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 광한루원에서 열린 제96회 춘향선발대회에서 우크라이나 유학생 리나씨가 ‘춘향 미’에 뽑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반응은 금세 갈렸다. “이제 춘향도 글로벌 시대네”라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춘향이 외국인이라고?”라는 어색함도 적지 않았다. 웃고 넘길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그 안에는 생각보다 중요한 질문이 숨어 있다.
춘향은 단순히 예쁜 사람을 뽑는 이름이 아니다. 조선시대 이야기 속 인물이고, 그 안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신분의 벽을 넘어 사랑을 지키고, 권력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인물이다. 쉽게 말하면 “끝까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동안 춘향은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런데 이제 그 자리에 외국인이 올라왔다. 이 장면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생각해온 ‘춘향의 얼굴’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질문은 조금 바뀐다.
춘향의 얼굴이 중요한 걸까, 아니면 춘향이 가진 의미가 중요한 걸까.
요즘 한국을 보면 이 질문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외국인 체류자가 270만 명을 넘었다.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보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학교, 회사, 카페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간다. 한국은 이미 ‘한국 사람만 사는 나라’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도 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변화 자체가 아니라 방식이다. 무조건 열어버리는 것도 위험하고, 끝까지 막아버리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핵심은 이것이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이번 외국인 수상은 전통이 무너졌다는 신호라기보다, 전통이 새로운 해석을 만나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같은 춘향이라도 보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한국인은 ‘정절’과 ‘의리’를 떠올리지만, 외국인은 ‘약속을 지키는 용기’나 ‘자기 선택을 지키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게 틀린 해석일까.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통은 한 번 정해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불편함이 생긴다. 춘향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쌓인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걸 너무 쉽게 바꾸는 건 아닌가.”
이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전통은 그냥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겉은 열고, 중심은 지키는 것이다.
외국인 참가를 허용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춘향이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까지 흐려지면 안 된다. 무대는 글로벌하게 갈 수 있지만, 기준까지 가볍게 바뀌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또 하나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춘향 정신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보자”고 말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외국인이 짧은 시간 안에 한국 고전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기준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누가 더 잘 외웠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잘 해석했느냐를 보는 것이다.
같은 춘향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지금 시대에는 더 자연스럽다. 전통은 하나의 답을 강요할 때보다, 다양한 해석을 허용할 때 더 오래 살아남는다.
물론 여기에는 또 다른 고민이 따라온다. 외국인 참가가 늘어나고, 대회가 글로벌 이벤트가 되면 자연스럽게 ‘볼거리’가 된다. 공연은 더 화려해지고, 연출은 더 자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전통이 가볍게 소비될 위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세계화와 상업성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흐름을 막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대 연출과 홍보는 글로벌하게 가져가되, 평가 기준과 의미는 더 단단하게 잡는 방식이 가능하다. 겉으로는 넓히되, 중심은 오히려 더 분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하나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춘향이 바뀐 것이 아니라, 한국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변화는 앞으로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 유입은 계속 늘고, 문화도 더 섞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통과 현실이 부딪히는 장면도 자주 등장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때마다 “맞다, 틀리다”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어디까지 열 수 있는지, 무엇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 계속 묻고 답해야 한다.
이번 ‘우크라이나 춘향’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남는다.
우리는 어디까지 바뀔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동시에
무엇만큼은 끝까지 지킬 것인가.
이 두 질문 사이에서 한국의 다음 모습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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