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SMR 수출 동맹 띄웠다… AI 시대 전력시장 정조준

조현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왼쪽이 2026년 7월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서명한 소형모듈원자로SMR 배치 협력각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외교부 제공
조현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왼쪽)이 2026년 7월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서명한 소형모듈원자로(SMR) 배치 협력각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외교부 제공


한국과 미국, 일본이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함께 수출하기로 손을 잡았다. 그동안 같은 원전 수주전에서 경쟁하던 세 나라가 이번에는 한 팀이 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에너지 시장을 겨냥하기로 한 것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3국 협력각서(MOC)에 서명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시작으로 제3국에 SMR (소형원자로 - Small Modular Reactor)을 배치하는 것이 골자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미국은 인도·태평양 국가들의 원전 도입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국무부 프로그램에 1000만 달러 이상을 새로 투입해 이 틀을 뒷받침하기로 했다.

한국 원전 업계 입장에서 보면, 이번 합의는 몇 달째 무르익어 온 흐름을 공식화한 것이다. 미국의 원자로 설계 능력, 일본의 산업 역량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대신, 역할을 나눠 갖는 구도다.

SMR이 무엇이길래 세 나라가 이렇게 움직일까? SMR은 기존 원전을 크게 줄인 소형 원자로다. 일반 대형 원전이 1000메가와트가 넘는 전기를 생산하는 데 비해, SMR은 보통 300메가와트 이하다. 대신 부품을 공장에서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기 때문에, 공사 기간과 막대한 초기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개발사들의 설명이다. 서방의 대형 원전 사업이 번번이 비용 문제로 좌초해 온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다만 상업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서방에서 가동 중인 SMR은 아직 하나도 없고, 첫 호기가 캐나다에서 건설되고 있는 단계다.


이 미완의 기술을 전략 자산으로 끌어올린 것은 인공지능(AI)이다.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돌리려면 24시간 쉬지 않고 전기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5년 485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950테라와트시로 약 두 배가 되어, 세계 전체 전력 수요의 3퍼센트 안팎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한 곳이 쓰는 전기가 가정 10만 가구의 사용량과 맞먹는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이 수요를 풍력과 태양광만으로 감당하기는 어렵고, 새 가스발전소는 전력망 연결까지 수년씩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쉼 없이 돌아가는 원자력, 그중에서도 데이터센터 옆에 바로 세울 수 있는 소형 원자로가 주목받는 이유다.

빅테크 업계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구글은 2024년 10월 미국 SMR 개발사 카이로스파워와 첫 상업용 SMR 전력 구매 계약을 맺었고,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도 각자 원자력 투자에 나섰다. IEA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운영사와 SMR 사업 간 조건부 전력구매계약 규모는 2024년 말 25기가와트에서 현재 45기가와트로 확대됐다. 파티흐 비롤 IEA 사무총장은 "에너지 없이는 AI도 없다"며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기를 공급하는 나라가 앞서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앙카라 합의는 이 시장을 3국이 한 덩어리로 공략하겠다는 구상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번 협력 체계는 사업 개발 위험을 줄이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며, 민간 투자를 유치하고, 인허가를 간소화하고, 공급망을 최적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협력 대상국에는 최고 수준의 핵안전과 비확산 기준을 요구한다.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견제 대상은 분명하다. 국가 금융과 건설을 묶어 개도국 원전 수출을 사실상 장악해 온 러시아 로사톰과 중국 국영 원전 기업들이다.

세 나라가 가진 패는 서로 겹치지 않는다. 미국은 원자로 설계에서 앞서 있고, 일본은 GE버노바히타치뉴클리어에너지 같은 합작사를 통해 원자로 기술과 중장비 부품을 댄다. 한국은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을 완공한 시공 실적에, 뉴스케일파워 등 미국 SMR 개발사에 단조품과 모듈을 공급하는 두산에너빌리티 중심의 공급망을 갖고 있다.

산업 차원의 협력은 이미 눈에 보이는 단계다. 이번 장관 서명과 함께 미국 국무부는 GE버노바, 히타치, 삼성물산, SGE가 유럽 전역에 SMR 'BWRX-300'을 배치하는 업계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삼성그룹의 건설 계열사인 삼성물산은 지난해 10월 GE버노바히타치뉴클리어에너지와 전략적 동맹을 맺고 북미 외 글로벌 시장에서 이 300메가와트급 원자로를 함께 짓기로 한 바 있다. 지난주에는 이 협력이 한 번 더 넓어졌다. 폴란드계 개발사 SGE가 삼성물산과 구글 클라우드 등이 참여하는 팀으로 영국 세 개 부지에 BWRX-300 14기를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사업 규모는 약 470억 달러다.

이런 협력 구도가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치열한 경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10년 가까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지식재산권 분쟁에 발이 묶여 있었다. 한국의 주력 수출 원전인 APR1400의 기술 뿌리가 웨스팅하우스에 있다는 것이 쟁점이었고, 이 분쟁은 한국의 수출 전선 곳곳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양측은 2025년 1월에야 포괄 합의에 도달했는데, 조건은 만만치 않았다. 코리아헤럴드에 따르면 한수원은 원전 1기를 수출할 때마다 웨스팅하우스로부터 6억5000만 달러 규모의 기자재와 용역을 구매하고 1억7500만 달러의 기술료를 내기로 했으며, 북미와 체코를 제외한 유럽연합, 영국, 일본, 우크라이나에서는 입찰이 제한된다. 50년짜리 이 합의에는 한국 기업이 SMR을 포함한 해외 사업에 입찰하기 전에 웨스팅하우스가 기술 자립성을 검증할 권리도 담겼다.

이 합의로 한수원은 2025년 6월 체코에서 대형 원전 2기, 186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따냈다. 2009년 이후 첫 해외 원전 수주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일방적으로 양보한 계약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이번 3국 틀은 여기에 다른 계산법을 제시한다. 한미일 기업이 서로 맞붙는 대신 한 팀으로 입찰한다면, 한국 단독 입찰을 옥죄던 라이선스 제약의 무게는 줄어들고, 세 나라가 합친 제안은 발주국이 거절하기 어려운 카드가 된다.

한수원은 그 사이 독자 노선을 병행하고 있다. 자체 설계인 혁신형 SMR(i-SMR)을 개발 중이며, 2020년대 후반 표준설계인가 획득이 목표다. 성사되면 향후 컨소시엄 입찰에 한국이 내놓을 수 있는 자체 기술 카드가 하나 늘어난다.

서명식에서 루비오 장관은 이번 합의를 에너지 안보와 직결시켰다. 그는 중동 원유의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불안정을 거론하면서, 이번 합의로 3국이 SMR 공동 작업을 진전시킬 수 있게 됐다며 이 기술을 "여러 면에서 에너지 생산의 미래"라고 불렀다. 조 장관은 SMR이 3국이 공동의 도전에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여러 분야 중 하나라고 말했다.

첫 BWRX-300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달링턴 부지에서 건설 중이며, 2020년대 말 완공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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