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의 미래가 걸린 3대 메가 프로젝트(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 추진에 노동조합도 지분 요구에 나섰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는 호남 반도체 팹 건설과 관련해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조합원이 근무할 현장의 산업 안전과 정주 여건, 처우 등이 투자 계획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전력과 용수 확보, 송배전망 구축, 환경·건축 인허가, 도로와 항만 등 물류 인프라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노조 리스크까지 더해지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반도체 공장을 어디에 세우고 언제 투자할 것인지는 기업의 핵심 경영 판단이다. 노조가 제안한 노사정 협의체가 지역 협력과 상생 방안을 논의하는 수준을 넘어 투자 결정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로 변질해서는 안 된다. 경영 전략이 협상의 대상이 되는 순간 기업의 의사결정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산업계가 노란봉투법을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쟁의 행위 대상을 '사업 경영상 결정'까지 넓혔다. 기업들은 경영 판단까지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호소한다. 실제 법 적용은 사법적 판단을 거쳐야겠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불확실성 자체가 투자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AI 시대 반도체 경쟁의 핵심은 속도다. 첨단 팹 1기를 짓는 데 수십조원의 자금과 몇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AI 공급망을 분기 단위로 재편한다. 한번 놓친 시장은 쉽게 되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반도체 기업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투자 실패보다 투자 지연이다.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다. 수도권에 집중된 반도체 산업 지도를 바꾸고 국가 균형 발전을 이끌 핵심 사업이다. 성공하려면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정부의 신속한 지원,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협력, 지역사회의 공감대가 동시에 맞물려야 한다. 이해 관계자가 많을수록 의사결정 구조는 더 단순하고 명확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은 수백 개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건설, 물류, 전력, 대학과 연구기관이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산업 생태계다. 투자 시기가 지연되면 협력 기업의 참여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함께 늦어진다.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기업이 아니라 지역 경제와 청년일 수 있다.
노동자의 권익은 더욱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안전한 일터와 공정한 보상 역시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그러나 투자 여부와 공장 입지, 사업 포트폴리오는 기업이 책임져야 할 경영 영역이다. 이 경계가 흐려질수록 노사 협력도 지속되기 어렵다. 미래 투자가 있어야 지속 가능한 일자리도 생긴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분명하다.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예측 가능한 제도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국가 전략 사업이 불필요한 절차와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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