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이란전쟁이야기 | 진리·정의·자유] 호르무즈의 문 앞에서—종교와 길과 권력이 부딪힌 5천년, 이제 평화로 갈 수 있는가

중동의 하늘은 언제나 두 겹이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전장의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수천 년의 역사와 신념이 켜켜이 쌓인 보이지 않는 하늘이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이란 전쟁 역시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와 민족, 그리고 경제의 길목을 둘러싼 오랜 충돌이 다시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어제와 오늘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오는 20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2차 종전 담판을 앞두고 있다. 한편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전면 개방하며 협상 의지를 드러냈고, 이에 세계 금융시장은 즉각 반응해 급등세를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란 의회는 미국이 해상 봉쇄를 유지할 경우 해협을 다시 폐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열림과 닫힘, 기대와 불신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기묘한 균형이 지금의 중동이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열릴 예정인  파키스탄 세레나 호텔 사진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열릴 예정인 파키스탄 세레나 호텔 [사진=연합뉴스]

이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사건을 오늘만의 사건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중동의 갈등은 언제나 시간의 두께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예루살렘은 그 상징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세 종교가 모두 성지로 여기는 이 도시는 지난 2천 년 동안 끊임없는 충돌의 중심에 서 있었다. 신의 이름은 같을지라도, 그 신을 이해하는 방식과 역사적 기억은 서로 달랐다. 신앙은 인간을 구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을 분열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기도 했다.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세계의 갈등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바로 이 신앙과 기억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종교만으로는 오늘의 이란을 설명할 수 없다. 이란은 페르시아의 후예다. 5천 년에 가까운 문명을 가진 이 나라는 언제나 ‘길’을 지배해 온 국가였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은 왕의 길을 통해 제국을 연결했고, 이후 실크로드의 핵심 축을 장악하며 동서 교역의 흐름을 통제했다. 길을 지배한다는 것은 곧 부를 지배한다는 뜻이었다. 물류와 유통을 장악한 국가는 자연스럽게 권력을 축적했고, 그것이 곧 국가의 생존 전략이 되었다.


오늘의 호르무즈 해협은 바로 그 연장선에 있다. 이 좁은 바닷길은 현대판 실크로드다. 세계 원유의 상당 부분이 이곳을 지나고, 아시아와 유럽, 미국을 연결하는 에너지의 동맥이 이곳에 있다. 이란이 이 해협을 쥐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지리적 사실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축적된 ‘길목 지배 전략’의 현대적 구현이다.


따라서 지금 벌어지는 충돌은 단순히 미국과 이란의 대립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적 기억, 문명적 자부, 그리고 경제적 통제가 한 지점에서 충돌하는 구조다. 여기에 현대의 지정학과 에너지 패권, 그리고 금융 시스템이 더해지면서, 이 전쟁은 복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의 변화는 분명한 해법을 던진다. 해협 개방, 금융시장 반등, 협상 재개—이 모든 것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전쟁의 지속보다 종전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는 사실이다.


이제 남은 것은 선택이다. 전쟁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질서를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은 특정 국가 하나의 의지로 완성될 수 없다. 지금의 중동 평화는 각 주체가 역할을 분담하는 다층적 해법을 요구한다.


먼저 미국이다.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압박 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압박을 협상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해상 봉쇄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되, 이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일방적 강경 노선은 협상을 깨뜨릴 뿐이며, 장기적으로는 중동 질서에서 미국의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란 역시 결단이 필요하다. 해협을 무기로 삼는 전략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국제사회의 고립을 심화시킨다. 핵 문제에 대해 단계적 양보와 투명성을 확보하고, 경제 회복을 위한 국제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페르시아의 오랜 지혜는 ‘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길을 통해 번영하는 것’에 있었다는 점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은 종교와 안보의 균형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예루살렘 문제는 힘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공존의 원칙 위에서만 지속 가능한 해법이 나온다. 특히 주변 아랍 국가들은 이란과의 갈등을 단순한 적대 구도로만 보지 말고, 지역 안정이라는 더 큰 틀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


유럽은 중재자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유럽은 중동 문제에서 때로는 갈등의 원인이었으나, 동시에 외교적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다자 협상 틀을 구축하고, 제재 완화와 경제 협력을 연결하는 실질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이제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다. 에너지 의존 구조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은 곧 국가 생존과 직결된다. 동시에 K-문화와 산업을 통해 세계와 연결된 한국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한국은 해상 안전 협력, 인도적 지원, 그리고 다자적 외교를 통해 실질적 기여를 해야 한다. 평화를 지지하는 것을 넘어, 평화를 만드는 데 참여해야 한다.


결국 이번 전쟁의 결론은 단순한 휴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새로운 질서의 출발이어야 한다. 종교는 공존으로, 길은 개방으로, 경제는 협력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가능하다.

호르무즈의 문은 열릴 수도 있고, 다시 닫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의 길은 닫혀서는 안 된다. 이제는 길을 나누는 시대가 아니라, 길을 함께 여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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