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 PD가 리센느 멤버 원이의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감상을 남겼다가 역풍을 맞았다.
시작은 사소한 어미 하나였다. 영상 속 원이는 어두운 방을 보고 "무섭노, 조명부터 무서운데"라고 이야기했다. 경남 거제 출신인 원이가 사투리를 활용한 콘텐츠로 호응을 얻은 점을 고려하면, 팬들에겐 익숙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김현지 PD는 이 말을 다르게 들었다. 그는 SNS에 "호평받는 유튜브 클립 하나 봤는데 여성 아이돌과 PD가 사이좋게 '노노' 주고받고 있어 무척무척 속상했다"는 글을 남겼다.
이후 해당 글에 대한 반박이 이어지자 그는 "거제 네이티브 청년도 사투리 '노'와 일베식 '노'를 구분하지 못하고 쓴다는 게 같은 사투리 사용자로서 안타깝다"며 "우리 사회가 혐오 표현을 장난쯤으로 치부하고 방치한 결과, 보통 사람의 일상적 언어 감각이 오염되고 있다"고 문제의식 제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짧은 어미 하나는 사투리, 일베, 표현의 자유 논쟁으로 번지고 말았다.
▲ 문제는 '노'가 아니라, 그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다
김현지 PD는 왜 '노'라는 말에 속상했을까. 그리고 그의 문제 제기는 왜 대중을 설득하지 못했을까.
사람은 말을 자기 경험으로, 상처로, 기억으로 듣는다. 누군가에게 '노'는 고향의 말투다. 경상도 안에서도 지역마다 어미와 억양은 다르고, 같은 지역 안에서도 세대와 상황에 따라 말은 달라진다. 방언은 고정된 표본이 아니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고 분화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같은 '노'는 다른 기억을 불러온다. 온라인 혐오 문화,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조롱, 여성주의를 향한 공격, 청소년 또래 문화 속 혐오의 놀이화. 기호는 먼지를 묻힌다. 아무리 털어도 눈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혐오 표현을 자주 목격한 사람, 특정 집단을 향한 조롱과 공격을 반복해서 본 사람은 비슷한 말이 등장했을 때 더 빠르게 경계 반응을 일으킨다. 김현지 PD 역시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말처럼 혐오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새 농담으로 유통될 수 있다. 다만 감지가 판결이 되면, 감수성은 권력이 된다. 그리고 권력이 된 감수성은 자신이 겨냥한 폭력과 닮아가기 쉽다.
▲ 그는 혐오가 '놀이'가 되는 장면을 봤을 수 있다
김현지 PD는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자리에서 의미를 찾아온 창작자다. 그는 "새로운 이야기는 늘 변방에 있다"는 믿음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전해왔고, 신작 '남태령'에서는 농민, 여성, 청소년, 퀴어,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등 서로 다른 사람들이 광장에서 만나는 장면을 기록했다. 다수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낸 말과 장면에 의미를 붙여온 사람이다.
지난 5월 '남태령' 개봉 기념 인터뷰에는 이번 논란을 이해하는 단서도 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혐오를 놀이 삼는 청소년 또래문화'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밝혔다. "아들이 가해자가 되면 어쩌나 무서웠다"고도 했다.
그런 배경을 놓고 보면 김현지 PD가 문제로 본 건 원이 개인의 악의라기보다, 젊고 밝은 콘텐츠 안에서 혐오의 흔적처럼 느껴지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는 장면이었을 수 있다. 악의가 없어도 퍼지는 혐오의 생명력을 본 것이다.
▲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비판도 공격처럼 보이게 만든다
김현지 PD는 해당 인터뷰에서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에 쏟아진 남성들의 욕설과 협박을 기억한다고도 이야기했다.
그에게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집단적 반발은 의견 차이가 아니라, 여성주의적 문제 제기를 향한 공격의 기억을 불러오는 장면일 수 있다.
이번 논란에서도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을 보며 '역시 혐오를 문제 삼으면 이런 식으로 돌아온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런 논란에는 불건강한 사이버불링이 붙는다. 욕설, 조롱, 인신공격까지…그런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단 불링이 있었다고 해서 모든 반발이 불링인 건 아니다. 그 안에는 건전한 비판도 있었을 수 있다. 또 불건강한 반발이 있었다면, 그 반발이 왜 그렇게 과격하게 터져 나왔는지도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자신을 피해를 알아보는 사람, 피해를 막아야 하는 사람의 위치에 놓으면 반대 의견도 공격처럼 보일 수 있다. 내가 방어해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면, 내 말에 상처받은 사람은 시야 밖으로 밀려난다.
김현지 PD가 정말 소통을 원했다면, 자신을 향한 공격성만 볼 게 아니라 자신의 말이 어떤 방식으로 전해졌는지도 살폈어야 한다. 자신이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런 부분까지 고려하는 게 진짜 소통이다.
그는 논쟁의 마지막 글에서 "SNS는 토론에 적합한 수단이 아니라는 건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전했다. "일본어 잔재 없애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 "제게 욕설로 시작해 '노'로 끝나는 글을 보내시는 분들은 자신의 말이 무엇을 증명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봐라"라고 덧붙였다.
김현지 PD의 논쟁이 실패한 이유는 정말 SNS 때문이었을까. 이 글에서 대중은 다시 한 번 자신이 토론 상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반발하는 사람들을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로 놓고,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 역시 욕설을 보낸 사람들과 맥락을 지적한 사람들, 조롱한 사람들과 비판한 사람들을 한 덩어리로 묶고 있다. 가장 거친 반응만 골라 '역시 내 우려가 맞았다'고 확인하면 편하지만, 성찰은 밀어낸다.
논쟁 초기 김현지 PD의 문장은 부드러웠다. "대화를 시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황하신 것 이해합니다', "한 번 더 고민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글은 이미 결론을 품고 있었다. '당신은 자신이 쓰는 말의 위험을 모르는 사람'…
계몽적 언어의 함정이다. 말하는 사람은 대화를 청한다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은 교정당한다고 느낀다.
▲ 돌봄은 쉽게 통제로 바뀐다
김현지 PD의 문제의식에는 돌봄 윤리가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 배경인 남태령을 '돌봄의 현장'으로 봤다. 음식 배달, 난방버스, 모금, 서로를 지켜주는 마음에 주목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던 마음들이 열리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도 했다.
이번 논란에서도 출발점은 돌봄이었을 수 있다. 혐오 표현에 상처받는 사람을 돌보고 싶고, 청소년 문화가 혐오에 물드는 것을 막고 싶고, 자신의 아들이 가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돌봄은 쉽게 감시로 바뀐다. "상처받는 사람이 있으니 조심하자"는 말은 필요하지만, 그게 "내가 너의 말을 감별하겠다"로 들리면 돌봄이 아닌 통제가 된다.
▲ 여백을 말한 사람에게도 여백이 필요했다
김현지 PD는 인터뷰 중 '서로 이해하진 못해도 존중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읽는 걸 벗어나서 나보다 타인을 연민할 수 있도록 마음에 여백을 둬야 한다"며 "경계를 좀 허물어뜨려도 괜찮다"고 전했다.
이 문장은 이번 논란에 그대로 돌아온다. 김현지 PD에게 '노'는 오염된 어미처럼 들렸을 수 있지만 누군가엔 고향의 말이고, 웃음의 말이고, 아무런 정치성 없이 몸에 밴 어미일 수 있다. 마음의 여백은 이 가능성 앞에서 필요하다.
김현지 PD도 원이의 말이 실제 방언인지, 거제 지역의 말투인지, 젊은 세대의 언어인지, 유튜브 콘텐츠의 장난스러운 맥락인지 조금 더 살펴볼 수 있었다.
▲ "나도 가해자일 수 있다"는 말은 자신에게도 돌아온다
김현지 PD는 '남태령'을 촬영하며 '누구도 완전무결하게 선할 수 없다', '나도 가해자일 수 있다'는 인물의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어렵지만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것이 어른이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이 말도 이번 논란에 적용된다. 혐오를 경계하는 사람도 누군가를 가해할 수 있고, 선의를 가진 사람도 낙인을 찍을 수 있다. 상처받는 사람을 보호하려는 언어도 누군가의 말과 정체성을 부당하게 의심하는 칼이 될 수 있다. 정의감이라는 이름을 빌릴 때는 더 그렇다.
김현지 PD가 '나도 가해자일 수 있다'는 말을 멋진 어른의 태도로 받아들였다면, 이번 논란에서 그 질문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야 한다. 그 말은 내가 옳다고 믿는 순간에 가장 먼저 꺼내야 한다. 내가 상대보다 더 예민하고, 더 알고 있고, 더 윤리적이라고 느낄 때. 그때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혐오를 막으려 했는지, 아니면 한 사람의 말을 너무 빠르게 재단했는지. 이 질문을 피하면 소통은 멈춘다.
▲ 대중은 '혐오'가 아니라 '낙인'을 먼저 봤다
김현지 PD는 이후 해명에서 "중요한 건 어떤 '노'를 구분하는지가 아니라, 그 말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면 잠깐이라도 머뭇거릴 수 있느냐"고 말했다. 어휘 사용의 태도를 강조한 이야기였다.
문장 자체는 이해된다. 다만 김현지 PD의 문제의식이 역풍을 맞은 이유는 혐오 표현에 뿌리를 뒀다고 합의되지 않은 말을, 너무 빨리 판정했기 때문이다.
말은 맥락 안에서 쓰인다. 김현지 PD의 말처럼 그 표현이 "보통 사람의 일상적 언어 감각이 오염된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장면이었다면, 대중도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실제로 일베 용어인지 모르고 특정 표현을 썼다가 사과한 스타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달랐다. 경남 거제 출신 아이돌이 사투리 콘텐츠 안에서 자연스럽게 쓴 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갑자기 도덕적·정치적 코드를 읽어내면, 대중은 그걸 흠집 내기로 받아들이기 쉽다. 특히 원이는 폭발적인 화제성 속 사랑받고 있던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가 주목받는 순간에 누군가 문제를 끌고 들어왔다고 느꼈을 수 있다. 경고가 낙인이 되는 순간, 좋은 문제의식도 설득력을 잃는다.
▲ 시대의 감각도 변했다
예전이라면 김현지 PD의 문제 제기는 박수를 받았을 수도 있다. 누군가 무심코 쓰는 표현의 정치성을 짚어내는 일은 한때 '깨어 있음'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대의 피로도도 함께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혐오에 지쳤고, 혐오 감별에도 지쳤다. 무엇이든 검열하고 감별하고 낙인찍는 문화에도 피로를 느낀다. 한때 민감함이 용기로 읽혔어도, 지금은 같은 민감함이 통제로 읽힌다. 이 변화를 무시하면 좋은 문제의식도 낡은 훈계처럼 들린다.
언어폭력을 줄이자는 주장은 중요하지만, 그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더 섬세해야 한다. 특히 그 문제의식이 개인의 말과 정체성을 건드릴 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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