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자투리 리뷰] 빌런에서 다크히어로로… '스승의 은혜'는 이제 학교 어디에도 없다

  • 샘 리처드 교수, 한국 교육현장 문제를 '눈치' 문화로 진단

  •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 '구더기' 때문에 학교서 쫓겨날 지도

인종과 문화, 특히 한국 문화에 대해 깊에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샘 리처드 교수는 본인의 유튜브에서 코미디언 이수지의 ‘유치원 풍자’ 영상콘텐츠를 보고 씁쓸한 감상평을 남겼다.
 
사진샘 리처드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사진=샘 리처드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리처드 교수는 “매우 재미있는 영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하다”고 운을 떼며 “한국의 많은 학부모들은 선생님 노릇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선생님이 수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맞춰줘야 할 모습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모든 학부모는 자기 아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선생님에게 특별한 요구를 한다”며 “한국 교사의 절반이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수지씨는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아주 웃기게 표현했다”고 소감을 남겼다.
 
리처드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한국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눈치’ 문화 때문이라고 그 원인을 진단했다. 교사들이 좀 더 성공한 지위로 올라서기 위해서 학부모들뿐 아니라 학생들, 또는 관련된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어야 하므로 늘상 ‘눈치’를 살피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이다.
 
그런 일면이 없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핵심을 짚는 진단은 아니다. 선생님들이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을 감당해야 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 법에 닿아 있다.
 
2014년에 공포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당시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사건이 여러 건 발생하면서 제정된 법이지만, 현재 학교에서 이 법은 현장에서 교사를 옴짝달싹할 수도 없게 악용되는 중이다.
 
최근 ‘부당한 아동학대 신고에서 살아남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낸 김현주 교사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황당한 학부모의 ‘아동학대 신고’ 실태를 직접 세상에 말하기 시작했다.
 
책 부당한 아동학대 신고에서 살아남기 김현주 저 사진학교도서관저널
책 '부당한 아동학대 신고에서 살아남기' (김현주 저) [사진=학교도서관저널]
 
신동아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김현주 교사가 나열한 학부모의 아동학대 신고 사례는 이러하다. A가 친구를 밀어버려 아이들이 연쇄적으로 쓰러져 A의 이름을 부르며 제지했는데 ‘교사가 옆반까지 들릴 정도로 70번 가까이 아이의 이름을 불러 정서적으로 학대했다’고 신고.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문장을 쓰게 한 것이 성적으로 사랑을 강요했다며 신고. 교사가 병가를 낸 사이 학급에 다툼이 일어나자 학부모가 해당 교사를 ‘방임’으로 신고. 학급 티셔츠 주문을 위해 사이즈를 체크하게 한 것을 ‘몸매 품평’이라며 신고.
 
해당 인터뷰 기사에서 나온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다. 현장에서 이토록 황당한 민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랍기만 하다.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구더기 무서워 장독 없애면 안된다”는 발언에 발끈한 한 초등학교 교사의 발언 또한 충격적이다.
 
이 발언의 주인공은 강석조 초등교사 노조위원장이다. 지난 7일 교육부 주관의 ‘안전한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교육공동체 간담회’에서 그는 “이 자리는 교사들이 고통 받기 몇 년 전부터 이미 있어야 했던 자리”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강석조 교사가 밝힌 학부모의 민원 내용은 또 이러하다. 현장학습에서 학생들 사진 200장을 찍어주면 ‘왜 우리 애는 5장만 나왔나’, ‘우리 애 표정이 왜 안좋나’ 등의 민원들. 강석조 교사는 “교육활동 중 발생하는 예측불가한 사고에 대해 교사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며 “현장 체험학습을 강제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선생님들의 스승으로서 위상이 땅에 떨어지고, 민원을 해결하는 서비스직으로 전락하게 된 원인은, 지나친 법 적용이라는 꽤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단순히 ‘호감’을 얻기 위한 행동으로 진단하고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더 어필하여 이 상황을 해결하라는 샘 리처드 교수의 진단과 처방은 순수하게 학문적이기만 하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2001년 영화 ‘친구’에서 선생님은 저런 대사를 자연스럽게 내뱉을 수 있는 부당한 권위의 상징이었다. 영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의 선생님 역시 여학생의 얼굴을 피가 터지게 때려도 괜찮은, 야만의 시대를 반영한다.
 
2006년 공포영화 ‘스승의 은혜’는 최악의 빌런 자리에, 세상 인자해 보이는 초등학생 시절의 스승을 갖다 놓았다. 이 고어한 슬래셔 영화의 잔인함을 온 몸으로 받아 안은 선생님은 다름 아닌 우아한 여배우의 상징 같았던 배우 오미희였다.
 
영화 스승의 은혜의 한 장면 사진쇼이스트
영화 '스승의 은혜'의 한 장면 [사진=쇼이스트]
 
부드러운 말씨와 자애로운 미소로 존경 받는 스승인 줄 알았던 박여옥 선생을 오미희 배우가 연기한 것은 이 영화의 끝을 장식하는 학생들의 잔인한 복수가 더욱 빛을 발하게 한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선생님은 꽤 악독한 빌런으로 큰 활약을 했다. ‘말죽거리 잔혹사(2004)’가 그랬고 ‘써니(2011)’의 과거 장면에 나오는 선생님도 그랬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폭행하는 장면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 단골처럼 등장해도 누구도 이상하다가 생각하지 않던 시대다.
 

나 선생님 아니다. 그냥 너 같은 놈 잡는 고양이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선생님은 다크히어로로 변신해 가면을 쓰고 나섰다.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기간제 교사 ‘소시민(신혜선)’은 정교사가 되기 위해 온갖 불의를 다 참아봤지만 학교의 악마 ‘한수강(이준영)’의 갖은 만행을 결국 참지 못하고 고양이 가면을 썼다.

안하무인·절대권력의 문제아를 학교도, 법도 해결해 주지 못하니, 가장 약자의 입장에 서 있는 기간제 교사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이 영화의 설정은 변화한 교육의 현장을 극단적으로 대변한다.
 
영화 용감한 시민 한 장면 사진스튜디오N
영화 '용감한 시민' 한 장면 [사진=스튜디오N]

곧 공개될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은 더 통쾌해질 작정인가 보다. 교사의 권위가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고 학교는 도박, 마약, 폭력조직의 온상이 되었으니, 아예 교권보호국이라는 새로운 기관이 나서서 학교를 지키는 참상을 ‘참교육’은 그리고 있다.
 
교사를 학생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세계관. 이 참혹한 세계관이 공감을 얻고 그것을 소재로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 현재의 교육현장이 비정상이라는 신호다. 교사에게 지워질 법적 책임이 두려워 요즘 아이들은 수학여행, 소풍, 심지어 운동회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는 대통령의 말은 학교에서 받아야 할 가장 기초적인 집단 체험조차 받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에 대한 안쓰러움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현장의 선생님들은 ‘구더기’ 때문에 ‘장을 못 담그는’ 수준이 아니라 본인의 직업과 커리어가 송두리째 날라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실재한다.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서 샘 리처드 교수가 비록 최근 이수지의 유치원 풍자를 접하고 한국 교육의 아쉬움을 짚었지만 사실 그는 훨씬 더 이전에는 한국에 ‘스승의 날’이 있다는 것이 정말 멋진 일이라고 극찬한 바가 있다.
 
리처드 교수는 “일년에 한번 ‘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나라에서 살아온 한국 학생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며 “‘스승의 날’은 단지 선생님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문화가 교사를 존중하고 기리고 있음을 안다”라고 말했다.
 
교육 현장의 균형을 다시 세워야 할 때다. 교권과 학생의 인권, 부모의 학교에 대한 신뢰가 서로 균형을 잡아야 우리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함께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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