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P 데스크 칼럼] 사랑의 조건은 계산되고, 신뢰의 가치는 버려졌다

결혼은 오래전부터 거래였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애써 '사랑'이라는 숭고한 이름으로 포장해왔을 뿐이다. 지난해 화제작 〈머티리얼리스트〉는 그 포장을 정면으로 벗겨냈다. 연봉, 외모, 학력, 나이. 조건을 정교하게 조합해 최적의 매칭을 설계하는 커플매니저 루시는 냉소적으로 읊조린다. "사랑은 변수고, 결혼은 계산이다." 그녀의 세계에서 불확실성이 제거될수록 결혼의 성공 확률은 치솟는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조건이 명확할수록 실패는 줄어든다. 그러나 그 계산이 완벽해질수록 인간은 점점 더 취약한 존재로 전락한다는 역설이 있다. 국내 최대 결혼정보업체 듀오에서 발생한 43만 명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그 역설의 가장 불편한 민낯을 드러냈다.

유출된 정보는 단순한 이름과 연락처가 아니었다. 키, 체중, 혈액형, 종교는 물론이고 혼인 이력, 가족 관계, 직장, 경제력, 건강 상태까지 포함됐다. 한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모든 서사가 수치화되어 통째로 빠져나간 것이다. 말 그대로 '인생 데이터'의 상실이었다. 

결혼정보회사의 본질은 사람을 연결하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을 해부하고 가격을 매기는 데 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스스로 그 시스템의 제물이 되기를 자처한다. 나를 가장 투명하게 드러낼수록 나에게 꼭 맞는 완벽한 조건을 살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그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 모래성 위에 서 있었는지를 증명했다. 유출된 43만 명 중 무려 30만 명은 이미 계약이 종료되어 데이터가 파기되었어야 할 회원들이었다. 법적 지침마저 어기며 굳이 보관해온 정보는 결국 해커의 손에 넘어갔다. 더 참담한 것은 기업의 대응이었다. 유출 사실을 인지하고도 72시간 내 신고 의무를 외면했고, 피해자들은 자신의 인생이 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뉴스로 접해야 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은 약 12억 원이다. 피해자 수로 나누면 1인당 약 2800원, 커피 한 잔 값에도 못 미친다.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설명하는 데이터의 법적 가격이 그렇다. 

물론 이는 매출액 기준의 현행법과 기업 규모에 따른 감경 규정이 빚어낸 구조적 한계일 수 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왜 우리는 자신을 이토록 노출하면서도, 그 대가로 받아야 할 보호에는 이토록 무감각한가. 플랫폼 기업이나 통신사의 유출 사고와 이번 건은 결이 다르다. 결혼정보회사에 맡긴 정보는 단순한 소비 패턴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사회적 가치와 정체성 그 자체다. 그것은 유출되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약점이자, 타인의 욕망에 노출되는 치명적인 흉기로 돌변한다.

영화 속 한 장면이 묻는다. "사람들은 왜 굳이 결혼을 하죠?" 돌아오는 대답은 짧고 명료하다. "외로우니까요. 그리고 희망이 필요하니까." 

결국 사람들이 사는 것은 조건이 아니라 불안의 해소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가장 민감한 정보를 기꺼이 건넨다. 시장은 이 절박한 심리를 정확히 파고든다. 결혼정보회사는 사랑을 파는 곳이 아니다. 불안을 줄여주는 서비스를 팔고, 그 대가로 거대한 데이터 권력을 쥔다. 

결혼이 거래가 된 시대, 가장 비싸야 할 가치는 조건이 아니라 신뢰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시장에서 신뢰는 가장 값싸게 취급되고 있으며, 그 안일함이 초래한 대가는 언제나 힘없는 개인의 몫으로 귀결된다. 조건을 다 채우고도 신뢰를 잃은 결혼 시장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더 믿고 나를 내어줄 수 있을까. 
 

결혼정보회사인 주식회사 듀오정보듀오에서 회원 43만명의 신체조건 혼인경력 직업 학력 자산 등 민감한 프로필 정보가 대거 유출된 것으로 드러난 2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듀오 본사에 간판이 보인다  2026423 연합뉴스
결혼정보회사인 주식회사 듀오정보(듀오)에서 회원 43만명의 신체조건, 혼인경력, 직업, 학력, 자산 등 민감한 프로필 정보가 대거 유출된 것으로 드러난 2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듀오 본사에 간판이 보인다. 2026.4.23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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