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비욘드 ESG] 熱받은 노동자들 命까지 단축된다

  • 가을의 문턱에서 돌아본 2026의 여름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아침저녁으로 살갗을 스치는 공기에서 어느덧 가을의 기운이 묻어난다. 시원한 바람이 밀려드는 순간 여름내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숨을 고르게 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를 집어삼킬 듯 맹위를 떨치던 올여름 무더위가 계절의 순환 앞에서 물러서는 모양새다. 폭염의 악몽을 버텨낸 사람들은 안도한다. 그러나 이 시원한 바람 속에서 우리는 골이 시린 질문을 떨어낼 수 없다. 여전히 전해지는 네팔의 홍수 소식을 들으며 과연 우리의 여름이 정말로 끝난 것인지, 상쾌한 바람에 막 시작한 이 가을을 마냥 기뻐해도 좋은지. 길게 보면 우리의 여름은 이제 막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 달 전쯤 일본 현지 언론의 르포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도쿄 북쪽 일본 도치기현 닛코시의 한 화훼 농장. 한밤중이지만 온실 내부는 대낮처럼 환하다. 서른여섯 살 농부는 등불처럼 밝혀진 비닐하우스 안에서 땀을 흘리며 거베라를 수확한다. 수백 년 이어온 조상의 벼농사를 접고 꽃 재배로 전환한 그가 일터로 나서는 주된 시간은 해가 진 뒤다. 3년 전 여름, 대낮 온실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쓰러진 사건이 그의 삶을 바꿨다.

낮 기온이 섭씨 35도를 넘어서면 밀폐된 온실 안은 40도를 가볍게 돌파한다.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그는 노동시간을 야간으로 전환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해 질 무렵 몇 시간만이 밖에서 일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우리는 조금씩 야행성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몸을 보호하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제 가을의 문턱에서 그의 노동 환경이 어쩌면 약간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불가역적 변화가 시작된 건 분명하다. 기후위기가 노동 효율을 떨어뜨리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생체 리듬과 생물학적 조건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밤으로 숨어든 노동, 무너지는 일상과 경제

농민이 낮과 밤을 맞바꾸는 풍경은 닛코만의 일이 아니다. 베트남 벼 재배지부터 스페인 포도밭까지 전 세계 야외 노동자가 태양을 피해 서늘한 밤이나 새벽으로 숨어들고 있다. 닛코 인근 지역의 한 양계 농민의 일과는 새벽 2시 30분에 시작된다. 6년 전 폭염으로 산란계 500마리를 잃고 지게차 버킷으로 사체를 치워야 했던 그는 닭이 탈진해 폐사하는 것을 막고자 한밤중에 축사 불을 켜 사료를 먹인다. 하지만 기온이 35도를 넘자 하루 만에 130마리가 폐사하는 사태를 모면하지는 못했다. 그에게 폭염은 조류인플루엔자(AI)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됐다.

이러한 일상의 변형은 실물경제의 뼈대를 뒤흔들고 있다. 일본 농업 종사자의 약 70%는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땀 배출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에게 고온다습한 기후는 치명적이다. 2024년 일본에서 폭염으로 숨진 농업 종사자는 59명으로 3년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기후변화의 보건 영향을 추적하는 ‘랜싯 카운트다운’에 따르면 2024년 일본 농업 부문에서 폭염으로 손실된 안전 노동시간은 9억2600만 시간에 달했다. 이에 따른 소득 손실은 국내총생산(GDP)의 1%에 육박하는 약 460억 달러로 추산된다.

유럽의 초과 사망

서유럽 도심 역시 거대한 열섬 감옥으로 변했다. 영국 보건안보청에 따르면 올해 영국에서는 5월과 6월에 발생한 단 두 차례의 조기 폭염만으로 무려 2877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년 여름 전체 폭염 초과 사망자(1504명)의 두 배에 육박한다. 영국 왕립내과학회 힐러리 윌리엄스 박사는 노인병동 실내 기온이 36도까지 치솟는 현실을 전하며 “이상기후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환자와 의료진 모두를 위협하는 안전의 문제”라고 경고했다.

국제 의학저널 '랜싯 공중보건'에 게재된 스탠퍼드대 연구진의 분석은 인류가 마주한 물리적 위협의 본질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신체가 땀과 호흡으로 열을 방출하지 못해 체온이 통제 불능으로 치솟는 ‘보상 불가능한 열 스트레스(UHS·Uncompensable Heat Stress)’를 규명했다. 청년층이 치명적 UHS에 도달하는 임계선이 산업화 이전 대비 4도 상승 수준이라면 60세 이상 고령층은 단 1.5도 상승만으로도 위험에 직면한다. 노화한 심장은 체온 조절을 위한 혈액 순환의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다. 연구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연간 180시간 이상 UHS에 노출되는 인구가 약 100만명씩 불어난다.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가 21억명에 도달하는 2050년 여름에 우리는 어떤 뉴스를 보게 될까.

몸을 바꾸는 고온과 탄소

폭염은 급성 온열 질환에 그치지 않고 신체의 대사 시스템을 교란해 생물학적 나이를 강제로 늙게 만든다. 중국 저장대 쉬덩융 교수 연구팀이 '사이보그 앤드 바이오닉 시스템스'에 발표한 연구는 충격적이다. 연구팀은 45세 이상 중장년층 2318명을 대상으로 C-반응성 단백질, 당화혈색소, 콜레스테롤 등 8가지 바이오마커를 결합해 생물학적 나이를 산출하고 폭염 노출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4년간 추적했다.

기상 데이터의 온도 백분위와 지속 시간을 조합한 12가지 폭염 정의를 적용해 분석한 결과 폭염 노출 횟수와 기간이 늘어날수록 생물학적 노화 가속도가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특히 체감온도가 상위 2.5% 이상인 상태가 4일 이상 지속된 경우로 규정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을 때 연간 폭염 발생 횟수가 1회 늘어날 때마다 생물학적 나이 가속도는 0.531년 증가하고, 폭염 일수가 하루 늘어날 때마다 0.057년씩 노화가 가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상자 중 58.8%에서 실제 주민등록상 나이보다 신체 나이가 빠르게 늙는 현상이 확인됐으며 과체중군과 도시 거주자에게서 두드러졌다.

고령 쥐의 간 조직 전사체 분석에서도 동맥경화와 인슐린 저항성에 관여하는 29개 유전자 발현이 교란된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이 대사 회로를 망가뜨려 신체 시스템 전체를 조기 노화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호흡하는 대기의 변화는 인간 혈액의 화학적 조성마저 바꾸고 있다. 호주 키즈 연구소와 호주국립대(ANU) 연구팀이 학술지 '대기 질, 대기 및 보건'에 발표한 20년치 미국인 임상 데이터(NHANES, 약 7000명) 분석은 인류 생물학이 직면한 또 다른 경고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369ppm에서 420ppm 이상으로 치솟는 동안 체내 이산화탄소 분압을 조절하는 핵심 지표인 ‘혈청 중탄산염’의 평균 수치는 약 7% 상승했다. 반면 뼈 건강과 대사에 필수적인 칼슘과 인 수치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공기 중 탄소 농도가 치솟아 혈액이 산성화하는 것을 막고자 인체가 완충물질인 중탄산염을 과도하게 생성·축적하며 방어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구 책임자인 알렉산더 라콤 교수는 “이 추세가 지속되면 50년 이내에 중탄산염 수치가 정상 의학 범위의 최상단 한계선에 도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80~300ppm 환경에서 진화한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독성 대기에 짓눌려 생리적 한계에 봉착했음을 알리는 신체의 절박한 조난 신호다.

체온의 한계와 성별화한 기후 불평등

물리적 한계는 인간이 인내를 시험해 온 스포츠 현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마라톤에서는 기온이 16도만 넘어도 신체는 한계에 봉착한다. 오리건대 크리스 민슨 교수가 밝혔듯이 달릴 때 체내 에너지 중 전진에 쓰이는 것은 25%에 불과하며 75%는 열을 식히는 데 소모된다. 기온이 오르면 근육으로 가야 할 혈류와 열 방출을 위해 피부로 가야 할 혈류 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다.

기후 연구 기구 ‘클라이밋 센트럴’은 2045년이면 미국 51개 주요 마라톤 대회 중 아마추어 러너의 최적 기온(6~7도)에서 열릴 수 있는 대회가 5개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야외에서 달릴 수 있는 원초적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이러한 파괴는 평등하지 않다. 유엔여성(UN Women)의 분석에 따르면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땀 배출량이 적고 심장 용적이 작아 고온 환경에서 심혈관계 부담이 크다. 폭염 노출은 조산, 저체중아 출산, 사산 위험을 급격히 높인다. 특히 제3세계 저임금 노동계급 여성은 폭염 속에서 야외에서 일한 뒤 냉방도 없는 주방에서 요리하고 탈수와 열병에 걸린 아이들을 간호하는 삼중고에 시달린다. 온실가스를 배출한 선진국과 부유층이 시원한 에어컨 그늘에 머무는 사이 열기의 형벌은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여성과 아이의 육신부터 공격한다.

불길한 내년 여름

동태평양 수온 상승 현상인 엘니뇨가 완전히 정착되었으며 향후 몇 달 매우 강한 슈퍼 엘니뇨로 발달해 극심한 기후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는 긴급 경보가 지난 3일 발령됐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번 엘니뇨가 2027년 2월까지 지속될 확률이 “100%에 가까운 명확한 수준(near 100%)”이라고 밝혔다. 50년 WMO 역사상 불확실성이 배제된 단정적 수치를 공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평양 수심 깊은 곳의 온도는 평년보다 무려 8도 이상 폭등했다.

통상 엘니뇨는 연말연시에 최고조에 달하지만 대기와 육지 기온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해양 수온이 정점을 찍은 그 다음 해에 가장 가혹하게 폭발한다. 즉 올해 말 피크를 찍은 슈퍼 엘니뇨의 잔여 열기와 누적 온실가스가 결합할 2027년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해보다 뜨겁고 참혹한 불지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올해의 폭염은 내년 여름 지옥도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내년 여름이 가장 더운 여름이 될 것이란 얘기는 아니다. 짐작하듯 더 더운 여름이 내년 이후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온실가스와 폭염은 위협적 생존 조건에 머물지 않고 존재 자체를 겨냥하고 있다. 인류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위험 또한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진단하면 인류는 더 큰 위험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뛰어 들어간다고 정정해야 할까. 대기 중에 배출된 열기와 오염물질을 사후에 수습할 수 있다는 기술적 해법 또한 해답이 될 수 없다. 최종적 해법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전까지 많은 인류가 심각한 위협에 노출된다.

인류의 육신에 가해지는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이 된 이 재앙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아무도 실천하지 않는다. 우리가 올해 겪은 여름은 우리 남은 생애에서 가장 시원했던 여름일 것이란 흔한 경구는 정말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내 손 끝에 닿는 차가운 바람/그리움은 바닥을 드러내고/비어 있는 가슴으로 나는 걸어간다.” 김광균 시인의 ‘추일서정’이 다르게 읽히는 아름다운 가을날이다.
 
2026년 911월 전 세계 지표면 기온왼쪽과 강수량오른쪽 확률 예측 지도 기온 지도에서 붉은색 계열은 평년 초과 푸른색 계열은 평년 미만 기온을 나타낸다 강수량 지도에서 초록색은 평년 초과 갈색주황색은 평년 미만 강수량을 의미한다 회색은 평년 수준 흰색은 모든 가능성이 동일함을 나타낸다 기준 연도는 19932009년 자료세계기상기구 계절예측 멀티모델 앙상블
2026년 9~11월 전 세계 지표면 기온(왼쪽)과 강수량(오른쪽) 확률 예측 지도. 기온 지도에서 붉은색 계열은 평년 초과, 푸른색 계열은 평년 미만 기온을 나타낸다. 강수량 지도에서 초록색은 평년 초과, 갈색(주황색)은 평년 미만 강수량을 의미한다. 회색은 평년 수준, 흰색은 모든 가능성이 동일함을 나타낸다. 기준 연도는 1993~2009년. 자료=세계기상기구 계절예측 멀티모델 앙상블]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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