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칼럼] 무기 살 돈 주는 것은, 결국 무기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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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러시아 정부는 지난 18일 한국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참여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으며 무기를 공급할 경우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재차 경고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가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해 나토와 다양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고 검토 대상에는 지난해 7월 신설된 ‘우크라이나 우선 지원 목록(PURL)’ 참여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는데, 최근 러시아의 경고는 현재까지 한국 정부 입장이 불분명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한국의 PURL 참여 여부에 대한 여러 주장을 평가해 보고자 한다.
 
PURL은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무기 목록을 나토에 제출하면 나토 회원국들의 자금으로 미국산 무기를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나토 비회원국으로는 호주와 뉴질랜드가 참여하고 있다. 일본도 최근 참여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한국이 참여하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간접 지원하는 셈이 된다.
 
첫째,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국들의 동향을 보면 우선 미국은 지난해 초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이 전쟁에서 발을 빼기로 작정하고 유럽 국가들에 대해 계속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싶으면 자신들의 돈으로 미국 무기를 사서 지원하라고 하였다. PURL은 이에 따라 나온 것이다. 그간 한국이 한·미 동맹을 의식하여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에 부분적으로 참여하여 왔는데 미국이 지원을 중단한 마당에 굳이 유럽 국가들을 의식하여 끌려다닐 필요가 있는가? 미국-유럽 관계도 트럼프가 덴마크 영토인 그린란드를 병합하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틀어지기 시작하였으며 더욱이 최근 미국의 이란 공격 이후 그러한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심지어 최근 트럼프는 나토 탈퇴를 검토하겠다고까지 하였다. 더욱이 일부 유럽 국가들조차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길 거부하고 있다. 한국은 나토 회원국이 아니지만 나토와 협력 관계에 있는 이른바 P4(호주, 뉴질랜드, 일본, 한국)의 하나이므로 한국만 빠지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는데 이들 3개국이 한국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걱정할 일인가? 더 이상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호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 K-방산의 나토 국가에 대한 수출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폴란드 잠수함 수주에서 실패한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한국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다는 유럽의 의구심 때문이며 따라서 한국이 PURL에 참여한다면 캐나다 잠수함 수주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다. 폴란드 잠수함 수주에 실패한 것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온적인 지원 때문이라는 분석은 설득력이 없다. 한국 무기가 ‘가성비’가 높은데도 수주에 실패한 것은 한국 방산의 약진에 대한 유럽 방산기업들의 강한 견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 분석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무기 좀 더 팔자고 한국의 외교 정책 노선을 바꾸자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 물론 나토 국가들에 대한 방산 수출은 한국의 방산이 세계적으로 입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되므로 정부는 이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에 대해 수출 통제를 시행한 탓에 그간 대러시아 수출이 반 토막 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또한 이란 전쟁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됨에 따라 중동에서 에너지를 도입하는 데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여 러시아산 원유를 확보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대러 관계를 더욱 뒤틀리게 할 필요가 있을까?
 
셋째, PURL 참여는 북한군 포로 송환의 지렛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의 무기 지원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우크라이나가 그 대가로 포로 송환을 적극 검토할 수 있다고 보는 의견이다. 그간 우크라이나가 북한군 포로 2명과 관련하여 한국 내 일부 보수층의 견해를 이용하여 이런저런 요구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정부가 북한군 포로 2명을 한국으로 보내게 되면 러시아와의 포로 교환 협상에서 그만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한국으로 송환해 줄 것을 희망하는 북한군 포로는 일반 탈북자와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간 한국 정부가 제3국에서 탈북자들을 데려올 때 외교 정책의 조정 필요성까지 거론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재명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윤석열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자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때와 비교하여 상황이 달라진 것이 있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5년째 지속되고 있고 언제 끝날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2023년 여름 우크라이나의 대대적인 반격이 실패한 이래 전세가 역전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 대부분의 생각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 모두 인적 물적 피해만 늘어나고 있을 뿐이다.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를 이용한 러시아의 약화’라는 목적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데 유럽 국가도 아닌 대한민국이 무엇보다도 이제 끝물인 전쟁에 왜 더욱 깊이 관여해야 하는가? 한국은 그간 독자적으로 인도적인 지원은 물론 비살상무기를 지원하였고, 나토의 ‘우크라이나 포괄적 지원 신탁기금(CAP)’에도 참여해 비살상 군수물자 지원 자금에 기여해 왔다. 그러면 충분하지 않은가? 외교부 관계자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유동적이라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어떤 지원이 가능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하였다는데 무슨 생각에서 나온 말인지 모르겠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이제는 앞으로 한·러 관계 회복과 정상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때이다. 그리고 러시아 측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이 툭하면 공개적으로 이런저런 경고를 내놓고 있는데 러시아 측의 우려는 이해가 되나 그러한 행동은 한국 내 러시아에 대한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면이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러시아로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할 수밖에 없겠으나 전쟁 후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가 전후, 특히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은 중요한 나라이다. 한·러 관계의 회복은 한국만이 아니라 양국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가 한국 측에 우려가 있다면 조용한 외교를 통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대 법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외교관 연수과정 수료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러시아 공사 ▷상명대 글로벌지역학부 초빙교수 ▷현 유라시아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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