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의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2시간의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사바스티안 사웨는 런던에서 1시간59분30초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숫자만 보면 1분 남짓의 단축이다. 그러나 이 기록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설정해온 한계를 다시 규정했다는 점, 그리고 그 한계가 결국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아니라 시간과 조건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데 있다.
마라톤에서 2시간은 오랜 상징이었다. 체력과 기술, 전략이 완벽하게 결합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엘리우드 킵초게가 비공식적으로 이 기록을 넘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것을 특수한 환경의 산물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번 기록은 다르다. 공식 경기에서, 경쟁자와 함께 달리는 조건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순간부터 2시간은 한계가 아니라 기준이 됐다.
이 장면은 기업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 기업 경쟁은 끊임없이 기록을 깨는 과정이다.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업이 시장을 이끈다. 문제는 이 경쟁이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라톤에는 결승선이 있지만 기업에는 결승선이 없다. 기업은 한 번의 레이스를 끝내면 곧바로 다음 레이스에 들어간다. 경쟁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점에서 기업 경쟁은 단일한 마라톤이 아니라 연속된 마라톤에 가깝다. 반도체 경쟁이 하나의 레이스라면 인공지능 경쟁은 또 다른 레이스다. 플랫폼 경쟁과 전기차 경쟁, 에너지 전환 역시 각각 별도의 결승선을 가진다. 기업은 이 결승선을 통과할 때마다 다시 출발선에 선다. 승리는 끝이 아니라 다음 경쟁의 시작이다.
그래서 기록 단축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반복되는 과정이 된다. 과거에는 하나의 혁신으로 오랜 기간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애플(Apple)과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구글(Google) 같은 기업들은 끊임없이 성능을 개선하고 서비스를 업데이트한다. 어제의 최고는 오늘의 평균이 된다. 기준은 계속 낮아지고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이 경쟁은 속도와 체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단기적으로는 전력 질주가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시장이 재편되는 순간에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나타나는 변화 속도는 이미 마라톤이 아니라 단거리 달리기에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속도는 장기적인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 연구개발과 인재 확보, 조직 역량이 축적되지 않으면 단기 성과는 쉽게 사라진다.
결국 기업은 마라톤 위에서 스프린트를 반복하는 존재가 된다. 속도만으로는 부족하고 체력만으로도 부족하다. 두 요소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사웨가 후반부에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도 초반부터 축적된 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마지막 순간의 도약은 장기간의 준비와 투자에서 나온다.
한국 기업들의 움직임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정 경쟁과 설계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기준을 낮추고 있다. SK 하이닉스는 고대역폭 메모리 분야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며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전기차와 자율주행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었고 LG는 배터리와 전장 사업을 통해 미래 산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록 단축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 마라토너는 극한의 훈련을 견뎌야 한다. 기업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십조 원이 들어가고 인공지능 인프라 구축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실패할 경우 그 부담은 기업 전체를 흔들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기업 경쟁은 스포츠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계는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재무적 현실의 문제다.
따라서 기록 단축은 무작정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계산된 전략이어야 한다. 어떤 분야에 집중하고 어떤 분야에서 속도를 조절할지 선택해야 한다. 모든 레이스에 동시에 전력을 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수적이다. 단계적으로 투자하고 위험을 분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리더십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언제 속도를 높이고 언제 호흡을 조절할지 판단해야 한다. 단기 성과에 집착해 무리한 투자를 하면 체력이 무너진다. 반대로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대응하면 경쟁에서 밀린다. 균형을 잡는 것이 경영의 핵심이다.
사웨의 기록은 인간 한계의 재정의를 보여준다. 동시에 기업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한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밀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 돌파는 단순한 의지로 이뤄지지 않는다. 전략과 준비, 그리고 계산된 투자에서 나온다.
기업은 한 번의 결승선을 향해 달리지 않는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또 다른 레이스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레이스는 점점 더 빠르고 더 치열해진다. 결국 살아남는 기업은 단순히 빠른 기업이 아니라 계속해서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기업이다.
2시간의 벽이 무너진 날은 단순한 스포츠 기록의 날이 아니다. 그것은 기준이 다시 설정된 날이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준은 계속 낮아지고 경쟁은 계속 빨라진다.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속도가 아니라 다음 속도를 준비하는 능력이다.
질문은 하나다. 지금의 기록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다음 기록을 향해 다시 출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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