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공항에 뜬 축구협회 영정사진, 누가 한국축구를 죽였나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사퇴한 홍명보 전 감독이 30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사퇴한 홍명보 전 감독이 30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0일 새벽 인천국제공항.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하고 귀국하는 축구 국가대표팀을 기다리던 팬들 손에는 낯선 액자가 들려 있었다. 검은 띠를 두른 영정사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대한축구협회(KFA) 로고였다. 조롱도, 일회성 퍼포먼스도 아니었다. 한국 축구를 떠받쳐 온 팬들이 축구협회에 보낸 가장 처절한 경고였다. 이번 월드컵이 남긴 가장 뼈아픈 장면은 경기장이 아니라 공항에서 완성됐다.
 
대표팀의 조별리그 탈락은 결과다. 더 심각한 것은 그 결과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다. 팬들이 영정사진까지 들고나온 이유는 한두 경기의 패배 때문이 아니다. 오랜 시간 쌓인 축구협회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출발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은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둘러싼 논란을 낳았다. 대표팀 감독은 실력만큼이나 선임 과정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중요하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비판이 커질수록 소통보다 침묵을 택했고, 시간이 지나면 논란도 잦아들 것이라는 안이한 태도를 반복했다.
 
홍명보호 역시 월드컵 무대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경기 운영은 단조로웠고, 상대 변화에 대응하는 전술적 유연성도 부족했다. 위기에서 흐름을 바꿀 과감한 결단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선수들의 개인 역량에 기대는 축구만으로 세계 무대의 벽을 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감독은 성적과 경기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실패를 감독 한 사람의 문제로만 돌린다면 한국 축구는 또다시 같은 길을 걷게 된다. 더 큰 책임은 대표팀 운영의 방향을 결정하고 감독을 선임하며 축구 행정을 이끌어 온 축구협회에 있다. 결과가 좋으면 공을 나누고, 실패하면 감독만 교체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번 월드컵은 현장뿐 아니라 행정 시스템 역시 국제 경쟁력을 잃고 있음을 드러낸 무대였다.
 
유소년 육성, 지도자 양성, 리그 경쟁력, 대표팀 운영, 협회의 의사결정 구조까지 한국 축구는 손봐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선수들에게는 세계 최고 수준을 요구하면서 정작 축구 행정은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본이 흔들리는데 결과만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순서부터 잘못됐다.
 
정부는 축구 행정 전반에 대한 쇄신 의지를 밝혔다. 중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혁신이 아니다. 감독 선임 절차의 투명성부터 협회 운영, 예산 집행, 책임 구조까지 객관적인 검증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민 스포츠를 일부의 전유물처럼 운영하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공항에 등장한 축구협회 영정사진은 팬들의 분노를 상징하는 소품이 아니다. 한국 축구를 향한 마지막 경고다. 이번에도 책임을 피하고 변명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4년 뒤 달라지는 것은 감독 이름뿐일지 모른다. 한국 축구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승리가 아니라 신뢰다. 그 시작은 축구협회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근본적인 개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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