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양면성의 균형감각

사진노희진 사회적 기업학회 고문
[사진=노희진 사회적 기업학회 고문]

우리 사회를 인체에 비유하면 금융은 인체의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인체에 혈액이 제대로 돌지 않으면 건강에 이상이 생기듯 사회적으로 필요한 곳에 금융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최근 금융시스템의 잔인성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잔인하다고 하는 의미는 아마도 신용도가 낮은 취약계층에는 높은 금리를 부과하고 신용도가 높은 부유한 계층에는 낮은 금리를 부과하는 현 금융시스템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신용등급이 금융이 설계한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라며 낡은 신용평가 틀을 과감히 넓혀야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신용등급에 따른 금융 제공의 경직성을 완화해보자는 취지로 생각된다.

이러한 논란 이후 중앙일보(5월 14일)는 주요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금리가 고신용자는 4.9%, 저신용자는 3.7% 정도 된다고 보도했다. 금융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쉽게 얘기하면 은행 입장에서 저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주면 고신용자보다 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금리는 낮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은행에 돈을 빌리고 안 갚으면 더 우대를 받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현대 재무학의 양대 이론은 포트폴리오 이론과 자본자산가격결정모델(Capital Asset Pricing Model) 이론이다. 포트폴리오 이론은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하면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이론이고, CAPM은 높은 수익을 추구하면 리스크도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재무학에서는 리스크는 가격의 요소라는 점을 밝힌다.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적 은행 입장에서 리스크가 높은 고객에게 비싼 비용(이자율)을 부과하는 것은 이론적 측면에서 당연하다.

리스크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이자율을 부과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은행이 담합을 하여 높은 이자를 부과하면 정부(공정위나 금융위)가 나서 적정성을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경영 판단으로 개별 은행이 이자율을 결정하면 금융소비자는 싼 데를 찾아갈 것이고 은행끼리 경쟁을 통해 적정한 금리가 형성된다.

은행은 리스크가 높은 고객에게는 높은 금리를, 우량 고객에게는 낮은 금리를 부과한다. 리스크가 높은 고객은 쉽게 말하면 은행에서 빌린 돈을 안 갚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객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존 금융이론은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가격결정모델에 반영하지 않는다.

신용도가 낮아 금융 지원을 받기 어려운 저신용자에게 금융 지원을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까? 사회적 가치가 있어 금융 지원의 필요성은 있으나 기존 상업적 금융 시스템으로 지원하기 어려운 분야의 금융 지원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금융시스템은 크게 은행 위주로 자금이 공급되는 은행 위주 금융 시스템과 자본시장 위주로 자금이 공급되는 시장 위주 금융 시스템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 초기 단계에 국내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부가 강제로 저축을 하게 했고 그 재원을 전략적으로 필요한 산업에 은행을 통해 배분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정부 주도의 은행 시스템으로 출발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투자자의 자금이 기업에 원활히 공급될 필요성이 생겨 자본시장의 규모가 커지게 돼 은행에 버금가는 증권회사들이 자본시장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금융시스템이 은행 위주에서 시장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을 제공하고 예금자의 예치금을 모아 주로 대출 상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개별 예금자의 운영에 대한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다. 또한 예금자의 원금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대출 시 신용도에 따른 리스크 관리를 철저하게 할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은 다르다. 자기 책임하에 투자를 하고 투자자의 성향이나 의견을 반영해 투자를 할 수 있다. 자본시장에서 사회적 가치가 있는 투자를 하고 싶어하는 투자자를 위해 사회책임투자(Social Responsibility Investment) 펀드, 사회영향채권(Social Impact Bond) 등 금융 상품이 개발되고 있다. 또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기업을 거래하는 사회적 거래소(Social Exchange)도 일부 국가에 존재한다. 사회투자기금은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프로젝트에 자금을 공급하는 기관투자자 역할을 한다.

은행보다는 자본시장을 통해 지금까지 금융을 공급하기 어려웠던 분야에 자금 공급의 물꼬를 트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금융기관은 상업성을 추구하지만 또한 공익적 역할을 하는 양면성이 있다. 이러한 양면성의 균형감각을 찾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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