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SBS Plus '나는 SOLO'(나는 솔로)에서 뜻밖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화려한 조건으로 주목받은 출연자도,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출연자도 아니다. 31기 순자다.
29일 순자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7만 4000명을 넘어섰다. 31기를 넘어 '나는 솔로' 출연자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패션과 일상, 31기 경수와의 데이트 콘텐츠가 꾸준히 주목받고 있고 광고와 협찬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솔로 최고의 아웃풋'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흥미로운 점은 순자가 처음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출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방송 당시 다른 출연자들과 갈등을 겪었고, 일부 장면을 두고는 순자가 소외된 것 아니냐는 '왕따 논란'이 불거졌다. 31기 방송 종영 후에는 출연자들의 폭로와 해명이 오가며 잡음이 커졌다.
그런데 갈등의 중심에 있던 순자가 가장 많은 팬을 얻었다. 사람들은 순자에게서 무엇을 봤고, 어떤 마음으로 그에게 이례적인 지지를 보내는 걸까.
순자의 외모나 성격이 좋았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사람마다 순자를 좋아하는 이유도 다를 것이다. 다만 순자를 지지하는 동시에 다른 출연자들을 강하게 비판하던 반응을 들여다보면, 반복해서 등장한 말이 있다.
'사회생활하면서 저런 사람을 꼭 한 번은 겪었다.'
'대놓고 괴롭히는 게 아니라 은근히 꼽을 주고 편을 가른다.'
'문제를 제기하면 오히려 내가 예민한 사람이 된다.'
이 말들은 순자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다른 출연자들의 행동에서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는 고백이다. 화면 속 순자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학교나 직장, 친구 관계에서 느꼈던 소외감과 관계적 긴장을 함께 떠올린 것이다.
과거에 관계 속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됐던 경험은 비슷한 장면을 만나는 순간 다시 활성화된다. 이때 사람은 현재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해석하기 쉽다. 그 결과 실제보다 의도를 더 강하게 추론하거나, 관계의 위협을 더 크게 지각하는 일도 나타난다.
따라서 어떤 시청자에게 순자의 상황은 연애 예능의 한 장면이 아니라, '나도 저런 상황을 겪어봤다'는 몰입의 장치였을 수 있다. 순자를 향한 감정이 강해지는 첫 번째 지점이다.
중요한 건 순자가 실제로 따돌림을 당했는지를 단정하는 일이 아니다. 방송은 편집된 콘텐츠고, 출연자들의 관계 전부를 시청자가 알 수는 없다. 단지 시청자가 그렇게 느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번 순자가 '여럿 사이에서 혼자가 된 사람'으로 읽히기 시작하면 평가 기준도 달라진다. '순자는 어떤 사람인가'보다 '순자에게 벌어진 일이 정당한가'가 중요해진다.
실제로 방송 당시 순자를 지지하는 반응 가운데는 "순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출연자들이 저렇게 대하는 건 잘못됐다", "순자도 미숙한 부분은 있지만 따돌릴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식의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이는 순자를 완벽한 사람이라고 평가해서 생긴 호감과는 다르다. 순자의 성격에 대한 판단과 그가 받았다고 느끼는 대우에 대한 판단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 순간 시청자는 관찰자에서 '편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바뀐다.
여기에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가 겹칠 수 있다.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고 인식되는 대상을 응원하는 경향. 사람들은 때로 압도적인 강자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버티는 사람에게 더 큰 호감과 지지를 보인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순자의 폭발적인 인기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출연자는 매 기수마다 등장하고, 그들이 모두 17만명의 팔로워를 얻지는 않는다.
순자에게는 또 하나의 조건이 있었다. '나와 멀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과 압도적으로 동떨어진 사람을 선망할 수 있지만, 자신을 투영하는 일은 다른 문제다.
처음부터 모든 이성의 선택을 받고 외모와 직업, 인간관계에서도 우위에 있는 출연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시청자는 그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선택받을지 불안해하고, 관계에서 밀려날까 걱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갈등하고, 때로는 혼자가 되는 사람은 훨씬 익숙한 감정의 영역에 있다.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지각된 유사성'이 등장인물과의 동일시나 준사회적 관계(대중이 미디어 속 인물과 일방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는 관계)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순자의 소구력은 평범함이 아니라 심리적 접근성에서 나왔을 수 있다. 방송 속 갈등과 소외의 장면들이 시청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겹쳐 볼 자리를 만들어줬다는 뜻이다.
남성 시청자가 여성 출연자를 볼 땐 '내가 연애하고 싶은 사람인가'라는 기준이 상대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 시청자에게 같은 여성 출연자는 다른 평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떨까.'
'저 불안은 나도 안다.'
연애 대상으로서의 매력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은 다른 문제다. 순자의 폭발적인 인기를 이해하는 열쇠도 이 차이에 있을지 모른다. 자신과 멀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 사람이 불리한 상황을 지나 누군가에게 선택받고, 마지막에는 누구보다 큰 관심을 얻는 과정을 보여줬기 때문에 더 강한 애착을 불러일으켰을 수 있다.
시청자가 순자의 처지에 자신의 경험을 겹쳐 보는 '서사적 동일시'를 이뤘다면, 순자가 경수에게 선택받는 장면은 연애의 결말을 넘어선다. 자신이 과거에 받지 못했던 인정까지 대신 돌려받는 보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처음부터 가장 인기 있던 여성이 인기 있는 남성과 이어지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이야기지만, 집단에서 불리하다고 여겨졌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선택되면 의미가 달라진다.
'가장 우위에 있지 않아도 누군가에게는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일부 시청자는 순자의 결말을 일종의 신데렐라 서사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왕자를 만나서가 아니다. 줄곧 불리한 자리에 있던 사람이 마침내 인정받고, 자신을 둘러싼 평가를 뒤집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에 끌리는 마음은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스포츠에서는 약팀의 이변에 환호하고, 영화에서는 무명 복서의 승리에 마음을 빼앗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처음부터 완성된 참가자보다 시행착오 끝에 성장하는 참가자에게 더 마음이 가곤 한다.
순자에게도 비슷한 역전의 서사가 만들어졌다. 소외돼 보였던 사람, 갈등을 겪었던 사람, 불리해 보였던 사람. 그런데 누군가에게 선택받았고, 가장 많은 관심까지 얻었다. 특히 SNS 팔로워 수가 출연자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늘고 광고와 협찬이 이어지면서, 순자의 반전은 현실의 성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가장 잘된 사람은 순자였다'는 결론은 순자를 응원했던 사람에게 특별한 만족을 줄 수 있다. 순자의 성공이 순자 개인의 성공으로만 느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응원했던 사람이 결국 인정받았다.'
자신의 판단까지 보상받는다. 나아가 순자에게 자신의 과거를 투영했던 시청자라면 그 만족은 훨씬 커질 수 있다. 순자의 역전을 통해 과거의 자신이 받지 못했던 결말을 대신 경험하는 것이다.
과거 집단에서 밀려났던 자신, 인정받지 못했던 자신, 더 인기 있는 누군가와 비교하며 불안했던 자신. 순자가 마지막에 선택받고 성공하는 이야기는 그런 기억에 상징적인 결말을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순자를 향한 지지는 '대리적 승리'를 넘어 일종의 '대리적 정의 회복'처럼 경험될 수도 있다. 실제로 정의가 실현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청자의 마음속에서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순자를 비판했을 때 일부 팬들이 유독 격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설명된다. 단순히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면 누군가 "나는 별로다"라고 말해도 취향 차이로 넘길 수 있지만, 순자에게 자신의 경험과 도덕적 판단까지 겹쳐놓은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다르다.
"순자를 왜 이렇게까지 편드느냐"는 말이 인물 비판이 아니라 자신이 과거에 부당하다고 느꼈던 경험까지 부정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면 의견 충돌은 빠르게 도덕적 갈등으로 변한다. 순자 편과 순자를 괴롭힌 사람 편, 피해자를 이해하는 사람과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
순자에 대한 평가가 어느 순간 '인간관계에서 약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도덕 판단과 붙어버리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순자 팬덤의 강력함과 위험성이 동시에 생긴다. 누군가에게 공감하는 것과 그 사람을 완벽한 사람으로 만드는 건 다르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구도가 형성되면 사람의 복잡한 면은 지워지고 역할만 남는다. 순자의 행동은 선하게 해석되고, 반대편 출연자의 행동은 악하게 해석된다.
지나친 이상화에는 역설적인 위험도 있다. 사람을 실제 모습보다 높은 도덕적 위치에 올려놓으면 평범한 실수조차 배신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도 사람인데 그럴 수 있다"가 아니라 "우리가 잘못 봤다"로 바뀌는 것이다. 오늘 순자를 절대적인 피해자이자 선한 사람으로 만드는 심리가 내일 순자를 가장 거칠게 비난하는 심리로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람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것과 지나치게 악마화하는 건 반대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한 사람의 복잡성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강하게 이입될수록 한 번쯤 물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화면 속 사람일까, 아니면 그 사람 위에 겹쳐진 오래전의 나일까.
사람들은 언제나 가장 완벽한 주인공에게 마음을 주지는 않는다. 나와 멀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끝내 잘되는 이야기에 더 오래 마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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