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뒤늦게 가계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기존 6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기로 한 데 이어 신한은행도 모기지보험 가입 제한에 들어갔다. NH농협은행과 하나은행도 이미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주담대 한도를 줄이고, 대출모집인 접수를 막고, 모기지보험 가입을 제한하는 조치가 은행권 전반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대출이 빠르게 늘 때는 영업 경쟁에 몰두하다가 총량 관리 압박이 커지자 하루아침에 문턱을 높이는 것은 전형적인 뒷북 대응이다.
가계부채 관리는 필요하다. 집값 상승 기대가 살아나고 주담대가 다시 늘어나는 상황에서 은행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문제는 대응의 시점과 방식이다. 은행들은 매년 가계대출 총량 목표를 알고 있고 시장 상황도 들여다본다. 그럼에도 충분한 예고나 완충 장치 없이 한도를 반 토막 내고 보험 가입을 제한하면 피해는 결국 차주에게 돌아간다. 금융회사 스스로 위험 관리를 소홀히 하다가 뒤늦게 창구를 닫는 방식이라면 책임 있는 금융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실수요자의 불편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잔금일을 앞둔 사람, 분양 아파트 입주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대출 한도 축소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자금 계획 전체가 흔들릴 수 있고, 경우에 따라 계약 불이행과 신용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투기 수요를 막겠다는 명분 아래 무주택자, 갈아타기 수요, 입주 예정자까지 한꺼번에 같은 문턱 앞에 세우는 것은 정교한 관리가 아니다.
은행권 조치가 시차를 두고 이어지는 것도 문제다. 한 은행이 먼저 대출을 조이면 차주들은 아직 문이 열려 있는 다른 은행으로 몰린다. 그러면 그 은행도 다시 대출 제한에 나선다. 결국 시장에는 ‘어느 은행이 언제 닫히느냐’는 불안만 커진다. 가계대출 관리를 위한 조치가 창구 앞 줄서기와 풍선효과를 낳는다면 실패한 관리다.
부동산 정책의 목표가 집값 안정이라면 대출 규제는 보조수단이어야 한다. 실수요자는 보호하고 과도한 레버리지는 억제하는 세밀한 기준이 필요하다. 생애 최초 구입자, 무주택 실수요자, 기존 계약자, 입주 예정자에 대해서는 경과 규정과 예외를 둬야 한다. 반면 다주택 투자 수요나 단기 차익 목적의 고위험 대출은 더 강하게 관리해야 한다. 지금처럼 한도를 일괄적으로 낮추는 방식은 행정적으로는 쉽지만 정책적으로는 둔하다.
은행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계대출은 은행의 주요 수익원이다. 금리 상승기에는 이자이익을 키우고, 부동산 상승기에는 주담대 영업을 확대했다. 그러다 총량 관리가 부담스러워지면 실수요자에게 갑작스러운 불편을 떠넘기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대출 문턱을 높이더라도 사전 고지, 기존 신청자 보호, 계약 단계별 예외 기준은 반드시 갖춰야 한다.
가계부채는 위험한 수준이고, 주택시장 과열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급한 불을 끄겠다며 실수요자의 자금 계획을 무너뜨리고 시장 불안을 키워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대출 규제가 아니라 더 정교한 정책이다. 기존 계약자와 잔금 예정자, 입주 예정자 보호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공급과 세제, 금융과 주거복지를 함께 묶은 종합 처방 없이 대출 창구만 닫는 방식으로는 또 다른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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