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66) 글을 토막내어 본래의 뜻을 왜곡하다 - 단장취의(斷章取義)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춘추시대 말기, 제나라 대부 최저와 경봉이 제장공(齊庄公)을 시해하고 그의 이복동생을 새 군주로 옹립한 후 권력을 나눠 가졌다. 장공의 충직한 위사(衛士,경호원)였던 노포규와 왕하는 다른나라로 도피했다. 노포규는 떠나기 전에 동생 노포별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저와 경봉의 신임을 얻어 적당한 시기에 내가 돌아와 장공의 원수를 갚을 수 있게 해라."

노포별은 형의 당부를 잊지 않고 경봉의 가신이 되었다. 조정의 실권이 최저에게 있음을 간파한 노포별은 최저의 아들들이 후계자 다툼을 벌이는 상황을 이용하여 최저 일가를 몰살하고 경봉의 신임을 얻었다. 모든 권력을 손에 쥔 경봉은 주색에 빠져 아들 경사에게 국정을 일임했다. 시기가 무르익자 노포별은 형 노포규가 귀국하여 경사의 경호원이 되게 손을 썼다. 노포규의 용력이 마음에 쏙 든 경사는 자신의 딸 경강을 노포규에게 시집보냈다. 경사의 사위가 된 노포규는 이전의 동료 왕하를 불러들여 자신과 함께 경사의 경호를 맡게 했다. 이후 두 사람은 경봉 부자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규합하는 등 치밀한 준비 끝에 경사를 죽이고 경씨 잔당을 소탕함으로써 주군 장공의 복수를 완성했다. 

훗날 누군가 노포규에게 물었다. "경(慶)씨와 노(盧)씨는 모두 강(姜)씨 성의 후예들인데, 어찌하여 경씨와 혼맥을 맺고 경강을 아내로 삼았소?" 이때 노포규의 답변이 이러했다. "경사가 같은 종친인 나를 기피하지 않고 딸을 주는데, 내가 왜 이를 마다하겠소? 《시경》의 시구 일부를 따서 자신의 뜻을 표현하듯, 내가 원하는 것(경사의 사위가 되어 복수할 기회를 잡는 것)만 취하면 그만이지, 종친인지 아닌지를 어찌 따지겠소?" (宗不余辟, 余獨焉辟之? 賦《詩》斷章, 余取所求焉, 惡識宗?)"

노포규의 이 말에서 성어 '단장취의(斷章取義)'가 유래했다. 단장취의는 '글을 토막 내어 뜻을 끄집어 낸다'는 뜻으로, 남이 쓴 문장이나 말을 인용할 때 전체적인 뜻과 관계없이 그 중  일부분만 취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행태를 말한다. 출전은《춘추좌전(春秋左傳)•양공(襄公)28年》 이다.

춘추시대에 《시경(詩經)》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사대부들이 갖춰야 할 필수 교양이자 공용어였다. 자신의 의사나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교양이 없다고 여겨《시경》의 특정 구절을 읊어 완곡하게 전달했다. 이를 '부시언지(賦詩言志)'라고 한다. 본의에 어긋나게 시의 일부를 끊어내어 인용해도 무방했다. 단장취의가 지적인 능력으로 대접받고 유용한 수사법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유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학문적 엄격함이 요구되었고, 경전의 본래 의미를 훼손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확산되었다. 오늘날 단장취의는 맥락 왜곡과 아전인수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여권이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를 겨냥한 총력전에 들어갔다. 이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은 퇴임 후 즉각 재개될 재판들이다. 뒷골을 늘 잡아당기고 있을 이 사법리스크의 싹을 자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검사가 공소를 취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1심 판결 후엔 공소 취소를 할 수 없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사건이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조작기소 국조특위'가 이들 세 건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다. 

대북 송금 사건은 2019년 경기도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을 성사시키기 위해 쌍방울 자금 300만 달러를 북한에 송금하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사건 공범으로 기소됐다. 여권은 검찰이 이 대통령을 주범으로 엮어넣기 위해 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과 이화영 전 부지사 등을 회유해 이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받아냈다고 주장한다. 당시 사건 수사를 지휘한 박상용 검사가 진술 회유와 조작 기소를 주도했다며 집단 린치에 가까운 조리돌림을 하고 있다. 국회는 위증 혐의로 고발했고 법무부는 직무를 정지했으며 대검은 감찰을 지시했다. 박 검사는 2차 종합특검과 공수처 수사도 받고 있다. 

엄청난 화력을 퍼붓는 공세에 비해 조작 기소 의혹의 근거는 허술하다. '연어 술파티'를 벌여주고 진술을 회유했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허점을 보이며 설득력을 잃자 이화영 전 부지사의 변호를 맡았던 서민석 변호사가 휴대폰 녹취록을 들고나왔다. 그런데 녹취록 전체를 공개하지 않고 일부분만 잘라 찔끔찔끔 공개함으로써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당장 박상용 검사로부터 "(공개된 녹취록은) 전체 맥락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말을 마치 불법적 회유나 거래 시도처럼 왜곡된 것"이라며 앞뒤 자른 짜깁기 녹취 말고 파일 전체를 공개하라는 반박이 튀어나왔다. 

말이든 글이든 의미 해석에 '맥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녹취록도 마찬가지다. 질문과 답변의 흐름, 발화자의 어조, 전후 문장의 조건과 단서가 결합되어 의미를 형성한다. 그렇기에 특정 문장이나 표현만을 분리해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본래의 취지가 훼손되고 의도가 왜곡되기 쉽다. 짜깁기는 단장취의와 이음동의어다. '조작'이나 '회유' 시도를 한 적이 없다며 박상용 검사는 서 변호사에게 1억 손배소를 청구했다. 서 변호사는 현재 민주당의 청주시장 예비후보 중 한 명이다.

조조가 동탁의 추적을 피하여 도망가던 중 아버지의 친구 여백사의 집에 묵었다가 밖에서 “묶어 놓고 죽일까(縛而殺之, 何如)?”하는 소리를 듣고 자기를 죽이려는 것으로 오해하여 여백사 일가를 모두 죽였다. 실상은 돼지를 잡아 대접하려고 하인들이 나누던 이야기였다. 이 오판은 조조 일생일대의 오점으로 기록됐다. 앞뒤를 자른 말과 글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국회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소모적인 논란을 종식시키려면 대통령의 말 한 마디면 족하다. "공소취소 바라지 않는다. 퇴임 후 정정당당하게 재판 받겠다." 그런데 대통령의 입이 이 문제에서만큼은 굳게 닫혀 있다. 궁금해 하는 국민이 많을 것 같다. 민주당도 그렇다. 검찰의 조작 기소 증거가 있다면, 그래서 대통령의 무죄를 확신한다면 공소 취소에 집착할 게 아니라 당장 이재명 대통령 재판을 재개하자고 해야 이치에 맞는 것 아닌가.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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