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탈모약 건보 적용, 선심성 논란 넘어 사회적 합의와 재정 추계가 우선이다
아주경제 입력 2026-06-22 13:56
기사공유
폰트크기
국내 탈모 치료 시장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탈모치료제의 급여화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뜨겁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11일 이재명 정부 출범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올해 하반기 청년층을 중심으로 탈모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관련 논의는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보건당국 수장의 이 같은 발언은 탈모 환자들에게 분명 반가운 소식이겠으나, 국가 건강보험 재정을 움직이는 정책은 시혜적 접근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 사안이 민감할수록 사회적 공론화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여론 형성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국내 탈모 잠재 인구는 약 1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병원 진료를 받은 공식 탈모 환자 수는 지난해 기준 약 23만7000명에 달하며, 이 중 20·30대 비중이 40%를 상회할 정도로 청년층의 고충이 심각하다. 탈모증 총 진료비 역시 지난해 468억원으로 10년 새 1.7배 가까이 급증했다. 약국 처방 약값과 두피 관리 비용까지 포함하면 국내 탈모 치료 관련 시장 규모는 무려 3000억원에 육박한다. 탈모가 단순 미용이 아닌 삶의 질을 좌우하는 사회적 질병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화를 찬성하는 측은 탈모가 대인관계 위축과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며, 청년층의 취업과 결혼 등 사회활동에 지대한 불이익을 초래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장기 복용에 따른 약값 부담이 큰 만큼,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국가가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이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문의약품 공급액을 기준으로 환자 본인부담률을 30%로 단순 대입했을 때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해야 할 금액은 연간 최대 약 179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본인부담률을 50%로 높여 잡더라도 매년 1284억원의 막대한 건보 재정이 고스란히 투입돼야 한다. 의료계는 암, 희귀난치성 질환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도 재정 부족으로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탈모 치료에 매년 수천억원의 재정을 쏟아붓는 것은 정책적 우선순위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자칫 포퓰리즘성 선심 정책으로 흘러 보험료 인상이라는 국민적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비판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정작 보건당국조차 명확한 기준 마련이나 면밀한 사회적 합의 없이 '하반기 추진'이라는 시한부터 성급하게 못 박았다는 점이다. 고령화의 영향으로 올해부터 건보 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경고음이 울리는 마당에, 정밀한 대책도 없이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처사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숙의(熟議)의 과정이다. 경제적 자립도가 낮은 청년층에 한정하거나 중증도 환자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등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탈모약 건보 적용이라는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가 일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기보다, 의료계·환자단체·가입자가 모두 참여하는 공론화 기구를 통해 절차적 정당성을 밟아 나가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와 투명한 재정 추계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복지 정책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1일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