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독일 동부의 작은 주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이는 유럽 민주주의에 있어 암흑의 날이다.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은 지난 6일 독일 작센안할트주 의회 선거에서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이 40%가 넘는 지지를 받고 승리하자 ‘독일 AfD의 승리는 유럽에 암울한 날. 극우를 막을 시간이 얼마 없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비록 구동독의 한 지역일 뿐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에서 극우 정당이 주정부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자국 내 현재 집권세력을 향해, 그리고 점점 오른쪽으로 옮겨가는 유럽을 향해 경고를 보내고 있는 이 사설은 걱정과 우려, 심지어 두려움까지 읽힌다.
이 두려움이 유럽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양극화, 청년세대의 소외, 실업, 이민자를 향한 적대 등 유서 깊은 일련의 난제들은 어느 한 국가만의 과제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갖고 있는 현안들이며 각 나라들은 일정 수준의 두려움을 감추고 있다.
그 두려움은 바로 파시즘의 광풍에 전 세계가 휩싸였던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세계대전이 마무리된지 80년이 더 지나도록 전세계 공동체에 이 두려움은 어디엔가 기생하고 있다.
2008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영화 ‘디 벨레’는 그 두려움의 실체를 일주일이란 시간 안에 압축해 보여준 작품이다. 독일의 한 고등학교의 프로젝트 수업 중 ‘독재정치’ 강좌에서 진행된 일주일 동안의 특별한 실험을 영화는 담고 있다.
‘무정부주의’ 수업 대신 얼떨결에 ‘독재정치’ 수업을 맞게 된 교사 라이너 벵어는, 독일에서는 독재자가 절대 다시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결심하길, 독재정치의 효율적인 수업을 위해 본인이 독재자가 되기로 한다.
‘디 벨레(The Wave)’라는 이름을 붙여 클래스 전체를 아예 특정 단체로 탈바꿈시키더니, 내친김에 복장도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로 통일시킨다.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 흰 셔츠를 입지 않은 한 아이는 은근히 소외를 당하고 결국 단체로부터 배척당한다.
아주 일부의 아이들이 배제 당하는 사이, 대부분의 아이들은 ‘디 벨레’ 공동체에 급속도로 동화되고 심지어 한 아이는 이 단체를, 그리고 독재자 역을 맡고 있는 벵어를 실제로 숭앙하기에 이른다.
수업의 일환으로 장난처럼 시작했던 이 실험은 마지막 수업에 이르러서 끔찍한 결말로 치닫는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일주일. 첫날에 “지랄맞은 나찌!”라고 일갈했던 이 아이들은 불과 며칠만에 나치식 경례를 따라하듯 ‘디 벨레 인사’를 나누고 ‘벵어 선생님(Herr)’라는 극존칭을 쓰게 된다.
사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일주일간의 실험이 그럴싸하게 보이진 않는다.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극우화되는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이 비극의 여정은 거칠고 급작스러우며 느닷없다.
특히 이 단체에 마치 자신의 생애를 통째로 걸어버린 것처럼 행동하는 팀의 행동이 유독 맹목적이다. 하지만 그는 평소 아이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소외되곤 했던 아이다. 팀은 ‘디 벨레’ 단체 활동을 통해 비로소 아이들과 대등한 친분을 맺고 강력한 소속감을 얻었다.
영화 ‘디 벨레’는 한 무리의 파시즘 실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 가능한 전형적인 현상을 상당히 압축해서 쉽게 보여주는 ‘우화’다. 급하게 느껴질 정도로 파국으로 질주하는 결말은 더욱 더 이 이야기를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하기 때문에 ‘우화’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비록 우화에서 그쳤지만 현실 세계는 그렇지가 않다. 유럽 곳곳에 파시즘의 작은 소용돌이가 슬며시 일고 있다. 아직은 비주류라 치부했던 이 소용돌이가 점점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애써 외면한 파시즘의 작은 ‘물결(The Wave)’은 급기야 독일 어느 한 지역 주의회 선거 결과에서 도드라진다.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독재정치’의 발아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더 가디언의 사설로 돌아가, “상당수의 국민은 더 이상 자신의 정치인들에게 대표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더 심각한 것은 주류 정치인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차악’의 논리를 내세운다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쓴 대목은 대한민국의 현실 정치를 강력하게 소환한다.
겉으로는 ‘정치는 국민이 한다’는 모토를 내건 여당이 압도적 의석수로 국정을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최악은 피하자’는 구호는 더 이상 지지자를 결집시키지 못한다.
가치는 멀어지고 실리가 피부에 와닿는 국민들이, 강력한 힘을 내세워 맹목적 소속감을 갖게 하는 세력에 현혹되지 않도록 현재 주류 정치인들은 무슨 수라도 내야 한다. ‘포용의 대륙’이었던 유럽은 점점 오른쪽으로 향하고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우리에게도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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