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 직후였던 1990년대 초 ‘북방 붐’을 타고 북한·러시아·중국 접경지역인 두만강 하구 개발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현재까지 구체적인 진전은 없다. 그런데 중국은 이 논의를 되살리려는지 지난해 11월 중국 옌볜대 주관으로 제15차 두만강 포럼을 개최하였고, 12월에는 정부 간 협의체인 ‘광역두만개발계획(GTI·Greater Tumen Initiative)’ 차원에서 여러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런 가운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 사업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한국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만강 하구 개발을 둘러싼 그간의 논의 경과, 관련국들의 입장, 이 사업의 문제점,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등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두만강 유역 개발, 시작은 거창하였으나 아직 성과 없어
관련국 간 논의는 1991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지원 아래 두만강유역개발계획(TRADP·Tumen River Area Development Programme)으로 시작되었으며 한국, 북한, 중국, 몽골 그리고 러시아가 참여하였다. 2005년 9월에는 대상 지역을 확대하고 공동기금 설립 등 추진체계를 강화해 광역두만개발계획(GTI·Greater Tumen Initiative)으로 발전하였고 베이징에 사무국이 설치되었다. 한국 측에서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지역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2009년에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2차 핵실험까지 한 데 대해 유엔 안보리가 강력한 제재를 결의하자 북한이 GTI에서 탈퇴하였다. 이후 정부 간 논의의 동력이 상실된 데다 참여국들 간 기대이익의 불균형 때문에 정기적인 협의는 지속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실질적인 진전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중국은 적극적이나 나머지 국가들은 소극적
러시아는 GTI가 성사되면 극동러시아 지역, 특히 두만강과 인접한 연해주에 대한 투자 확대를 기대할 수 있겠으나 연해주에 대한 투자 유치에 GTI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므로 다소 관망하는 태도이다. 북한은 탈퇴 이후 북-중 및 북-러 양자 차원으로 나진·선봉 지역 개발을 도모하고 있으나 유엔 안보리 제재 때문에 성과가 미미하다. 내륙국인 몽골은 바다로의 출구 확보를 통한 광물 수출 루트의 다변화에 관심이 많다. 한국은 이 사업이 남북경협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관심이 많으나 유엔의 대북 제재 및 현재와 같은 남북 관계에서는 성과를 거두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지역에서 만주 지역의 해상 출구인 랴오둥반도 남단의 다롄항까지는 거리가 먼 관계로 물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가까운 해상 출구 확보에 매우 적극적이다. 한마디로 하면 중국은 얻을 것이 크고 확실하나 나머지 국가들은 기대이익이 작고 그나마 전망이 불투명하여 소극적이다.
GTI의 핵심은 중국의 동해 출해권(出海權) 확보
중국 주도로 GTI에는 관광, 에너지, 무역·투자, 환경, 농업 등 6개 분야가 설치되어 있고, 중국은 GTI가 동북아 공동 번영의 플랫폼을 지향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협력 분야의 확대는 한국 등 관련국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라 하겠다. 두만강 하구 항만 개발, 즉 동해 출해권 확보는 중국의 숙원이다.
만주 지역, 특히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은 바다로의 출구가 없는 내륙지역이라 대외 무역 경쟁력이 중국 중남부 해안 지역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이 지역이 경제적으로 낙후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바다로의 출구가 없어 물류비용이 크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따라서 동해로의 출구가 확보되면 이 지역의 경제개발이 획기적으로 촉진될 것이다. 중국은 동북 지역 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GTI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여러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왔다. 북한의 나진항에 전용 부두를 확보해 장기 임차하였고, 2023년 3월 시진핑 주석의 모스크바 방문 시 양국은 ‘2030년 중·러 경제협력 중점 방향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그 후속 조치로 2023년 6월부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중국 내(헤이룽장성, 지린성) 무역 화물의 경유 항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중국은 이미 동해 출해권을 어느 정도 획득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적 출해권’은 양자 협상에 의존하기 때문에 북한과 러시아가 마음을 바꾸면 언제든지 폐기될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중국은 다자 체제에 의한 안정적인 ‘법적 출해권’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중국의 동해 출해권 획득이 갖는 의미는 심상치 않다
중국이 동해 출해권을 갖게 되는 것은 달리 말하면 두만강 하구 지역이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체제 아래 들어가는 것이다. 두만강 하구에 항구가 건설되고 화물선이 드나들게 되면 보나 마나 중국 화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나진항을 비롯하여 동해안에 좋은 항구가 여럿 있고, 러시아도 연해주 해안에 블라디보스토크, 나홋카, 보스토치니, 자루비노 등이 있어 두만강 하구 항구를 이용할 실익이 없다. 결국 두만강 하구 항구는 중국판이 될 것이다. 북한의 나선 지구와 러시아의 두만강 인근 연해주 지역은 배후 지역으로서 약간의 떡고물이나 챙기는 신세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중국이 단순히 출해권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두만강 하구라는 전략적 공간을 사실상 장악하는 결과가 예상된다. 북한과 러시아의 두만강 유역 접경 구간은 약 17㎞로 매우 짧지만 물류와 군사적 측면에서 동북아 세력균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동해 출해권 확보는 중장기적으로 동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출해권 획득은 한국에 득보다 실이 많다
GTI가 성사되면 한국이 얻게 될 이익은 얼마나 될까? 대중 수출의 일부 증가, 항만 건설 및 설비 수주, 물류 협력 등 정도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많은 경제적 이익이 예상된다면서 ①부산~북한 철도~러시아~유럽으로 이어져 부산항이 유라시아 관문이 되며 물류비 절감 및 수출 경쟁력 상승 ②북한 인프라 시장 선점 ③러시아 극동 자원 확보 ④중국 만주 지역과 직접 경제권 형성 ⑤동해안의 북방 교역 거점화 ⑥철도, 항만, 선박, 에너지망 건설 증가에 따른 수혜 ⑦금융, 보험, 물류 서비스 성장 등을 열거하고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GTI의 성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TKR-TSR 연결이 두만강 하구 개발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또한 남북 경협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GTI가 성사될 상황이라면 개성공단 재가동도 가능할 텐데 굳이 두만강 유역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또한 두만강 하구에 항구가 생기면 부산에서 환적하던 중국 동북 지방의 화물은 더 이상 부산항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GTI가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빈약하다. 반면에 중국으로서는 만주 지역 경제 발전에 대한 심각한 걸림돌이 제거되는바 중국의 이익은 전면적이고 지속적이다.
현재 한국이 중국에서 압박을 받는 이유는 군사력보다는 경제 규모의 엄청난 차이이다. 만주 지역의 경제성장 잠재력은 상당한데 그 지역 경제에 날개를 달아주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1992년 수교 당시 한국과 중국의 GDP는 비슷했으나 2025년 현재 한국 GDP는 중국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된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는 이미 위험 수준이다. 한·중국 간 경제 규모 격차는 훨씬 더 벌어질 것이며, 동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 가능성 또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최근 중국에서 개최된 GTI 관련 국제회의에 다녀온 어느 학자는 “한국 정부는 GTI 전담 컨트롤타워 또는 범부처 협의체를 구성해 중장기 시나리오를 관리해야 한다. GTI를 단발성 국제회의가 아니라 전략적 플랫폼으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한국은 실무 워킹그룹, 규범·표준 설계, 국제기구와 공동 프로젝트를 주도함으로써 중·러·몽골·북한(잠재적 참여자) 사이에서 중간 조정자 역할을 제도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필자로서는 국내 일부의 그러한 주장에 대해 GTI가 중국이 최대 수혜자이고 그러한 결과가 우리나라에 갖는 장기적·전략적 함의를 잘 모르는 것인지, 알지만 무방하다는 것인지 질문을 하게 된다.
중국은 왜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랄까? 우선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다. 나아가 한국과 같이 대외신인도가 높은 나라를 끌어들임으로써 국제적 신뢰도를 높이고 ‘중국 독주’처럼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중국이 바라는 그림은 ‘중국은 주도권을 갖고, 한국은 자본과 기술을 넣고, 북한은 공간을 제공하고, 러시아는 배후 자원을 제공한다’일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GTI는 전혀 성사될 수가 없다. 한국 입장에서는 GTI 논의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으로 족하며, 필요하면 북한·러시아와 솔직하고도 깊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만일 이들 두 국가의 내부 상황이 바뀌어 대세가 중국 쪽으로 기울 것 같으면 중국에 대해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 기업의 우선 참여권, 공동 운영권 및 투자 회수 메커니즘, 다자 틀 유지, 정치적 리스크 분담 보장 등을 생각할 수 있겠다. 정부 소관 부처로는 재경부와 외교부가 있는데 재경부는 GTI 사무국에 서기관급 직원 1명을 파견하고 있으나 업무량으로는 주중 대사관 재경관이 겸직하여도 문제없다고 본다. 외교부는 GTI 홍보에만 매달리지 말고 GTI가 갖는 전략적 함의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네 가지 남북 및 국제 협력 사업에 대해 중국 측의 협력과 중재를 요청했다는데 네 가지 사업에 '광역두만개발계획(GTI)'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중국이 우리에게 할 요청을 우리가 중국에 한 셈인데 어떤 연유로 우리 측 말씀자료에 들어갔는지 궁금하다.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기대이익에 있어 중국과 나머지 국가 사이에 비대칭적인 구조가 분명하여 중국에 날개를 달아줄 뿐인 GTI에 대해 우리는 최소한 신중하게 접근하여야 하는데 중국의 들러리를 서야 되겠는가? GTI는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고토 만주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몰라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북방경제 담론에 있어 우리 국익을 장기적으로 그리고 촘촘히 챙긴다면 러시아의 극동시베리아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현명하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대 법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외교관 연수과정 수료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러시아 공사 ▷상명대 글로벌지역학부 초빙교수 ▷현 유라시아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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