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반도체 착시'에 가려진 한국 경제의 외날개 비행

한국 경제의 지표상 수치는 눈부시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1.7% 깜짝 성장하며 5년 만에 고점을 찍었고, 코스피는 6500선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숫자만 보면 완연한 봄날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특정 산업에만 온기가 집중된 '기형적 호황'의 그림자가 짙다. 지금의 성장은 균형 잡힌 도약이라기보다, 사실상 '칩(Chip) 하나'에 의지해 위태롭게 버티는 외날개 비행에 가깝다.  

그 중심에 선 반도체 거인들의 성적표는 압도적이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매출 52조원, 영업이익 37.6조원이라는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72%라는 경이로운 영업이익률은 일반적인 제조업의 상식을 파괴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 역시 1분기 영업이익이 57.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이미 작년 한 해 전체 수익을 단 한 분기 만에 훌쩍 넘어섰다. 두 공룡이 1분기 상장사 전체 이익의 7할(67%)가량을 독식하는 구조적 쏠림은 이제 한국 경제의 상수(常數)가 되었다. 

문제는 이 화려한 '반도체 파티'에서 소외된 나머지 엔진들이다. 자동차와 배터리 등 주력 제조업은 출력을 잃고 멈춰 섰으며, '반도체 호재'라는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내면 서비스업(0.4%)과 민간소비(0.5%)의 초라한 성적표가 드러난다. 거시 지표는 뜨거운데 민생 체감 온도는 영하권인 이 지독한 괴리는 한국 경제가 '고점의 착시'에 빠져 있음을 방증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 대비 7.8포인트 급락한 99.2를 기록했다. 1년 만에 기준선인 100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낙폭으로 따지면 지난 2024년 12월 계엄 선포 정국 당시의 충격 이후 최대치다.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주가가 천장을 뚫는 사이, 정작 서민들의 심리는 계엄령에 준하는 공포와 비관에 휩싸여 있다는 얘기다. 

세부 지표를 뜯어보면 사태는 더욱 엄중하다. 현재생활형편(91)과 생활형편전망(92) 등 가계 살림살이와 직결된 지표들이 일제히 꺾였다. 특히 현재경기판단 지수는 18포인트나 폭락한 68에 머물렀다. 기업 이익은 폭증하는데 가계는 내일의 소득을 걱정하며 지갑을 닫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중동발 에너지 쇼크라는 대외 악재는 공급측 물가 압박을 가중하며 실질 구매력을 더욱 갉아먹고 있다. 거시 경제의 온기가 미시 경제로 흐르는 혈로(血路)가 완전히 막혀버린 '경제적 동맥경화' 상태다. 

금융 시장의 하반신 역시 부실한 레버리지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신용융자 잔고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고신용자들까지 고금리 카드론에 손을 뻗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가 6500선이라는 화려한 성곽이 빚으로 쌓아 올린 사상누각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자산 가격은 폭등하는데 소득 기반은 취약해지는 불균형 속에서, 외부 충격으로 자산 거품이 꺼질 경우 그 충격은 가계 부채라는 도화선을 타고 사회 전체로 전이될 수 있다.  

정부는 이제 '수출 1위', '역대급 이익'이라는 숫자의 함정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는 순간, 한국 경제를 지탱하던 유일한 기둥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절실하다. 통화와 재정 정책은 단순히 단기 경기 지표를 방어하는 수준을 넘어, 무너진 내수 기반을 재건하고 산업 구조를 다변화하는 '체질 개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코스피가 장중 6500을 돌파한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2026423 연합뉴스
코스피가 장중 6500을 돌파한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2026.4.23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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