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한국은행이 7월 국제수지 통계치를 발표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성적표다. 7월 경상수지는 420억8000만 달러 흑자로 7월 기준 역대 최대치다. 월간 단위로는 지난 6월(497억3000만 달러)에 이어 두 번째다. 1~7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도 2330억9000만 달러에 달해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연간 흑자(1230억5000만 달러) 대비 1.9배를 이미 넘어섰다. 상반기 기준으로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흑자국으로 올라서며 독일, 일본, 대만을 모두 제쳤다.
하지만 화려한 숫자에 마냥 취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숫자의 이면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경상수지 흑자 확대의 상당 부분은 반도체 덕분이다. 7월 상품수출은 1004억5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65.3% 급증했는데 반도체 수출이 176.3%,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수출이 344.5% 폭증했다. 화학·석유제품 등 다른 품목도 선전했지만 전체 수출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반도체 경기였다.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 우리 경제엔 좋은 일이지만 과도한 쏠림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굳어질 수 있다. 실제로 한은은 올해 연간 경상수지 전망치를 4500억 달러로 대폭 상향하면서도 “반도체 경기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성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꺾이는 순간 경상수지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7월 상품수출 증가율은 전월 84.5%에서 65.3%로 둔화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지금의 호황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낙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와 통화당국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이 흑자를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를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AI 투자 열기가 둔화하거나 글로벌 정보기술(IT) 수요가 꺾이면 수출과 경상수지가 동시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산업 다변화는 더 이상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차전지·바이오·조선·방산 등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제2, 제3의 수출 주력산업으로 키우고, 중견·중소기업에까지 수출 호황의 온기가 퍼지도록 산업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나 환율 변동, 공급망 재편에 흔들리지 않도록 수출 시장과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노력도 서둘러야 한다.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는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외환위기 가능성을 낮추고 대외건전성을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내재된 위험이 사라진 건 아니다. 반도체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수출 구조는 우리 경제의 오랜 숙제다. 지금의 호황을 산업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지 않는다면 화려한 숫자 뒤에서 위험은 오히려 쌓여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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