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스크린에 걸린 '세로 영화'…이준익 감독의 숏폼 실험 '아버지의 집밥'

포즈 취하는 아버지의 집밥 출연진 사진연합뉴스
포즈 취하는 '아버지의 집밥' 출연진 [사진=연합뉴스]
영화 '왕의 남자', '자산어보' 등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세로형 숏드라마로 관객과 만난다. 스마트폰 비율의 세로형 콘텐츠가 극장 스크린에 걸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극적인 숏폼 시장 속에서 소박한 가족 이야기로 승부수를 띄운 이 감독의 포맷 실험이 극장가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이목이 쏠린다.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는 영화 '아버지의 집밥'(감독 이준익) 언론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연출을 맡은 이준익 감독과 배우 정진영, 이정은이 참석했다.

영화 '아버지의 집밥'은 40년간 삼시세끼 집밥만 찾던 아버지 하응(정진영 분)이 요리백지증에 걸린 아내 순애(이정은 분)를 대신해 생애 처음 부엌에 들어서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고리타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당초 모바일 플랫폼 레진스낵용 숏드라마로 기획됐으나, 롯데시네마를 통해 극장용 '세로형 시네마'로 최초 상영된다.

이 감독은 "원작이 가진 따뜻하고 재밌는 힘을 영화에서 충분히 받았다. 오늘 스크린으로 직접 보며 가로든 세로든 형식이 무엇이 중요한가 다시 느꼈다"며 "수백 년 동안의 그림을 보더라도 가로는 풍경화고 세로는 인물화이자 초상화다. 세로 화면을 통해 인물 하나하나 한 인간의 내면을 엿보는 듯한 내밀하고 깊숙한 장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짚었다.

이 감독이 상업영화의 틀을 깨고 숏폼 연출에 나서게 된 배경에는 침체된 영화계 현실과 후배들을 향한 따뜻한 응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감독은 "최근 영화계 장벽이 높아 후배들이 숏폼으로라도 창작욕을 피울 수 있게 뒤에서 응원해 왔다. 그러다 '감독님은 상업영화 한다고 숏폼을 무시하느냐'는 농담 섞인 부추김을 받아 연출을 결심하게 됐다"며 "결과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찍는 영화들은 자극이 덜하고 폭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 숏폼을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 염려가 컸지만, 평범한 가족 이야기라도 숏폼이 가진 짧은 기승전결의 장점을 살리면 충분히 흥미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아버지의 집밥 연출한 이준익 사진연합뉴스
'아버지의 집밥' 연출한 이준익 [사진=연합뉴스]

'아버지의 집밥'은 정진영, 이정은을 비롯해 장남 명복 역의 변요한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해 눈길을 끈다. 이들은 숏폼이라는 다소 낯선 포맷 안에서도 노련한 호흡을 빚어내며 스크린을 꽉 채운다.

정진영은 이번 작품을 "눈물 나는 코미디"라 칭하며 "코미디 연기를 과장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진지한 마음으로 하는 게 진짜 코미디 같다. AI에게 '숏폼 연기법'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영화 연기법과 숏폼 연기법이 따로 있더라. 하지만 배우로서는 구분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며 연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재밌었던 건 스태프들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 열기와 온도를 직접 느끼며 연기할 수 있어 좋았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갑작스럽게 남편에게 밥솥을 내주는 아내 순애 역을 맡아 극의 중심을 든든하게 잡은 이정은 역시 캐릭터에 얽힌 일화를 더하며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이정은은 "저희 어머니가 최근 '밥을 하기가 너무 싫다, 지긋지긋하다'고 하셨고 아버지도 삼시세끼를 집에서만 드신다. 몇십 년 동안 부단히 헌신한 어머니의 감사함을 모르고, 당연히 밥은 집에서 해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부모님의 일상 속 또 다른 모습을 통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역할이라는 점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당초 모바일 플랫폼을 겨냥해 제작된 '세로형 숏드라마'가 대형 극장 스크린에 걸리는 이례적인 시도에 관해서도 배우들의 긍정적인 기대감이 이어졌다.

정진영은 "이 감독이 떠밀려서 연출했다는데 저 역시 개봉도 떠밀려서 하게 되는 기분"이라며 웃어 보인 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숏폼 섹션 상영 당시 관객들이 아무도 안 나가고 집중해서 보는 걸 확인했다. 애초 목적은 숏폼 드라마 제공이지만, 스마트폰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큰 화면으로 보고 싶은 분들이 있지 않을까 하여 관객을 직접 찾아가자는 데 의기투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영화가 전체 파노라마라면 OTT 드라마는 작은 아파트의 큰 창, 이건 조그마한 환기창이나 투시창 아닐까 싶다. 그 너머로 봐도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은 볼만하다. 이경규 선배님도 보시고는 가로든 세로든 상관없다고 하시더라. 이상하고 독특한 낯선 환경이더라도 재밌게 봐주시길 바란다"고 관람 포인트를 짚었다.
아버지의 집밥 정진영 이정은 사진연합뉴스
'아버지의 집밥' 정진영, 이정은 [사진=연합뉴스]

이정은 또한 "어머니가 노트북으로 보셨는데 큰 화면으로 보고 싶다고 하셨다. 핸드폰으로 보는 게 용이하지 않은 관객을 흡수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준 것에 감사하다"며 "다양한 층에서 볼 수 있는 좋은 이야기가 공간을 떠나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면 참 좋은 시도라고 여겨진다"고 세로형 콘텐츠의 극장 상영이 지니는 시너지에 주목했다.

끝으로 이 감독은 앞서 일반인 대상으로 진행됐던 상영회를 언급하며 "끝날 때쯤 상영관에 들어갔는데 저보다 연세가 많은 분들로 가득 차 있어서 놀라운 경험이었다. 딱 자기 나이에 맞는 영화를 극장에서 함께 본다는 공감대 형성이 이 영화의 매력 같다"며 "연세 많은 분들뿐만 아니라 손녀딸, 며느리 등 온 가족이 어우러져서 우리네 삶을 엿보며 즐겨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진영은 "큰 흥행 수익을 기대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이거 재밌다'며 함께 즐길 수 있는 행복한 관람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고, 이정은 역시 "보통의 숏드라마가 가진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어서 많은 연령층이 볼 것이라 생각한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집중도가 높아져서 화면이 작게 보이는 것도 크게 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한편 영화 '아버지의 집밥'은 오는 9월 9일 롯데시네마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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