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에도 이러한 연결은 이어졌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한국전쟁 당시 인도는 의료지원과 중립국 역할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기여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선택이 아니라 인간 존엄과 평화라는 공동의 가치가 작동한 결과였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 양국 협력이 일회적 이해관계를 넘어 장기적 동반자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러한 흐름 위에서 2010년 발효된 CEPA는 양국 관계를 제도적으로 묶어낸 첫 번째 큰 틀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흔히 FTA와 CEPA를 같은 것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양자는 분명한 차이를 갖는다. FTA(자유무역협정)는 주로 상품 관세를 낮추거나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춘 협정이다. 반면 CEPA는 관세를 넘어 서비스, 투자, 인적 교류, 산업 협력까지 포함하는 보다 넓은 개념이다. 다시 말해 FTA가 ‘시장 개방’ 중심이라면, CEPA는 ‘공동 성장’을 지향하는 구조다. 특히 인도는 자국 산업 보호와 균형 발전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유무역’이라는 표현보다 ‘경제동반자’라는 개념을 선호해 왔다. CEPA라는 명칭 자체가 이미 상생과 패키지 협력을 전제로 한 용어인 셈이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 CEPA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뉴델리에서 논의한 개선 협상은 단순한 보완이 아니라 구조적 업그레이드를 요구받고 있다. 현재 한·인도 교역 규모는 약 270억 달러 수준이며, 양국은 이를 2030년까지 500억 달러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단순한 증가가 아니라 약 80% 이상의 도약을 의미한다. 이 수치를 달성하려면 기존의 교역 구조만으로는 부족하다. 산업의 질과 협력의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산업 협력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는 방위산업이다. 한국의 K9 자주포가 인도에서 현지 생산되는 사례는 단순한 수출을 넘어 기술 이전과 공동 생산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다. 방산 협력은 단순한 군사 거래가 아니다. 그것은 소재·부품·장비, 전자·통신, 인공지능, 항공우주까지 연결되는 종합 산업이다. 즉 방산은 경제안보의 다른 이름이며,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끌어올리는 핵심 분야다.
경제 구조 역시 변화하고 있다. 과거 자동차와 철강, 가전 중심의 교역에서 벗어나 이제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AI, 디지털 인프라, 핵심 광물 공급망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도는 세계 최대 수준의 IT 인력과 내수 시장을 갖고 있고, 한국은 제조와 시스템 통합에서 강점을 가진다. 이 두 축이 결합할 경우 단순한 수출입 관계를 넘어 공동 생산과 공동 투자, 공동 수출이라는 새로운 경제 모델이 가능해진다.
해양과 물류 협력도 중요한 축이다.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질수록 호르무즈 해협과 인도양 항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인도는 지정학적으로 이 해상 네트워크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과의 협력은 공급망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조선, 해운, 항만, 물류 인프라까지 연결되는 협력은 단순한 산업 협력을 넘어 국가 생존 전략의 일부다.
문화와 콘텐츠 산업 역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의 K-콘텐츠와 인도의 볼리우드는 각각 세계 시장에서 독자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 두 산업이 결합할 경우 공동 제작과 글로벌 유통이라는 새로운 모델이 형성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문화 교류를 넘어 미래 세대의 감수성과 가치관을 함께 형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더욱 밝은 전망이 열린다. 인공지능, 우주항공, 원자력, 디지털 전환은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영역이다. 인도의 소프트웨어 역량과 한국의 하드웨어 기술이 결합할 경우, 새로운 혁신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특히 AI 시대에는 데이터, 인력, 알고리즘, 인프라가 통합된 구조가 필요하며, 양국 협력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유력한 조합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한·인도 협력의 진정한 가치는 양국 시장을 넘어 제3국으로 확장되는 데 있다. 한국과 인도는 함께 아프리카, 중동,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 진출할 수 있다. 한국은 기술과 금융, 프로젝트 관리 역량을 갖고 있고, 인도는 인적 네트워크와 지역 접근성을 갖고 있다. 이 두 요소가 결합하면 인프라 건설, 에너지, 방산, 디지털 정부, 스마트시티, 교육,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 진출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글로벌 질서 속에서 새로운 영향력을 형성하는 전략이다.
한국과 인도는 모두 다종교·다문화 사회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서로 다른 전통과 신앙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경험은 갈등이 아니라 공존의 지혜를 축적해 온 역사다. 인도의 고대 경전인 베다에는 “진리는 하나이나, 현자들은 그것을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Ekam sat vipra bahudha vadanti)”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문명적 통찰을 보여준다. 또한 불교 경전인 법구경은 “증오는 증오로써 그치지 않고, 오직 자비로써 그친다”고 가르친다. 서로 다른 전통에서 나온 이 가르침은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공존과 평화, 그리고 인간 중심의 질서다.
이 정신이 양국 협력의 근간이 될 때, 한·인도 관계는 경제를 넘어 문명적 동반자로 도약할 수 있다. 결국 CEPA는 더 이상 무역 협정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 안보, 기술, 문화가 결합된 거대한 협력 플랫폼이다. 현재 270억 달러 규모의 교역을 2030년 500억 달러로 확대하는 목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양국이 서로를 어떤 관계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과거의 CEPA가 시장에 들어가기 위한 문이었다면, 이제의 CEPA는 함께 길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 길은 한국과 인도를 넘어 아프리카와 중동,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 이어질 것이다. 바다는 이어져 있고 문명은 연결되어 있으며, 미래는 협력하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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