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는 쪽빛 바다가 끝없이 너울거리는 오키나와의 고즈넉한 해안, 그리고 화려한 네온사인이 밤새 번쩍이는 오사카의 심장부다. 극과 극의 매력을 지닌 두 도시에서 공간과 사람, 그리고 미식이 정밀한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맞물렸던 순간들을 복기해 본다. 여정의 중심에는 각각의 도시를 상징하는 두 곳, ‘그랜드 머큐어 오키나와 케이프 잔파 리조트’ 와 ‘스위소텔 난카이 오사카’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숙소가 곧 여행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번 여정에서 만난 두 호텔은 각 도시의 색깔을 가장 효과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출발점이었다.
◆ 시간이 멈춘 듯한 잔파 곶, 완벽한 휴식을 완성하는 '올인클루시브'
비행기에서 내려 나하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온몸을 감싸오는 남국의 바람이 비로소 일상 탈출을 실감케 한다. 공항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한적한 국도를 달려 다다른 곳은 오키나와 본섬 중부, 요미탄촌의 고요한 잔파 곶(Zanpa Cape)에 자리한 그랜드 머큐어 오키나와 케이프 잔파 리조트다. 탁 트인 해안선과 거대한 야자수 사이로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낸 이 리조트는 2024년 4월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마치고 투숙객을 맞이하고 있다.
1층 라운지에서 제공되는 시원한 생맥주와 와인, 오키나와 전통술인 아와모리는 물론, 다채로운 인터내셔널 메뉴와 향토 음식으로 채워진 아침·저녁 뷔페, 피로를 씻어내는 대욕장 시설까지 추가 비용의 번거로움 없이 누리면 된다.
최근에는 한국인 투숙객의 입맛을 정조준해 현지 특산물인 아구 돼지를 활용한 삼겹살 요리까지 선보이는 섬세함을 발휘하고 있다.
여행지에서의 예산이나 추가 지출을 계산할 필요 없이 오롯이 휴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그 덕에 비수기에도 객실 가동률 80%를 웃돌 정도로 인기 만점이다.
현대인에게 가장 완벽한 럭셔리란, 어쩌면 ‘뭘 먹을지, 어디를 가야 할지, 얼마를 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닐까.
◆ 류큐의 향기와 샴페인의 거품, 밤이 깊을수록 짙어지는 일탈
객실 테라스 문을 열면 리조트 내 수영장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동중국해가 한눈에 담긴다. 잠시 숨을 고르고 풍경을 감상한 후, 오키나와 현내 최대 규모 수준을 자랑하는 가든 수영장으로 향한다. 이곳은 5개의 풀장 중 3개를 온수풀로 가동해 계절의 구애 없이 따뜻한 물놀이가 가능하다.
다이내믹한 즐거움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면 20세 이상 성인 전용으로 운영되는 ‘유쿠루 풀(Yukuru Pool)’로 향하면 된다. 선베드에 누워 찰랑이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일상의 소음은 어느새 멀어지고 오롯한 평온함이 찾아온다.
리조트 밖으로 걸음을 옮기면 짙은 류큐 왕국의 향기가 묻어난다. 인근 공방에서 뜨거운 가마 앞을 지키며 류큐 유리 공예 컵을 빚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자키미 성터와 청록색 파도가 부서지는 잔파 해변을 거닐어도 본다. 그뿐이 아니다. 히가주조에서 오키나와 전통 증류주 '잔파 아와모리'를 생산하는 과정에 대해 귀 기울여 본다.
어둠이 짙어지면 라운지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밤 9시부터 11시까지 이어지는 올인클루시브의 꽃, ‘나이트 캡(Night Cap)’ 서비스 덕분이다. 모엣 샹동을 비롯해 싱글몰트 위스키 등 최고급 주류가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밤바다의 파도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잔을 부딪치고, 그렇게 몇 잔을 비우다 보니 서울에서 가져온 피로도 조금씩 잊힌다.
◆ 오사카 도심 위 147m 오아시스, 장인의 거리와 오감 만족 미식 향연
오키나와의 고요한 바다를 뒤로하고 활기찬 에너지의 중심지, 오사카 난바로 향한다.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특급열차 라피트(Rapi:t)를 타면 환승 없이 난카이 난바역에 도착한다. 복잡한 역내를 벗어날 필요 없이 엘리베이터만 타면 도심 위로 우뚝 솟은 스위소텔 난카이 오사카의 로비로 곧장 연결된다. 5성급 호텔 특유의 세련된 공간감과 은은한 향기가 여행자를 다정하게 반긴다.
본격적인 호캉스에 앞서 호텔 인근 130년 역사의 ‘센니치마에 도구야스지 상점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1953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칼 전문점 ‘사카이 이치몬지 미츠히데’에 들러 쇳덩이 위에 이름을 새기는 각인 체험을 하며, 수십 년간 쇠를 두드려온 오사카 장인 정신의 깊은 긍지를 손끝으로 체감한다.
숙소로 돌아오면 스위소텔이 자랑하는 인하우스 미식, 그리고 ‘하티스트(Heartist)’들이 빚어내는 세밀한 환대가 기다린다. 호텔 6층에 자리한 ‘슌 위스키&와인’에서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와 주류의 정교한 페어링을 맛보고, 정통 일식 레스토랑 ‘하나고요미’에서는 신선한 스시 오마카세를 즐길 수 있다.
이날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특별히 마련된 스시 만들기 체험이다. 베테랑 셰프의 시연에 따라 다양한 초밥과 마키즈시(김초밥) 만들기에 도전한다. 객석의 진지함이 이내 유쾌한 웃음소리로 바뀐다. 옆자리 일행의 손끝에서 옆구리가 터질 듯 납작하게 변해버린 마키즈시가 탄생하자, 베테랑 셰프가 다급하게 뛰어 나오는 해프닝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셰프의 진심 어린 당황스러움과 어설픈 손재주가 빚어낸 이 촌극은, 형식적인 서비스를 넘어 투숙객과 직원이 마음으로 교감하는 특별한 추억을 안긴다.
식도락 탐험은 10층 ‘미나미 테판야키’로 이어진다.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서 셰프가 화려한 불꽃과 함께 피어낸 최고급 미야자키 와규 철판구이는 풍부한 육즙이 입안에서 그야말로 불꽃처럼 터진다. 이 순간만큼은 다이어트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채 기꺼이 미식의 향연에 함락당하기로 한다.
◆ 수제 맥주와 라이브 밴드, 지역 상생이 빚어낸 진정성 있는 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같은 층에 자리한 바 ‘남바 10(NAMBAR 10)’의 문을 연다. 이곳은 특급 호텔의 정숙함을 탈피한 캐주얼한 공간이다. 서브컬처 감성의 그래피티 벽화와 아케이드 게임기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로컬 브루어리와 협업해 만든 수제 IPA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켠다. 아이들을 위한 별도 공간도 마련된 덕에 가족 단위 투숙객들도 여유롭게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다.
어둠이 깔리고, 우리는 최상층인 36층으로 자리를 옮긴다. 지상 147m 높이에 자리한 ‘테이블36’과 ‘바36’이다.
통유리 너머로 오사카의 네온사인과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반짝이는 야경을 발아래 두고 칵테일을 홀짝일 무렵, 심장 박동을 울리는 라이브 밴드의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눈부신 빛의 대홍수, 밴드의 선율, 그리고 사람들의 환호가 어우러진 공간은 지친 현대인들을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했다. 낯선 여행지에서만 허락되는 기분 좋은 일탈이리라.
스위소텔은 호텔 옥상 스카이팜에서 친환경 채소를 재배하고 로컬 양조장과 협업하며, 숨은 로컬 가이드를 다국어로 제공하는 등 진정성 있는 '지역 상생'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전년 대비 매출 283% 상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탐구하고 투숙객의 동선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이 오늘날 호스피탈리티 산업의 승패를 가른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 밤바다 곁에서 나누던 샴페인의 탄산, 터진 스시 롤에 다 함께 웃음 짓던 교감, 147m 상공 야경 아래서의 여유까지. 사람과 공간, 미식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완벽한 휴식이 또 있을까.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 활자 더미와 씨름하고 있지만, 잘 짜인 공간이 선사한 치유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내 마음은 여전히 달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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