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을 5% 이상 확보하며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보유 목적을 바꿨다. 숫자만 보면 작은 변화 같지만, 의미는 가볍지 않다. 한국 방산 산업이 ‘개별 기업 경쟁’에서 ‘통합 체계 경쟁’으로 이동하는 분기점에 서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선 냉정하게 짚어야 할 것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는 일이다. 5% 지분은 곧바로 지배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 단계는 경영 영향력을 탐색하는 초기 진입이다. 그러나 동시에 분명한 방향성도 드러난다. 추가 투자 계획과 협력 확대 구상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지배력 강화 또는 구조 재편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이미 벌어진 변화’가 아니라 ‘어떤 구조로 설계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방산 산업의 현실은 명확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통합이 필요하다. 전투기, 엔진, 미사일, 유지·보수까지 하나로 묶는 체계 경쟁이 이미 표준이 됐다. 미국의 록히드마틴, 유럽의 에어버스는 모두 거대한 통합 구조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개별 기업이 분산된 채로는 대형 수주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화와 KAI의 결합 시도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통합은 효율을 만들지만, 동시에 집중을 낳는다. 집중은 다시 경쟁 약화와 구조적 경직성을 부를 수 있다. 이 딜레마를 풀지 못하면 ‘국가대표 기업’은 곧 ‘국가 독점 기업’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해법은 모순의 회피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다. 방향은 분명하다. 상단은 통합하고, 하단은 경쟁하게 만드는 이중 구조다. 체계종합 기업은 통합 역량을 강화하되, 부품·소재·기술 영역에서는 다층적 경쟁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세계 방산 산업이 이미 채택하고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통합과 경쟁은 양립 불가능한 개념이 아니라, 설계에 따라 동시에 작동할 수 있는 구조다.
민영화 논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KAI는 정부 주도로 성장한 전략 자산이다. 민영화는 자율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방산 산업은 일반 제조업과 다르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고, 정부 수요 의존도가 높으며, 기술 통제가 필수적이다. 완전한 자유 시장 모델이 작동하기 어렵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규제된 민영화’다. 경영은 민간에 맡기되, 기준은 국가가 설정하는 방식이다. 기업은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정부는 기술·안보·공정 경쟁이라는 최소 기준을 관리한다. 경영 개입이 아니라 룰 설정이다. 이 선을 넘으면 민영화는 무력화되고, 이 선을 놓치면 안보 리스크가 발생한다.
기술 문제도 같은 원리로 봐야 한다. 국내 기업으로 기술이 집적되는 것을 ‘주권 훼손’으로 보는 것은 과장이다. 오히려 해외 의존이 줄어드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다른 리스크가 존재한다. 특정 기업에 기술이 과도하게 집중될 경우, 산업 전체의 유연성과 회복력이 떨어질 수 있다. 단일 실패가 전체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안의 본질은 하나다. 통합의 힘을 살리면서 분산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가다. 방산 산업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는 분야다. 통합이 없으면 경쟁에서 밀리고, 분산이 없으면 시스템이 취약해진다.
한화의 KAI 경영 참여는 기회이자 시험대다. 제대로 설계하면 한국 방산 산업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그러나 설계 없이 추진될 경우, 효율과 경쟁을 동시에 잃을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누가 갖느냐보다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 방산 산업의 미래는 이번 선택의 방향이 아니라, 그 설계의 정교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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