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4464만9908명의 선택…지방을 살려야 대한민국이 산다

6·3 지방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의 유권자는 4464만9908명이었다. 숫자로만 보면 하나의 통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가 담겨 있다. 수도권 집중, 지방소멸, 고령화, 저출산, 산업 전환, 인공지능(AI) 혁명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모두 이 한 표에 녹아 있다.
 
 
선거 기간 여야는 승패를 놓고 경쟁했다. 언론도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에 집중했다. 하지만 지방선거의 본질은 중앙정치의 연장선이 아니다. 지방선거는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다. 대한민국이 수도권 일극 체제를 더욱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나라로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선거는 끝났다. 이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실행이다.
 
 6·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일인 3일 울산 남구의 한 초등학교 과학실에 마련된 삼호동 제4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차례로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일인 3일 울산 남구의 한 초등학교 과학실에 마련된 삼호동 제4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차례로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방소멸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다
 
 
이번 선거인 명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기도 유권자는 1187만8997명, 서울은 831만9134명이다. 수도권 유권자만 전체의 45%를 넘는다. 반면 상당수 지방은 청년층 유출과 출생아 감소로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지방소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지역은 초등학교가 사라지고, 어떤 지역은 산부인과가 없으며, 어떤 지역은 대학 정원조차 채우지 못한다. 지역에서 태어난 청년은 대학 진학과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떠나고, 떠난 청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 지방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가 된다. 대한민국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도권에 사람과 기업과 자본이 몰리는 동안 지방은 활력을 잃고 있다. 국가 전체로 보면 한쪽 엔진만 돌아가는 비행기와 다를 바 없다.
 
 
이번 지방선거의 진짜 의미도 여기에 있다. 지역 주민들은 단순히 시장과 도지사를 뽑은 것이 아니다. 지역의 생존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지방정부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앙정부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현실을 봐야 한다. 지방선거가 중요하다고 해서 지방정부만으로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재정과 산업정책 권한은 여전히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다.
 
 
대규모 국가산업단지 지정도 중앙정부의 영향이 크다. AI 국가전략도 중앙정부가 결정한다. 반도체 특구, 데이터센터 전력망, 광역 교통망 구축 역시 중앙정부 지원 없이는 어렵다. 지방선거를 통해 단체장이 바뀌었다고 곧바로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균형발전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이재명 정부의 진짜 시험도 여기에 있다. 역대 정부는 모두 균형발전을 약속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수도권 집중은 더 심해졌다. 이제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 필요하다.
 
 
AI 혁명은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충청권은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전북은 피지컬 AI와 농생명 산업, 광주·전남은 AI 반도체와 미래 모빌리티, 부산·울산·경남은 제조 AI와 조선·방산 혁신의 거점으로 육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산업정책과 예산, 규제 권한의 상당 부분을 지방에 과감히 넘기는 진정한 지방분권이 필요하다. 지방을 살리겠다고 하면서 모든 권한은 중앙이 쥐고 있는 구조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자치단체장은 이제 행정가가 아니라 전략가가 돼야 한다
그렇다고 지방정부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제도와 같은 권한 아래에서도 결과를 만드는 단체장과 그렇지 못한 단체장은 분명 존재한다.
 
 
과거 지방자치단체장의 역할은 행정 관리에 가까웠다. 예산을 집행하고 민원을 처리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그러나 AI 시대의 단체장은 달라야 한다. 기업을 유치하고, 투자자를 만나고, 대학과 연구소를 연결하는 전략가가 돼야 한다. 지역의 강점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미래 산업과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경쟁은 국가 간 경쟁만이 아니다. 도시 간 경쟁이기도 하다. 세계의 성공한 도시들은 우연히 성장한 것이 아니다. 장기 전략과 과감한 실행이 있었다.
 
 
물론 싱가포르나 두바이 같은 도시를 한국 지방정부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이들은 훨씬 강한 재정권과 자치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같은 조건 속에서도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리더십은 존재한다. 결국 지역 발전의 성패는 중앙정부의 지원과 지방정부의 실행력이 결합될 때 결정된다.
 
 
문제는 SOC가 아니라 생산성을 만드는 SOC다
지방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논쟁이 있다. “토목사업은 낡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지역마다 공항과 경기장, 전시관을 짓는 경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업이 적자를 남긴 채 애물단지가 됐다.
 
 
그렇다고 SOC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AI 데이터센터를 만들려면 전력망이 필요하다.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려면 용수와 도로가 필요하다. 로봇 산업을 키우려면 테스트베드와 연구단지가 필요하다. 결국 미래 산업도 새로운 형태의 SOC 위에서 성장한다.
 
 
중요한 것은 SOC의 규모가 아니라 목적이다. 생산성을 창출하는 인프라인가. 지역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인프라인가. 청년과 기업을 끌어들이는 인프라인가. 이 기준이 중요하다.
보여주기식 토목사업은 지양해야 하지만 미래 산업을 위한 인프라에는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선거는 끝났지만 미래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4464만9908명의 선택은 단순히 지방권력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를 묻는 국민의 질문이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수도권만 성장하는 나라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AI 시대에도 지방은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거점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과 지방정부의 혁신이 동시에 필요하다.
 
 
지방을 살리려면 단체장만 바꿔서는 안 된다. 권한도 내려보내야 한다. 선거를 통한 사람의 변화와 지방분권을 통한 제도의 변화가 함께 갈 때 비로소 진정한 지방자치가 완성된다.
이번 지방선거의 승자는 특정 정당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투표소로 향한 4464만9908명의 유권자 모두다.
 
이제 공은 정치권과 지방정부로 넘어갔다. 국민은 선택을 마쳤다. 남은 것은 결과로 증명하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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