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반도체도 국가 균형 성장의 축이 돼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남 지역 반도체 사업 투자가 현실화하는 양상이다. 이달 말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주요 그룹 총수 간담회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될 전망이다. 

두 기업 모두 대형 반도체 팹을 새로 짓기보다는 패키징(후공장) 공장을 신설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 지형에 작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우려도 없지 않다. 수도권에 집중된 반도체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분산하면 공급망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이번 사안을 지역 안배 차원으로만 보는 건 협소한 시각이다. 반도체 산업은 이제 전력 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생산과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 용인과 평택을 중심으로 조성 중인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도 전력 확보 문제를 숙제로 안고 있다. 반면 호남은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풍부하고 산업용지 확보 여력도 상대적으로 크다. 기업 입장에서도 미래 생산 거점을 다변화할 이유가 충분하다.

지역 균형 발전 측면에서도 살펴볼 측면이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AI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됐지만 국가 경제 전반의 낙수 효과는 크지 않다. 지역별 산업 격차는 오히려 확대됐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가 이뤄진다면 호남은 첨단 패키징 중심의 새로운 반도체 벨트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물론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반도체 전공정 공장은 수백 개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집적된 생태계가 필수적이다. 이번 투자를 수도권 클러스터의 대체재로 볼 필요는 없다. 용인과 평택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심장이라면 호남은 새로운 성장 축이 될 수 있다.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만 앞세워 기업에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기업들이 실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도록 부지 확보와 인허가 절차를 신속히 지원하고 전력·용수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AI 시대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 변수다.

물류 경쟁력 강화도 과제다. 첨단 패키징 산업은 소재와 부품, 장비의 신속한 이동이 필수적이다. 항만과 공항, 도로·철도망을 연계한 물류 인프라 확충이 뒤따라야 한다. 인재 양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반도체 특화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기업과 연계한 인력 양성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수 인재가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산업 생태계 정착도 쉽지 않다.

반도체는 AI 시대 최대 수혜 산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앞세워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나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 성공 방정식이 앞으로도 유효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생산능력과 인재, 산업 생태계 역시 전국 단위로 확장돼야 한다.

반도체는 국가 산업이다. 특정 지역의 산업이어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호남 패키징 공장 건설은 단순히 생산시설을 새로 짓는 차원을 넘어선다. 수도권에 집중된 산업 지도를 바꾸고 국가 균형 성장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 역시 기업들의 과감한 결단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AI 시대 반도체 강국의 미래는 더 넓은 국토 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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