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것은 그 장면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점이다. 젠슨 황은 오래전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경영 방식을 보여왔다. 대만에서는 야시장의 후추빵을 먹고, 싱가포르에서는 호커센터를 찾으며, 일본에서는 소박한 라멘집에 들른다. 홍콩에서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식당을 방문하고, 한국에서는 삼겹살을 선택한다. 수십조 원의 자산을 가진 세계적 기업인이 굳이 길거리 음식과 대중 식당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취향 때문일까. 아니면 그 안에 더 깊은 전략과 철학이 숨어 있는 것일까.
실제로 서울 삼겹살집에서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글로벌 기업 총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테이블 위에는 고기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종업원들은 분주하게 접시를 나르고 있었다. 젠슨 황은 고기를 뒤집으며 웃었고, 함께 자리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세계 최고 AI 기업의 수장이 아니라 동네 형님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자연스러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AI와 반도체라는 어려운 산업 이야기는 몰라도 삼겹살을 함께 먹는 장면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젠슨 황의 행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첫째는 공급망 중심지를 찾아간다는 점이다. 그가 후추빵을 먹는 대만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산업의 중심지이고, 삼겹살을 먹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HBM 생산국이다. 싱가포르는 데이터센터 산업의 허브이며 일본은 첨단 소재와 장비 산업의 핵심 거점이다. 다시 말해 젠슨 황의 먹방 무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AI 산업 공급망의 심장부들이다.
둘째는 최고급 레스토랑보다 대중 음식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글로벌 CEO라면 최고급 호텔 연회장이나 비공개 만찬장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사람 냄새 나는 공간으로 들어간다. 후추빵과 삼겹살, 국수와 라멘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다. 첨단 AI 기술은 어렵지만 음식은 쉽다. 사람들은 데이터센터 구조는 몰라도 삼겹살을 굽는 모습은 기억한다.
셋째는 언제나 팬 서비스가 함께한다는 점이다. 대만 컴퓨텍스 행사장에서 그는 마치 세계적인 록스타처럼 사람들에게 둘러싸인다. 젊은 개발자들과 학생들은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린다. 기업 최고경영자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러나 오늘날 젠슨 황은 단순한 CEO가 아니라 AI 혁명의 상징이 됐다.
◆먹방은 공급망 외교다
많은 사람들은 먹방을 단순한 식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제 비즈니스 세계에서 식사는 종종 회의보다 중요하다.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외교적 돌파구는 회담장보다 만찬장에서 마련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업 세계도 다르지 않다. 젠슨 황의 먹방은 일종의 공급망 외교다. 그는 음식을 매개로 사람들과 거리를 좁힌다. 복잡한 기술 용어와 계약서를 잠시 내려놓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 앉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미래 산업의 방향이 논의된다.
사람들은 삼겹살을 본다. 그러나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수십조 원 규모의 공급망이다. 사람들은 후추빵을 본다. 그러나 그 뒤에서는 AI 산업의 미래가 설계된다. 먹방은 겉으로는 친근한 문화 콘텐츠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냉정한 산업 전략과 글로벌 경영 철학이 담겨 있다.
◆왜 사람들은 젠슨 황에게 열광하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왜 젠슨 황에게 열광할까. 그가 성공한 기업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도 많고 유명한 CEO도 많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대중적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젠슨 황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포장하지 않는다.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다니며, 야시장에서 음식을 먹고, 일반인들과 사진을 찍는다. 세계 최고 기업의 CEO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거리감이 없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능력이다. 그는 GPU를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AI가 만들어갈 세상을 보여준다. 기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꿈을 판다. 숫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기술보다 이야기에 감동하고, 데이터보다 희망에 열광한다. 젠슨 황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영자다.
◆한국의 정치인·기업인·공직자들이 배워야 할 점
여기서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이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오늘날 많은 정치인과 기업인, 공직자들은 국민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설명은 많아졌지만 공감은 줄어들었고, 권위는 남아 있지만 친근함은 사라지고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직함만으로 존경하지 않는다. 권력만으로 신뢰하지도 않는다. 진정성과 소통 능력을 본다.
물론 지도자가 억지로 먹방을 한다고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음식이 아니라 태도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려는 자세, 국민과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 권위보다 소통을 선택하는 용기가 중요하다.
특히 40대와 50대, 60대 이상의 지도층에게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과거의 성공 경험에 기대기 쉽고 직함과 권위에 의존하기 쉽다. 그러나 AI 시대는 권위의 시대가 아니라 연결의 시대다. 명령의 시대가 아니라 공감의 시대다. 국민과 고객, 직원과 시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리더십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AI 시대 리더십의 새로운 교과서
AI는 세상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AI 시대일수록 인간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기술은 발전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에게서 감동을 받는다. 알고리즘은 계산할 수 있지만 공감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신뢰를 만들지는 못한다.
그래서 AI 시대의 리더는 기술과 인간성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람들과 웃으며 삼겹살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수조 원의 사업을 논의하면서도 학생들과 셀카를 찍을 수 있어야 하며, 미래를 설계하면서도 현재의 사람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오늘 대한민국은 거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AI는 단순한 기술혁명이 아니다. 산업과 경제, 정치와 교육, 문화와 일상의 질서를 바꾸는 문명 전환이다.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과거 산업화 시대의 권위적 리더십도 아니고 단순히 대중의 환호를 좇는 인기영합형 리더십도 아니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도 국가와 기업의 방향을 설계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 첨단 기술을 이해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균형감각이 요구된다.
젠슨 황의 삼겹살과 후추빵은 어쩌면 음식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AI 시대의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은유일 수 있다. 세계 최고 기업의 CEO가 거리의 사람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고, 야시장에서 음식을 먹으며, 공급망 파트너들과 허물없이 대화하는 모습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AI는 인간의 지능을 모방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신뢰를 대신할 수는 없다. 결국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이끄는 리더십이다.
대한민국 역시 이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AI 시대를 맞아 어떤 지도자를 원하며, 어떤 기업가를 존경하고,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 권위와 거리감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리더십인가, 아니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리더십인가.
AI 혁명의 승패는 반도체의 성능이나 데이터센터의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과 연결되며, 사람의 가능성을 키워주는 리더십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국가 경쟁력의 마지막 기준이 될 것이다.
삼겹살 한 점과 후추빵 하나가 세계적 화제가 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AI 시대가 깊어질수록 인간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세계 속에서 존경받는 나라로 남기 위해서는 기술 강국을 넘어 사람의 품격과 신뢰가 살아 있는 리더십 강국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것이 젠슨 황의 먹방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의외이면서도 가장 깊은 메시지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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