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이란전쟁 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인류를 고통의 질곡으로 밀어 넣은 이란전쟁...네타냐후의 오만과 이재명 대통령의 보편적 인권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중동은 언제나 세계사의 ‘압축된 전장’이다. 종교, 민족, 자원, 지정학이 중층적으로 얽힌 이 지역은 평화보다 긴장이 일상이며, 타협보다 충돌이 구조화된 공간이다. 오늘의 이란전쟁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겉으로는 군사 충돌이지만, 그 내면에는 수천 년 문명 충돌과 생존의 논리가 켜켜이 축적되어 있다. 국제정치에서 국익이란 무엇이며, 인간의 보편적 가치는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
 
이번 전쟁의 본질은 명확하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단순한 적대 관계를 넘어, 상호 존재를 부정하는 ‘절대적 대립’의 구조에 놓여 있다. 이란은 시아파 벨트(Shia Belt·시아 벨트)를 통해 레바논, 예멘 후티, 팔레스타인 세력까지 연결하며 포위 전략을 구축해 왔다. 반면 이스라엘은 미국을 중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수니파 국가들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며 대응해 왔다. 이 전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며, 외교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특히 베냐민 네타냐후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를 사실상 ‘종결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핵 개발 능력과 군사 기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미래의 안전은 없다는 판단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가 강경 노선을 뒷받침하며 양측은 전략적 일체화 상태에 가까운 공조를 보이고 있다. 전쟁은 점점 협상의 여지를 잃고, 절대 충돌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대표적인 에너지 수입국이다. 중동의 불안은 곧 유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환율, 물가, 산업 전반에 연쇄적 충격을 가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Hormuz Strait)이 흔들리는 순간, 한국 경제의 동맥은 직접 타격을 받는다. 따라서 외교는 냉정해야 한다. 감정보다 계산, 명분보다 실익이 앞서는 것이 국제정치의 냉혹한 본질이다.
 
그러나 국익은 단순한 물질적 계산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익은 그 국가가 어떤 가치 위에 서 있는가에 대한 총체적 결과다. 여기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논쟁의 중심에 선다.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비판하며 보편적 인권(universal human rights)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 그의 메시지는 외교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시점과 방식, 그리고 근거 자료의 정합성 문제는 상대에게 반박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전략적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 사안을 단순한 외교적 손익으로 환원하는 것은 위험하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민간인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을 말하는 목소리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문명이 스스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국제정치는 힘의 정치(power politics)의 논리로 움직이지만, 그 힘을 제어하는 것은 결국 가치(value)의 언어다.
 
이스라엘 외교부의 공개적 반박 또한 외교 관례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국가 간 이견은 통상 비공개 채널을 통해 조율하는 것이 원칙이다. 공개적 충돌은 갈등을 증폭시키고 외교적 공간을 축소시킨다. 이번 사안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양측 모두가 감정적으로 과열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선이다. 우리는 강대국의 시각만으로 세계를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신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한국은 식민과 전쟁, 분단을 경험한 나라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정서를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이며, 인간다움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감정을 공동체의 원리로 확장한 것이 홍익인간 정신이다. 한 사람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 약자의 고통을 공동체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명의 기준이다.
 
여기에 오늘의 시대는 한국에게 한 걸음을 더 요구한다. 바로 ‘K-영성(K-Spirituality)이다. 지금 세계는 K-드라마, K-시네마, K-팝을 넘어 K-컬처 전반에 주목하고 있다. 더 나아가 K-방산, K-이코노미로까지 확장되며 대한민국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국력은 물질적 성취에만 있지 않다. 그 이면에 깃든 정신과 가치가 함께 확산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영향력이 형성된다. 그것이 바로 K-영성이며, K-인권, K-가치다. 우리는 단순히 콘텐츠를 수출하는 국가가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과 공동체의 윤리를 제시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강대국의 논리 속에서도,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최소한의 인권을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대한민국이 가져야 할 장기적 기준이다. 단기적으로는 외교적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축적하는 기반이 된다.
 
현실은 냉혹하다. 에너지 안보, 경제 안정, 동맹 관계라는 삼중의 제약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그 선택에도 중심은 있어야 한다. 중심 없는 균형은 결국 방향을 잃는다. 한국 외교의 중심은 분명해야 한다. 국익과 함께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의지다.
 
이란전쟁은 인류에게 묻고 있다. 단순히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국가인가, 아니면 생존 속에서도 인간의 가치를 지키는 국가인가. 결국 국익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인간, 어떤 문명을 지향하는가에 대한 총체적 선택이다. 대한민국이 K-시리즈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지금, 우리는 그 위에 어떤 정신을 얹을 것인가를 결단해야 한다.
 
강대국의 질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그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존엄과 최소한의 인권, 그리고 그것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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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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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뭣 때문에 전쟁하는 건데? 하고 싶으면 다이다이 붙어서 해결해라 세계사람들 고생시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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