그렇게 길을 떠났다. 고인이 떠나는 그날, 서귀포 자구리 해안의 파도는 마치 한 사람의 생애를 배웅하듯, 바다는 오래도록 울음을 토해냈다.
 
한 사람의 삶이 하나의 길이 되어 세상을 바꾸는 일이 있다. 그 길은 처음에는 작고 조용하게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수많은 발걸음이 쌓여 하나의 시대를 만든다. 우리는 지금 그 길의 시작을 열었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알고 있다. 그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길로 남았다는 사실을.
 
그는 서귀포 자구리 바닷가에서 뛰놀던 소녀 ‘맹숙이’였다. 함경도 무산에서 내려온 아버지와 제주 토박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시장 상인의 딸로 자랐다. 자구리와 외돌개, 바람과 돌, 파도가 그의 놀이터였고, 훗날 제주올레길 6코스와 7코스는 그 유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길이 되었다. 외돌개로 향하던 길목, 그가 ‘폭풍의 언덕’이라 이름 붙인 갯바위는 어린 시절 혼자 울던 자리였다고 한다. 그 눈물은 세월이 흐른 뒤 수많은 사람의 눈물과 위로로 되돌아왔다.
 
서울로 올라와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한 그는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한다. 그곳에서 그는 이른바 ‘영초 언니’로 불리던 선배와 함께 자취를 하며 시대의식에 눈을 떴다. 이 ‘영초 언니’로도 불리던 선배의 영향 속에서 그는 학생운동의 한가운데로 들어섰고, 1979년 시국 사건으로 구속돼 236일간 옥고를 치렀다. 젊은 날의 감옥은 그에게 고통이었지만 동시에 삶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정의와 진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라는 질문이 그때 그의 가슴 깊이 새겨졌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 '영초언니'는 훗날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그것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한 시대를 통과한 청춘의 기록이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언론의 길로 들어섰다. 시사잡지 현장에서 그는 치열하게 부딪치며 성장했고, 마침내 시사저널에서 정치부 기자, 정치부장, 그리고 여성 최초의 편집장에 올랐다. 남성 중심의 언론 구조 속에서 그는 단단한 의지와 실력으로 자기 자리를 만들어낸 1세대 여성 언론인이었다.
 
이후 그는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디지털 저널리즘의 전환기 한복판에서도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그의 글은 권력을 향하기보다 사람을 향했고, 이념을 앞세우기보다 현실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 치열한 삶의 이면에는 깊은 소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훗날 그 시절을 “고장 난 기계처럼 몸은 망가졌고 영혼은 춥고 쓸쓸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길을 떠났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치유였고, 도피가 아니라 회복이었다. 8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걸으며 그는 깨달았다. 인간은 걸을 때 비로소 자신과 만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결심했다. 
 
“제주에, 사람을 살리는 길을 만들겠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제주올레길이다. 골목을 뜻하는 제주어 ‘올레’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철학이었다.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나서는 문턱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인생 또한 그러하다는 것.
 
성서는 말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올레길은 이 말의 현실이 되었다. 불가의 반야심경은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 하고, 금강경은 “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 한다. 집착을 내려놓고 흐르는 삶, 그것이 곧 길의 본질이다. 화엄경의 “一卽多 多卽一”처럼, 제주올레 하나는 전국의 수많은 길로 확산되었다.
 
노자의 도덕경은 “大器晩成 上善若水”라 했다.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그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공자의 중용은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라 한다. 그는 길 위에서 그 조화와 균형을 실현했다. 그리고 천부경의 “一始無始一”처럼, 그는 시작이면서 동시에 본래 있던 길을 드러낸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재정난, 사고,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길은 이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끝내 사람의 속도를 되찾아주었다. “놀멍 쉬멍 걸으멍.” 그 한마디는 문명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올레길에서 행복해라.” 그 한마디에 그의 생애가 모두 담겨 있다.
 
이제 그는 우리 곁에 없다. 그러나 그의 길은 남아 있다. 바람 속에, 파도 속에, 그리고 그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의 발걸음 속에 살아 있다. 사람은 떠나도 길은 남는다. 그리고 그 길은 다시 사람을 살린다.
 
오늘 제주 바다에는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여전히 그 길을 따라 흐른다. 그리고 우리에게 조용히 말한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멈추어도 괜찮다.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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