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말
‘미술관’이 ‘박물관’과 한 뿌리라는 것은 새삼 다시 따질 필요가 없는 상식이다. ‘박물관(Museum)’의 어원인 그리스어 ‘무세이온(Mouseion)’은 학예의 여신을 모신 전당으로, 시·음악·역사·철학과 조형예술이 애초부터 함께 있던 통합적 공간이었다. 박물관이란 개념 자체가 학문과 예술을 나누지 않고 출발한 것이다. 이후 근대 박물관 제도를 확립시킨 루브르, 영국박물관, 우피치 모두 미술품 컬렉션을 중심으로 출발했으니, 역사적으로 미술관은 박물관의 아류가 아니라 되려, 원형에 가깝다.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산하 근대미술 위원회의 명칭도 ‘국제근현대미술관위원회 (CIMAM, International Committee for Museums and Collections of Modern Art)’이며, 뉴욕근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영국박물관 등 세계 유수의 기관명칭에도 예외 없이 ‘Museum’이 들어간다.
영어 ‘Art Museum’은 ‘Museum’이라는 몸통에 ‘Art’라는 수식어를 붙인 합성어로, 미술관이 박물관의 한 갈래라는 것을 단어의 구조에서 보여준다. ‘Art Museum’은 박물관의 여러 유형 중 하나를 가리키는 합성어일 뿐, ‘박물관’과 대등한 별도의 단어가 아니다. 즉 '미술관이 박물관이냐'는 질문은 마치 '정사각형이 사각형이냐'고 묻는 것과 같이, 불필요한 질문으로 새삼 증명할 필요가 없이 질문에 답이 들어있는 말이다.
그런데 메이지 시대 일본을 거쳐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 위계가 사라지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미술박물관’이란 번역어 대신 ‘박물관(博物館)’과 ‘미술관(美術館)’이란 서로 무관한 두 한자어를 각각 만들어 붙이면서, 영어에 있던 포함관계가 통째로 증발한 것이다.
하위법령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은 '고고학·미술사학·역사학 및 인류학 분야'의 조사·연구 기관으로 명문화되어 있지만(제29조),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작품 및 자료의 수집·보존·전시·조사 및 연구'까지는 명시하면서도(제56조) 이를 뒷받침하는 상위 법률의 정의 자체에 ‘학문’이 빠져 있어, 같은 조사·연구 기능이라도 법적 위상의 무게가 다르게 취급되고 있다.
이 사소해 보이는 ‘학문’이란 단어 하나의 차이가 실제로는 여러 곳에서 부조리와 난센스를 낳는다. 그런데 서울 세계박물관대회(ICOM 2004)까지 개최했던 대한민국이 이 자명한 명제를 법률이 부정하고 있어, 새삼 재론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학문’이란 단어가 빚어낸 정의조항의 논리적 결함
정상적이라면 ‘박물관’은 각각의 역사·고고·인류·민속·예술·동물·식물·광물·과학·기술을 다루는 박물관을 모두 아우르는 상위 개념어다. 그런데 법률에서 두 단어를 접속조사 ‘및’으로 나란히 병렬해 놓으면서, 한국어의 언어 감각으로는 ‘박물관’은 더 이상 미술관을 포함하는 상위어가 아니라 미술관과 대등한, 서로 배타적인 각각의 항목으로 굳어져 박물관과 미술관이 별도의 기관이 되어버렸다. 법 조문이 언어 관행 자체를 왜곡시킨 것이다.이런 상황을 더욱 부추긴 것은 프로토타입 효과다. 대중들은 ‘박물관’이란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국립중앙박물관을 떠올린다. 그리고 중앙박물관 소장품이 도자기와 불상, 고문서, 회화 같은 고고·역사 유물에 치우쳐 있다 보니, 범주 전체가 슬그머니 ‘역사 유물을 다루는 곳’으로 좁아져 박물관은 역사 유물을 다루는 곳으로 규정되었다.
행정 구조도 이를 확실하게 못 박았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완전히 별개의 국립기관, 별개의 소관 체계로 나뉘어 존재하고, 법률조차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라고 두 단어를 나란히 병기하면서, 대등한 범주라는 인식을 법의 명칭에서까지 분명하게 다시 확인시켰다.
결국 오늘 우리가 마주한 '미술관은 박물관인가'라는 혼란은 세 겹의 오류가 누적된 결과다. 우선 번역 단계에서 위계가 사라졌고, 국립중앙박물관이 그 빈자리를 협량한 이미지로 채웠으며, 행정 분리가 그것을 제도로 고정했다. 문제는 언어 감각의 오류가 아니라, 번역과 제도와 관행이 차례로 쌓아 올린 구조적 결과라는 데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박물관’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개 국립중앙박물관을 떠올린다. 오랜 세월 그 이름이 워낙 널리 쓰이다 보니, ‘박물관’이라는 보통명사 자체가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고유명사의 개념에 갇혀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념의 순서를 뒤바꾼 왜곡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모든 박물관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이라는 유개념 아래 놓인 여러 종개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국립중앙박물관은 ‘고고학박물관’도 ‘미술관’도 아니다. 고고·역사·미술·인류학을 두루 아우르는 ‘종합 역사문화박물관(General 또는 Comprehensive History Museum)’이다.
그런데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관행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동일시되면서, 정작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닌 이 복합적 성격조차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역설이 생겨났다. 이름이 개념을 대신해 버린 것이다. 이처럼 법적 위상의 무게가 다른 상황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은 2006년부터 책임운영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 제도는 애초에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쟁 원리에 따라 성과관리를 필요한 사무를 하는 기관에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격 자체가 학술 연구 기관보다는 성과관리형 서비스 제공기관에 가깝다.
그럼에도 국립현대미술관만 ‘학문’이란 단어가 제거된 법률적 규정 때문에 같은 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되어 관장은 정치적 외풍에 따라 오가고, 학예연구실장은 대학이나 국책연구기관 연구실장에 준하는 신분 보장을 받지 못한 채 불안정한 고용 형태에 머물러 있다.
다만 이는 '책임운영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나 공무원 정원 관리 규정 등 훨씬 더 직접적인 제도의 영향도 크며, ‘학문’한 단어의 유무가 이를 결정지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의 조항에서 ‘학문’이 누락되면서 미술관을 학술기관이 아닌 전시·서비스 기관으로 인식하는 관성을 낳았고, 그 관성이 조직 설계와 인사 제도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해 왔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소관 부서가 이원화되어 국립현대미술관이 ‘박물관 정책’이 아니라 ‘시각예술 진흥’ 체계로 흡수된 현재의 구조와도 직결된다. 국제 교류 측면에서도 대외적인 모순이 발생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내 미술관들은 ICOM 회원기관으로서 국제 박물관 윤리강령(ICOM Code of Ethics for Museums)과 정의를 준수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의 국내법에서는 미술관을 그 정의와는 다른 ‘비 학문 시설’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해외의 미술관이나 기타 기관과 학술 협력이나 공동연구, 국제 학술대회 참여를 논할 때, 한국 미술관은 스스로 국내법상 ‘학문을 다루는 기관이 아니다’라는 점을 알려야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이론적으로 성립한다.
박물관·미술관의 유·종개념 논리와 그 붕괴
문제의 심각성은 단순한 법률적·행정적 처우 격차를 넘어, 법 조문 자체의 논리가 무너져 있다는 데 있다. 개념의 위계를 분명히 하자면, 박물관은 ‘유개념’이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모두 그 종개념, 곧 하위 개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고고·역사·미술·인류학을 아우르는 종합 역사문화박물관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은 회화·조각·건축·공예·서예 등 시각예술 전체를 다루는 특화된 미술박물관이다. 둘은 서로 다른 성격의 기관이지만, 박물관이라는 상위 범주 아래 나란히 놓인 동등한 하위 개념이라는 점에서 같다. 그런데 이 위계는 법조문 안에서 스스로 무너진다.
우선 1조의 목적조항과 2조의 정의조항이 서로 어긋난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조는 법의 목적을 '박물관과 미술관을 건전하게 육성함으로써 문화·예술·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및 평생교육 증진에 이바지함'이라고 규정해, 박물관과 미술관 모두 ‘학문’을 공통의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제2조 정의 규정에는 미술관에서만 ‘학문’이 없어진다. 법의 총론과 각론이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법 제2조 2호는 미술관을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조각·공예·건축·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이라고 정의한다. '박물관 중에서'라는 표현은 미술관의 외연이 박물관의 외연에 포함되는 부분집합임을 스스로 명시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또 발생한다. 전통적인 유개념과 종개념의 논리에 따르면, 종개념은 유개념의 외연상 부분집합이 되는 대신, 내포상으로는 유개념의 속성을 모두 포함하고 거기에 종차를 더 가져야 한다. 즉 미술관이 박물관의 종개념이라면, 미술관은 '박물관의 속성 즉 문화·예술·학문의 발전+미술이라는 종차'를 가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실제 2호의 정의는 1호의 목적 문구인 '문화·예술·학문의 발전'에서 유독 ‘학문’만 빼고 '문화·예술의 발전'만 남겨놓았다.
이는 유개념보다 종개념이 속성을 더 많이 가져야 하는통상의 유·종 관계와 정반대로, 오히려 속성이 줄어들었다. 외연은 축소되었는데 내포까지 함께 축소된 셈이니, 유·종 논리의 정합성이 깨진 것이다. 이렇게 미술관을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민속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등과 같이 박물관의 하위 범주로 규정하면서도 정작 상위 개념의 정의적 속성을 승계시키지 않은 것은, 최소한 유개념·종개념 논리의 정합성 측면에서는 명백한 흠결이다. 이런 잘못된 규정 때문에 ‘자료’와 ‘기관’의 정의도 자기모순을 일으킨다.
제2조 4호는 '미술관자료'를 '미술관이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하는 예술에 관한 자료로서 학문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자료'라 정의한다. 즉 미술관의 ‘자료’는 학문적 가치를 갖춰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그 자료를 다루는 ‘기관’인 미술관은 학문과 무관한 시설로 규정한 것이다. 학문적 가치가 있는 자료를 조사·연구하는 기관이 법률상 학문과 무관한 시설인 셈이니, 이는 박물관학의 기본 전제, 곧 연구 없이는 학문적 가치를 판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여기에 자료의 법적 성격이 소장 기관에 따라 자의적으로 달라지는 경계도 생긴다. 박물관자료의 정의에는 ‘예술’이, 미술관자료 정의에는 ‘공예·건축·사진’ 등이 각각 포함되어 있어, 같은 유형의 자료라 하더라도 종합박물관에 가면 학문적·예술적 가치를 갖춘 학술 자료가 되고, 미술관에서는 정의상 학문과 무관한 감상용 전시물이 되는 이상한 이원 체계가 성립한다.
유개념과 종개념을 동일시하는 이 언어적 혼란은 컬렉션 관리에서도 기이한 결과로 나타난다. 조선 후기까지의 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그 이후의 미술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관리하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미술사적으로, 조선 후기와 근대 초기 회화가 같은 작가가 연속선상에서 계속 활동했기 때문에 양식, 기법, 재료 등에서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정의로 인해 소장품이 ‘역사자료’와 ‘미술자료’로 인위적으로 나뉘어, 두 기관 사이의 학예 연구가 단절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행정적 편의가 학문적 연속성을 갈라놓은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예사 자격제도에도 모순이 생긴다. 박물관 학예사와 미술관 학예사는 같은 자격 체계 안에서 관리되며, 그 자격 요건 자체는 미술사학·예술학 등 관련 학문 전공과 학술적인 연구 실적을 요구한다. 국가는 개별 학예사에게는 학문적 전문성을 요구하면서, 정작 그들이 소속된 기관인 미술관 자체는 법적으로 학문과 무관한 시설로 규정하는 모순이 방치되고 있다. 이러한 '정합성의 결함'은 철학적 구분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1991년 '박물관법'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으로 전면 개정되던 당시의 행정적·정치적 타협의 산물에 가깝다는 것이 대체적인 해석이다.
1984년 제정된 '박물관법'은 미술관을 '준박물관'이라는 하위 범주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1988년부터 화랑협회를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시작되었고, 1989년 미술협회·화랑협회가 독자적인 '미술관 진흥법(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정을 건의했다. 이 법안의 핵심은 학술·연구 기능이 아니라 미술관 건립시 경비 보조·부지 제공·세제 혜택 등이었다. 이후 1990년부터 정부의 박물관법 개정안은 상속·증여·양도세 면제 요구가 반영되어, 1991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정으로 미술관은 박물관과 대등한 법적 지위를 얻었다.
그러나 이 지위는 미술관의 ‘준박물관’이라는 하위 개념을 시정하려는 목적이 학술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이 아니라 재산권·세제 혜택을 다투는 과정에서 확보된 것이었고, 이것이 오늘날 미술관이 박물관학·미술사학적 체계보다 시설·자산 중심으로 규정되는 원류라는 실책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법 개정 과정에서 문화체육부·교육부·국립중앙박물관 등 관계 기관·부처 간 주도권 다툼 때문에 ‘학문’이란 단어의 유무 같은 세부 표현에 관한 정교한 이론적 검토 없이 관성적으로 처리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유야 어찌 되었든 미술관은 ‘학문’과 무관한 기관으로, 법적으로 정리된 것은 입법 상 실수에 가깝지만, 의도와 무관하게 법률 문장의 어구가 그렇게 남아 있는 한 행정 실무와 예산 편성 등은 정의 조항을 기준으로 작동하므로 실질적 불이익은 그대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개정이 시급하다.
언어와 행정에 새겨진 왜곡, ‘미술박물관’의 ‘시각예술 진흥’임무
국립박물관·미술관 행정의 두 축은 뚜렷하게 갈린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그리고 전국의 공사립 박물관·미술관은 문화부의 지역문화정책관 산하 문화기반과가 관장한다.반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예술정책관 산하 시각예술디자인과가 관장한다. 이는 단순한 소관 부서의 차이가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 자체가 ‘학문’이란 단어 하나 때문에 서로 달라지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문화기반과의 업무는 명백하게 ‘박물관학’을 기반으로 한다. 박물관·미술관·문화원 등 문화기반시설에 관한 종합계획 수립, 관련 법·제도 개선 및 조사연구, 학예사 등 전문인력 양성, 국립박물관·미술관 설립 협의와 공사립 박물관·미술관 육성·지원이 그 핵심이다. 즉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라는 박물관 고유의 기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이에 반해 시각예술디자인과의 업무는 진흥·산업·공간 정책에 방점이 찍혀 있다. 회화·공예·조각·사진·디자인·건축·서예 등 시각예술 관련 종합계획 수립, 시각예술의 마케팅 활성화와 산업화, 창작 및 기획·경영 분야 전문 인력 양성, 공공디자인 종합계획, 다중 이용 공공시설의 문화적 개선 등이 그 업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지원 및 관리는 이 업무들 사이에 나열된 한 항목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은 ‘박물관’이 아니라 ‘시각예술 진흥사업의 수행기관’ 중 하나로, 시각예술디자인과의 ‘하청업체’처럼 취급되고 있다. 즉 젊은 작가 발굴·양성, 창작공간 조성·운영 지원, 산업화·미술시장 마케팅 활성화 같은 시각예술디자인과 본연의 정책 목표가 국립현대미술관에 자연스럽게 반영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또한 사립미술관은 문화기반과 업무영역이라 같은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차적인 업무로부터 자유로운 모순이 생겨난다. 이는 박물관학의 국제적 통념에서 벗어난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가 규정하는 박물관의 본질은 인류와 환경의 유형·무형 유산을 수집·보존·연구·소통·전시하는 비영리를 전제로 한 항구적인 시설, 기관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속된 상위 정책 라인은 산업화·마케팅·인력 양성·공간 개선 등 진흥 행정이 우선시되어, 학예 연구·소장품 관리·보존과학 같은 박물관 본연의 기능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소지가 구조적으로 존재한다. 이원화된 이런 문화부 내의 구조는 국립현대미술관 스스로 위상 혼란으로 이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박물관 정책’의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지원받는 대신, 국립현대미술관은 ‘시각예술 진흥’과 ‘박물관 운영’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의무 사이에 놓여 있다. 소장품 연구와 보존에 투입되어야 할 연구 인력이 전시 유치, 미술 문화 산업, 미술은행 운영, 미술시장 연계, 대외 마케팅 성과로 평가받는 상황이 반복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계를 중심으로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혁파해달라는 요구가 거세지자, 문화부는 ‘뮤지엄(Museum)’ 행정의 유기적 통합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2017년 9월 문화기반과에 배속시켰다가, 1년도 못 되어, '대한민국 현대미술의 창작·전시·해외 교류를 이끄는 국가대표 미술 기관이 현장과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편의적 논리로 2018년 다시 시각예술디자인과로 이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은 박물관이 아니라 시각예술진흥에 앞장서야 하는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는 문화부의 소관 부서의 정책 문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진정한 국립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그 운영 지원 및 관리 업무를 문화기반과, 혹은 박물관학적 전문성을 갖춘 별도의 소관 라인으로 이관하는 조직 개편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각예술진흥은 ‘쿤스트할레’라는 제3의 길
박물관학에 의거 국립현대미술관을 문화기반과로 옮기고, 시각예술디자인과는 소장품 없는 비영리 전시기관, 즉 쿤스트할레(Kunst Halle) 또는 쿤스트하우스(Kunst Haus)나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형 기관을 별도로 설립·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미술에 관련된 성격이 다른 모든 일을 국립현대미술관에 떠맡길 것이 아니라, 기관의 설립 목적과 성격에 맞게 일을 나누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국립현대미술관의 관할부서 이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미술 행정 전체의 논리 구조를 재정렬하자는 제안이다. 지금의 혼란은 ‘박물관’과 ‘진흥기관’이라는 서로 다른 존재를 하나의 몸에 구겨 넣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억지로 겹쳐 놓으면서 비롯된 것이다.
박물관은 본질적으로 소장·보존·연구라는 장기적이며 축적적인 시간성을 기반으로 하는 기관이다. 반면 창작 진흥 생태계를 위한 젊은 작가 발굴, 신진 작가 창작 지원, 실험적 기획전 같은 진흥 사업은 회전이 빠르고, 정책적 유행에 민감하며, 소장품의 무게를 짊어질 필요가 없는 유연한 기관에 훨씬 적합하다. 따라서 독일의 쿤스트할레나 쿤스트하우스, 영미권의 동시대미술연구소(ICA)처럼 소장품없이 기획전시만 운영하는 별도의 기구가 제도적 범주로 오래 자리 잡아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소장품 없는 전시관(Kunsthalle without a collection)'으로 설계되어, 국공립 미술관이 짊어진 보존·연구의 책무 없이도 당대 미술의 최전선을 실험하고 순환시키는 역할을 전담해 왔다.
특히 이 제도는 우리나라처럼 소장품을 확보할 예산도 전문성도 없는 지방의 중소 공립미술관을 소장품 없는 전시관으로 전환하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의 부담도 덜고, 지역작가의 창작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자체 기획 전시가 거의 없이 대관 전시로 명맥을 이어가는 예술의 전당 미술관도 미술관 명칭을 버리고 전시관으로 전환해 문화부 시각예술디자인과의 미술진흥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런 제도적 범주가 아예 없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자료의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을 하는 시설로 정의하고 있을 뿐, 소장품 없이 전시와 진흥 기능만 수행하는 기관에 대한 별도의 법적 지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국립현대미술관이 한 몸으로 박물관 역할과 진흥 사업 수행기관 노릇을 동시에 떠맡아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고, 이는 앞서 살핀 시각예술디자인과와 문화기반과의 이원적 소관 구조와도 정확히 맞물려 있다.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을 문화기반과로 다시 배치해 박물관 본연의 수집·보존·연구 기능에 집중하게 하고, 시각예술디자인과는 별도의 비 소장형 진흥 전시기관을 설립·운영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나누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쿤스트할레형 기관을 명문화하는 개정이 필요하다. 현행법 체계에서는 소장품이 없는 전시 중심 기관이 법적으로 ‘미술관’의 지위를 인정받기 어렵고, 등록 요건과 지원 체계 역시 소장품 보유를 전제로 법이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 개정을 통해 이런 기관의 정의와 등록 요건, 지원 근거를 신설한다면, 국립 차원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나 민간 영역에서도 부담 없이 실험적 전시 공간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구상이 넘어야 할 현실적 문턱도 있다. 조직 개편은 예산과 정원, 소관 부처 간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여서 법 개정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새 기관을 신설하는 데는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 물론 법인화 또는 예술인 조합을 설립해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 물론 소장품 없는 전시기관이 자칫 단기 성과 위주의 이벤트성 전시로 흐를 위험도 경계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박물관과 진흥기관의 역할을 법적·제도적으로 분리해 각각의 정체성에 맞게 운영하자는 방향 자체는 소위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한국 미술 행정이 한 번쯤 진지하게 검토해 볼 가치가 있는 의제다.
‘뮤지엄’이라는 궁여지책
대한민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의 개념적 모순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은 문화부나 한국박물관협회의 용어 사용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의 박물관 모두를 회원으로 하는 ‘한국박물관협회’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칭할 때 ‘박물관’이라는 단어보다 ‘뮤지엄’이라는 외래어를 그대로 음역해 사용한다.문화부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스타일상의 우연한 선택이 아니다. ‘박물관’을 상위어로 그냥 쓰는 순간 은연중 '미술관도 학문 발전에 이바지하는 기관'이라는, 정작 법이 인정하지 않는 지위를 미술관에 부여하는 셈이 되고, 반대로 미술관에서는 자신이 속한 기관이 ‘박물관’이라는 이름 아래 뭉뚱그려지는 순간 법률상 인정되지 않는 ‘학문성’을 가진 기관과 동일시되거나, 혹은 자신들의 정체성이 박물관의 하위 범주로 축소·흡수된다는 거부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두 기관을 나란히, 공평하게 지칭해야 할 때 ‘박물관’을 상위어로 쓰면 미술관 쪽에 대한 개념적 폄훼로 읽힐 소지가 있고, ‘미술관’을 상위어로 쓰면 반대로 역사·자연사·과학 계열 기관들이 부적절하게 배제되기 때문에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제3의 표현이 필요한데, 정작 한국어 안에는 이미 정착된 중립적 상위어가 없는 상태다.
따라서 이때 아직 국내법적·관행적 함의가 없는 원어 그대로의 외래어 ‘뮤지엄’을 사용하는 것이, 미술관도 박물관에도 속하지 않는 안전한 선택지가 된 것이다. 이는 어휘 공백을 외래어 차용으로 메우는 전형적인 패턴이지만, 동시에 법률 용어의 결함이 학술·업계 언어 관행까지 왜곡시킨 부끄러운 사례이기도 하다.
ICOM이나 박물관학(Museology) 어디에도 ‘박물관’과 ‘미술관’을 학문성 유무로 갈라 별도의 구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박물관학 커리큘럼에서 미술관은 역사·고고·인류·민속·동물·식물·광물·과학·기술·산업 박물관이 ‘박물관’의 하위 개념인 것과 마찬가지로 독자적 학문이 아니라 박물관학의 한 하위 사례로 다룰 뿐이다. 한국만이 국제사회에서 이미 정리된 상식을 국내법으로 다시 흔들어 놓은 채, 그 흔들림을 봉합하기 위해 외래어를 빌려 쓰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30여 년째 방치해 온 것이다.
미술박물관, 국제 기준과의 괴리
미술관과 박물관을 개념적으로 별도로 구분하는 일은 국제적으로 결코 보편적인 일은 아니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미술관을 별도로 정의하지 않는다. 2022년 개정된 ICOM의 박물관에 관한 정의는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비영리 상설기관으로서 유형·무형 유산의 연구, 수집, 보존, 해석, 전시를 담당하는 기관'이라고 규정하며, 여기에는 자연사·과학·미술 등 소장품의 종류에 따른 구분이 없다. 국제 기준에서 미술관은 그저 ‘미술을 다루는 박물관’일 뿐이며, 연구 기능 또는 학문적 기능이 면제되는 별종의 기관이 아니다.이런 단일 정의 방식은 개별 국가의 입법례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일본의 '박물관법'은 미술관을 별도의 법률이나 별개의 조항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이 법에서 ‘박물관’은 역사·예술·민속·산업·자연과학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관·전시하여 교양·조사연구·레크리에이션 등에 이바지하는 기관이라 정의하며, ‘예술’에 관한 자료를 다루는 미술관도 이 정의 안에 그대로 포함된다. 목적 조항에도 국민의 '교육·학술 및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명시해, 학술적 기능이 미술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프랑스는 '문화유산법전(Code du patrimoine)'에 'Musée de France'라는 국가 인증 제도를 두고 있는데, 미술관·자연사박물관·과학관 등을 아우르는 단일한 ‘박물관(musée)’ 범주로 규율할 뿐, 미술관만 따로 떼어 별도로 정의하지 않는다.
미국 역시 연방법(20 U.S.C. §9172, Museum and Library Services Act)이 ‘museum’을 '교육·문화유산·심미적 목적을 위해 항구적으로 조직된 비영리 기관으로서 유형물을 소유·관리하고 정기적으로 전시하는 기관'으로 단일 정의한 뒤, 그 예시로 '미술관(art museums)'을 수족관·식물원·역사박물관·자연사박물관 등과 함께 병렬 나열한다. 즉 미술관은 이 정의의 대등한 별종이 아니라, 하나의 정의 아래 놓인 여러 하위 유형 중 하나로 취급될 뿐이다. 영국은 아예 ‘박물관’을 법률로 정의하지 않는다.
잉글랜드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가 운영하는 인증제도(Museum Accreditation Scheme)가 2022년 ICOM 정의를 그대로 채택해 '박물관과 갤러리'를 하나의 인증 기준으로 함께 규율하며, 미술관(gallery)을 박물관과 개념적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독일도 사정은 비슷하다. ‘박물관’이라는 용어 자체가 법적으로 보호되거나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독일박물관협회(Deutscher Museumsbund)와 ICOM 독일지부가 ICOM의 정의를 사실상의 기준으로 삼아 미술관을 포함한 모든 유형의 박물관에 동일하게 적용한다.
중국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서로 다른 행정 법규로 규율한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형식적으로 유사하다. 국무원의 '박물관조례'(2015)와 문화부의 '미술관공작잠행조례'(1986), 그리고 상하이시 등 지방정부의 '미술관관리방법'이 각각 존재한다.
그러나 중국의 구분 기준은 ‘학문’이라는 단어의 유무가 아니라 소장품의 시대적 범위나 소관 부처의 차이이며, 미술관 관련 조례 자체에도 '학술 연구를 조직한다'고 명시해, 개념적으로 학문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한국처럼 하나의 법률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나란히 정의하되 ‘학문’이란 요소의 포함 여부로 개념적 차등을 두는 입법례는 국제적으로 거의 없다. ICOM과 일본,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은 모두 박물관의 하위 범주로 미술관을 비롯한 다양한 박물관을 포함하는 단일 정의·단일 규율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이원적 입법을 택한 중국조차 학문성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정의 방식은 국제 기준보다 개념을 축소시킨, 매우 예외적인 입법례다.
‘매력’ 있는 문화국가를 위한 법률개정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개정은 필연적이다. 법의 개정은 정의조항의 정합성을 회복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미술관을 박물관의 하위 유형으로 규정하는 현행 체계를 유지하려면 미술관의 목적 정의에도 ‘학문의 발전’을 명시해, 목적조항(제1조)과 정의조항(제2조), 그리고 미술관자료의 정의(제2조 4호)가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우선 정비가 필요하다.이는 국회의 상식적 판단만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시급하면서도 가장 손쉬운 최소한의 조치다. 그리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고 학문적으로도 ‘박물관학(Museology)’ 개념 체계에 맞추어 재설계해야 한다. ICOM과 일본, 프랑스의 입법례가 보여주듯, 미술관을 박물관과 본질적으로 다른 별종의 시설로 여기게 만드는 이원적 정의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 소장품의 종류와 무관하게 모든 박물관·미술관에 연구 기능을 동일하게 요구하는 국제 통례를 따라, 최대한 빠르게 단일한 정의 체계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정의조항의 개정에 그치지 않고 이를 조직법·인사 제도까지 연결해야 한다.
미술관이 법률상 학문 발전에 이바지하는 학술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인사·예산 자율성, 학예연구실장의 신분 보장과 직급 체계 역시 그에 걸맞게 재설계되어야 마땅하다. 정의조항의 문구 하나를 고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그간 관행적으로 정당화되어 온 미술관의 낮은 제도적 위상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법은 언어로 이루어진 제도다. 법이 미술관을 ‘학문’과 무관한 시설로 규정하는 한, 그 언어는 조직과 예산과 사람의 처우로 고스란히 옮겨 간다. 30여 년 전 부처 간 갈등과 미술계와 고고·역사·인류학 박물관과의 불화 속에 급조된 단어 하나가 오늘날 한국 미술관의 낮은 위상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계속 작동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미 국제사회에서 종결된 상식을 국내에서 다시 논증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문화행정과 입법이 국제 기준에서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를 웅변한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전면 개정 논의에서, 이 ‘학문’ 두 글자의 문제는 가장 먼저, 그리고 반드시 다뤄져야 할 의제다. 헌법개정도 중요하지만, 작지만 결코 소홀할 수 없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의 서로 다른 목적조항과 정의조항을 일치시키는 문제는 대한민국 국격과 관련된 중차대한 문제이다. 더 이상 미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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