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고 춤추고 노 젓고… 팬들이 만드는 경기장 밖 월드컵

노르웨이의 스트라이커 엘링 브레우트 홀란드가 2026년 6월 22일 이스트 러더퍼드의 뉴욕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월드컵 조별리그 I조 노르웨이-세네갈 경기 종료 후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노르웨이의 스트라이커 엘링 브레우트 홀란드가 2026년 6월 22일 이스트 러더퍼드의 뉴욕/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월드컵 조별리그 I조 노르웨이-세네갈 경기 종료 후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골보다 더 오래 남는 장면이 있다.

노르웨이가 세네갈을 3-2로 꺾은 뒤, 엘링 홀란드는 곧장 관중석으로 향했다. 마르틴 외데가르가 드럼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홀란드는 양팔을 뒤로 당겨 노를 젓는 동작을 취했고, 관중석도 금세 같은 박자로 따라 움직였다. 바이킹 전사들이 배를 저을 때의 몸짓을 흉내 낸 이른바 '바이킹 로우'였다.

이 장면은 골도, 태클도, 결정적인 선방도 아니었다. 그러나 SNS에서는 경기 하이라이트 못지않게 빠르게 퍼져나갔다. 짧고 강렬했으며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응원이 확산되고 있었다. 유튜브 채널 'Soccer Will Be the Music'이 포르투갈 응원가의 멜로디에 한국식 구호를 입혀 만든 AI 응원가는 두 달 만에 조회수 160만 회를 넘겼다. 인스타그램에는 이 음원을 사용한 릴스가 1,700개 넘게 올라왔고, 한 여성 댄스팀의 영상은 조회수 900만 회, 좋아요 63만 6,000개, 공유 9만 5,000회를 기록했다.

댈러스에서는 잉글랜드가 크로아티아를 4-2로 꺾은 뒤에도 관중 2만여 명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 대신 오아시스의 'Wonderwall'을 목청껏 따라 불렀다. 1995년 발표된 이 브릿팝 명곡은 며칠 만에 영국 내 스포티파이 스트리밍을 50% 끌어올렸고, 리마스터 버전은 하루 171만 회 재생됐다.

2026 월드컵에서 응원은 더 이상 경기의 배경이 아니다. 경기만큼이나 촬영되고, 편집되고, 공유되는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2026 FIFA 월드컵 - I조 - 노르웨이 대 세네갈 - 미국 뉴저지주 이스트 러더퍼드 뉴욕뉴저지 스타디움 - 2026년 6월 22일 노르웨이 팬들이 관중석에서 전통적인 로잉rowing 응원을 하고 있다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2026 FIFA 월드컵 - I조 - 노르웨이 대 세네갈 - 미국 뉴저지주 이스트 러더퍼드 뉴욕/뉴저지 스타디움 - 2026년 6월 22일. 노르웨이 팬들이 관중석에서 전통적인 '로잉(rowing)' 응원을 하고 있다.[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몸짓 하나로 통하는 노르웨이의 '바이킹 로우'

노르웨이의 바이킹 로우에는 노래도, 가사도, 사전 지식도 필요 없다.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일 줄만 알면 된다.

관중들은 배 모양으로 앉아 드럼 박자에 맞춰 노를 젓는 동작을 한다. 노르웨이어로 "로(ro·저어라)"를 외치다가 절정에서 일제히 함성을 터뜨린다. 2016년 유로에서 아이슬란드가 선보인 '바이킹 클랩'에서 영감을 받은 이 응원은 경기장을 벗어나 에스컬레이터, 지하철, 타임스스퀘어, 심지어 노르웨이 국회로까지 퍼졌다. 말이 필요 없는 응원이었기 때문이다.

확산은 대회 전부터 시작됐다. 노르웨이 국회의원들이 바이킹 로우를 따라 하는 영상은 조회수 14만 회를 기록했고, 세네갈전 승리 후 홀란드가 응원을 이끄는 쇼츠 영상은 21만 회, AP가 촬영한 타임스스퀘어 인파 영상은 17만 회를 넘겼다.

이 영상들의 공통점은 따로 있다. 어느 것도 경기 장면이 아니라는 점이다. 골이나 결정적 세이브가 아니라, 경기 전후에 만들어진 응원 장면들이 틱톡과 릴스에서 더 빠르게 퍼지고 있다.
 
엘링 홀란드를 비롯한 노르웨이 국가대표 선수들이 2026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바이킹 분장을 한 채 포즈를 취한 모습으로 이번 대회를 향한 팀의 각오를 드러내고 있다 사진David Yarrow
엘링 홀란드를 비롯한 노르웨이 국가대표 선수들이 2026 FIFA 월드컵을 앞두고 바이킹 분장을 한 채 포즈를 취한 모습으로, 이번 대회를 향한 팀의 각오를 드러내고 있다. [사진=David Yarrow]

대표팀도 이런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키웠다. 1998년 이후 28년 만에 본선에 복귀한 노르웨이는 대회 전 바이킹 콘셉트 화보를 공개했다. 유럽 예선에서 8경기 16골을 넣은 홀란드를 비롯해 선수단 전체가 헬멧과 방패, 갑옷을 착용하고 화보를 찍었다. 축구 매체 433은 이 사진을 엑스(X)에 올리며 "노르웨이 월드컵 단체샷이 제대로 멋있다"고 썼고, 홀란드도 자신의 바이킹 이미지를 "Viking blood"라는 문구와 함께 게시했다.

다만 이 콘셉트가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노르웨이 일간지 아프텐포스텐은 전사 이미지가 지나치게 남성적이고 배타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노르웨이축구협회는 공동체 정신과 용기, 연대를 강조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잉글랜드의 'Wonderwall', 우연만은 아니었다

잉글랜드의 'Wonderwall' 합창은 노르웨이와는 결이 달랐다. 몸짓이 아니라 기억의 문제였고, 완전히 즉흥적인 장면도 아니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모든 출전국이 팬 단체와 협의해 경기일 플레이리스트를 미리 제출했다. 잉글랜드의 선곡에는 'Wonderwall'과 함께 비틀스의 'Hey Jude', 닐 다이아몬드의 'Sweet Caroline'이 포함됐다. 'Wonderwall'은 경기 전부터 스타디움에 흐르고 있었다. 다만 경기가 끝난 뒤 벌어진 반응까지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오아시스의 오아시스 라이브 25OASIS LIVE 25 한국 공연 모습 사진 오아시스 공식 인스타그램
오아시스의 '오아시스 라이브 '25(OASIS LIVE '25)' 한국 공연 모습. [사진= 오아시스 공식 인스타그램]

1991년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오아시스는 브릿팝 시대를 대표하는 밴드다. 'Wonderwall'은 영국 음악이 세계를 휩쓸 수 있다고 믿었던 한 세대의 정서를 담은 곡으로, 스포티파이 누적 스트리밍 17억 회를 넘겼다.

댈러스에서 2만 명이 함께 부른 이 노래는 단순한 떼창이 아니라 여러 세대가 공유해온 기억이 경기장 안에서 되살아난 순간이었다. 주드 벨링엄을 비롯한 선수들도 가사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포착됐고, 주장 해리 케인은 이를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고 겪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시기도 절묘했다. 오아시스가 10여 년 만의 재결합 투어를 마친 게 2025년이었다. 갤러거 형제도 댈러스 영상을 직접 챙겼다. 노엘은 더 선과의 인터뷰에서 "'Wonderwall'은 이제 대중의 것"이라고 했고, 리암은 스포티파이가 50% 스트리밍 급증 소식을 전한 뒤 엑스에 이 노래가 "classic"이며 자신이 "BIBLICAL"하게 불렀다고 적었다.

한국의 AI 응원가, 경기장 밖에서 먼저 태어났다

한국의 사례는 또 다르다. 어쩌면 팬 문화가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일 수도 있다.

노르웨이와 잉글랜드의 응원 장면이 경기장에서 태어나 온라인으로 퍼졌다면, 한국의 AI 응원가는 온라인에서 먼저 만들어져 경기장으로 향했다.

2002년 이후 '대~한민국' 구호와 붉은악마의 거리 응원은 한국 축구 정체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대회는 그 위에 새로운 층위를 더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체코전 당시 실시간 인구 데이터 기준으로 광장 일대에 1만 2,000~1만 4,000명이 모인 것으로 집계됐다. 멕시코전에는 최소 1만 8,000명이 모이면서 주최 측이 응원 공간을 추가로 확보해야 했다.
 
6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FIFA 월드컵 거리 응원 행사에서 시민들이 한국과 체코의 A조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 사진  유나현 기자 shootingajupresscom
6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FIFA 월드컵 거리 응원 행사에서 시민들이 한국과 체코의 A조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다. [사진 = 유나현 기자 shooting@ajupress.com]

여기에 AI 응원가라는 새로운 요소가 더해지면서, 한국과 무관한 해외 크리에이터들까지 이 음원으로 자신만의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이 노래는 단순한 응원가라기보다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재료처럼 쓰이고 있다.

강남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성호 씨(35)는 몇 주 전부터 휴대전화로 이런 변화를 지켜보다가 광화문 멕시코전 거리 응원에 나섰다.

"예전에는 큰 북소리에 맞춰 '대~한민국'을 외치거나 '오, 필승 코리아'를 다 같이 부르는 게 중심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SNS 비중이 훨씬 커졌어요. 외국인들이 한국식 응원을 따라 하고,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영상이 계속 올라오더라고요. 예전엔 보기 어려웠던 풍경이죠." 

그가 AI 응원가를 처음 접한 것도 우연이었다.

"처음 본 영상은 라틴계로 보이는 여성이 한국식 응원 페이스페인팅을 하는 영상이었어요. 비트가 바뀔 때마다 페인팅 단계도 같이 바뀌더라고요. 그때 처음 들었는데 계속 머릿속에 남았어요. 나중에 따로 찾아봤죠. 누가 진짜 신경 써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유튜브 쇼츠 계정 bbiamarall에 올라온 영상으로 2026 한국 월드컵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유튜브 쇼츠 계정 @bbiamarall에 올라온 영상으로, '2026 한국 월드컵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결국 같은 문법으로 통한다.  겉으로 보면 셋은 전혀 다른 사례다. 그런데 SNS에서 퍼지는 방식만큼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짧고, 강렬하고, 집단적이고, 따라 하기 쉽다. 

몇 초 안에 의미가 전달되니 잘 잘리고, 잘 퍼진다. 이제 관건은 관중이 얼마나 크게 외치느냐가 아니라, 그 순간이 경기장을 나선 뒤 얼마나 멀리 퍼지느냐다.

바이킹 로우는 설명이 필요 없다. 보는 즉시 따라 할 수 있는 몸짓이기 때문이다. 

'Wonderwall'은 거꾸로 맥락이 있어야 통한다. 오아시스와 브릿팝, 그리고 그 노래를 이미 마음에 품고 있던 잉글랜드 팬들의 정서가 함께 작동해야 완성되는 장면이다. 한국의 AI 응원가는 둘과는 또 다르게 작동한다. 한국 축구를 모르는 사람까지 끌어들이는 건, 음원 자체가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응원은 한때 선수와 경기장, 그날의 순간만을 향했다. 이제는 그 시선이 경기장 밖으로 옮겨간다. 관중석에 없었고, 심지어 경기를 보지도 않았을 누군가의 휴대폰 화면까지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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