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家)가 고 이건희 회장 유산에 대한 약 12조원 규모의 상속세를 모두 납부했다. 2021년부터 5년에 걸쳐 6차례 분할 납부한 끝에 국내 헌정 사상 최대 규모의 상속세 납부가 마무리된 것이다. 기업 총수 일가의 사적 문제로만 볼 사안은 아니다. 이번 완납은 한국 상속세 제도의 현실과 기업 승계 구조,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돌아보게 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고인의 유산은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 등을 포함해 약 26조원으로 평가됐고, 상속세는 절반에 가까운 12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국가 전체 상속세 세수 8조2000억원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단일 상속 사례로 국가 재정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법이 정한 세금을 납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규모와 파급력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상속세는 부의 대물림을 완화하고 조세 형평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 자산 집중이 심화되는 시대에 상속세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특히 경제력 집중 우려가 큰 한국 사회에서 상속세를 단순히 부자 과세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재정 확보와 기회의 형평성이라는 공익적 목적 역시 중요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경영 안정성과 투자 여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상속세가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면 제도의 취지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실제로 국내 많은 중견·중소기업은 승계 과정에서 상속세 부담 때문에 회사를 팔거나 폐업을 고민한다. 기술력 있는 가족기업이 세금 충격을 견디지 못해 해외 자본에 넘어가거나 사업을 접는다면 국가 경제에도 손실이다.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반의 문제다.
그렇다고 해법이 단순 감세여서는 안 된다. 상속세를 무조건 낮추자는 주장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 필요한 것은 공정성과 성장의 균형이다.
첫째, 기업 승계 목적의 지분에 대해서는 일정 조건 아래 납부 기간을 더 유연하게 하거나 사후 고용·투자 유지 의무를 전제로 부담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최대주주 할증평가 제도의 합리성도 재점검해야 한다. 시장가격에도 세금을 내는데 추가 할증까지 부과하는 방식은 이중 부담 논란이 있다. 셋째, 편법 증여와 조세 회피는 더 엄격히 막아야 한다. 정직한 승계는 돕고, 탈법 승계는 차단하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삼성가의 12조원 완납은 책임 있는 납세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동시에 우리 세제가 글로벌 경쟁 시대 기업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도 묻는다. 세계 각국은 자본 유치와 기업 성장, 조세 형평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한국만 과거 틀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세금은 많이 걷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위에서 공정하게 걷고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 상속세 완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감정적 찬반을 넘어 기업 승계와 국가 경쟁력을 함께 고려한 상속세 개편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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