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재점화] "40년 전 헌법 이제는 바꿔야"…공감대에도 '지지부진'

  • 모호한 '분권' 개념 두고 백가쟁명…직선제 의미 퇴색 가능성도

  • 양원제·선관위 견제·비상계엄 통제·헌법 전문 등 논의 중심에

  • 전문가들 "여야 공약수 찾고, 그 공약수가 국민 공감대 얻어야"

지난 5월 국회에서 열린 임시국회 제1차 본회의에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국회에서 열린 임시국회 제1차 본회의에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1987년 이후 40년 가까이 유지돼 온 현행 헌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정작 실질적인 논의는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개헌의 핵심인 권력구조 개편, 특히 대통령 권한을 어느 수준까지 분산할 것인지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개헌 성사를 위한 관건으로 여야가 합의 가능한 '최대공약수'를 찾고 이를 국민적 공감대로 확장할 수 있느냐를 꼽는다.

◇개헌 필요성엔 공감대…'권력구조 개편'부터 이견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대체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개헌 추진에 소극적인 국민의힘도 개헌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 2월 국회가 발표한 대국민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1만2000명 가운데 68.3%가 헌법 개정에 찬성했다.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 사이에서도 개헌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상당 부분 형성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헌의 핵심인 권력구조 개편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원집정부제와 의원내각제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돼 왔지만 최근에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엑스(X·옛 트위터)에 "대통령 권한 중 일부를 국회에 넘기는 등으로 대통령과 의회의 권한을 조정하고,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로 변경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국민의힘 역시 지난해 4월 당 개헌특위를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으로 바꾸고 책임총리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헌안을 제시한 바 있다.

문제는 정치권이 말하는 '분권'의 내용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통령 권한을 줄여야 한다는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무엇을, 누구에게, 어느 수준까지 넘길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정치권에서는 국무총리를 국회가 추천하거나 대통령의 인사권 일부를 국회와 나누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견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통령 권한을 지나치게 축소하면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현행 대통령제 취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결국 대통령 직선제를 유지하면서도 견제와 균형을 강화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분권'을 찾는 게 핵심 과제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해외의 분권형 제도를 보면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으면서도 대통령의 실질적인 권한에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대통령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학자들의 몇 가지 주장과 논거, 비교법적인 연구 결과만을 토대로 정부 형태를 바꾸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중립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자리에는 국회 동의권에 가중정족수를 적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전면적으로 국회에 넘기기보다 특정 인사에 대한 국회 동의 요건을 강화해 견제 장치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반면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누는 보다 적극적인 분권 모델을 제시했다. 박 평론가는 "대통령 권력은 외교·안보·통일에 두고 행정·안전·국토·교통은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돼 책임져야 한다"며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같이 가는 형태"라고 주장했다.

◇양원제·계엄 통제·균형발전까지…넓어지는 개헌 의제

권력구조 외에도 개헌 논의 테이블에 올라갈 의제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형태의 양원제 도입이다. 양원제 찬성론자들은 국회의 지역 대표성을 강화하고 충분한 숙의를 거칠 수 있는 정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상·하원으로 의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론도 있다. 박 평론가는 "양원제는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비례대표를 100명까지 늘리고 교섭단체 기준을 20석에서 낮춰 교섭단체 수가 늘어나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참정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정치권에서 논의됐던 비상계엄에 대한 국회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과 지역 균형발전을 헌법에 보다 명확하게 담는 방안 등도 개헌 의제로 거론된다. 헌법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 등 민주화 정신을 수록하자는 주장 역시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결국 개헌의 성패는 다양한 의제 가운데 여야가 어디까지 공통분모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모든 쟁점을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면 이해관계가 복잡해져 오히려 개헌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개헌을 현실화하려면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야당과 협상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헌법 개정에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 만큼 야당과 합의 없이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당이 개헌에 대한 의사가 있으면 반드시 국민의힘과 협의가 있어야 한다"며 "(협의 없는 개헌은)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니 국면 전환용으로 내세운 카드라는 의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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