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고영욱이 SNS에 남긴 말이다. 그는 "아주 못된 인간들의 습성에 진절머리가 난다"며 "10년 넘는 시간 동안 자못 초연해졌다"고 했다.
2013년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영욱은 2015년 만기 출소했다. 전자발찌 부착과 신상정보 공개 기간도 모두 끝났다. 그런데 그가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말을 꺼낼 때마다 과거 범죄는 다시 현재형이 된다.
'법이 정한 죗값은 다 치렀는데, 나는 언제까지 계속 벌을 받아야 하나.'
비비의 '워터밤' 무대를 향해서는 "누가 더 많이 벗나 경쟁하는 대회인가"라고 했고, 이지혜의 집과 생활방식을 평가했고, 마약류 투약 혐의로 형을 선고받은 유아인의 복귀 기사에는 "마약은 괜찮고?"라고 썼다.
남을 평가하는 건 괜찮고, 자신을 향한 평가는 괴롭힘이냐는 반문이 나올 만하다. 다만 고영욱이 말한 '집단 괴롭힘'은 최근 자신에게 쏟아진 비판 몇 건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의 글을 시간 순으로 따라가면, 그 표현 뒤에는 출소 이후 10년 넘게 이어졌다고 느끼는 사회적 배제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
올해 1월 그는 "교화라는 게 사회로의 복귀를 돕기 위함일 텐데, 무조건 터부시하는 세상에서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라고 적었다. 7월에는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의 "어떤 사람도 법원이 내린 선고 이상의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공동체는 사람들을 처벌한다"는 대목을 인용했다.
8월에는 감정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난 평생 입 다물고 살아야 하나?"
"난 얼마나 더 형벌이 계속돼야 하나?"
그는 "치를 거 다 치르고 잃을 만큼 충분히 잃었다"고 했다. 며칠 뒤에는 방송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은 받아들이고 있다면서도 "그저 내 생각을 올리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고영욱의 속마음을 알 순 없다. 다만 그가 공개적으로 남긴 말들을 보면 과거 범죄가 현재의 자신을 설명하는 유일한 문장이 되는 데 대한 거부감을 엿볼 수 있다.
그의 SNS에서 유독 과거 인연이 자주 등장하는 점도 눈에 띈다. 장동민을 두고 "많이 컸네"라고 했고, 탁재훈에게 과거 도움을 줬던 일을 꺼냈고, 이민정에게는 자신이 고등학생 시절 처음 캐스팅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지혜와의 인연도 소환했다. 이 기억들은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연결한다.
'나는 원래 저들과 같은 세계에 있던 사람이었다.'
대중에게 고영욱을 설명하는 사건은 이미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사자의 기억에는 가수였던 시절도, 사람들과 어울렸던 시간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던 순간도 있다. 과거의 인연을 계속 불러내는 건 끊겨버린 자신의 인생을 그 이전의 자신과 다시 이어 붙이는 일일 수 있다.
SNS에서는 위치도 바뀐다. 오랫동안 고영욱은 평가받는 사람이었다. 플랫폼에서 활동이 제한될 때마다 그가 사회에 다시 등장해도 되는지 논쟁이 벌어졌다. 평가받는 위치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해명하거나, 사과하거나, 침묵하는 정도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순간 자리가 바뀐다. 비비의 무대를 욕하고, 이지혜의 생활 방식을 평가하고, 유아인의 복귀를 비판하고, 박위의 태도에 대해 논평한다. 계속 심사받던 사람이 심사위원석으로 옮겨 앉는 것이다.
그러던 중 소재원 작가가 등장했다. 소재원 작가는 지난 7일 고영욱의 SNS 행보를 강하게 비판하며 "숨어 살아도 부족할 판", "조용히 사시라"라고 일갈했다.
이에 고영욱은 "원하는 대로 내가 숨어서 살면 자네가 나 대신 장을 봐줄 텐가"라고 받아쳤다. 자신은 법적 처분을 모두 이행했다며 법적 대응까지 언급했다.
고영욱은 억울할 수 있다. 그의 입장을 따라가면 이렇다. 방송 복귀가 어렵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연예계로 돌아가겠다는 것도 아니다. SNS에 글 몇 줄 쓰겠다는데,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기사로 퍼 나르고 그때마다 과거 범죄까지 함께 소환한다. 글 하나 쓸 때마다 여론의 심판대에 올라 욕을 먹는다. 거기에 누군가는 아예 입을 다물고 살라고 한다. 고영욱의 눈에는 이것이 '집단적 따돌림'처럼 보였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고영욱은 소재원 작가를 향해 "누가 당신한테 내가 떠드는 얘기를 지켜보라고 권유했나?"라며 "나는 단지 내 생각을 올리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논리대로라면 소재원 작가 역시 자신의 생각을 SNS에 올린 것뿐이다. 차이는 있다. 고영욱이 다른 연예인들의 공개된 행동과 발언을 평가했다면, 소재원 작가는 고영욱을 직접 겨냥해 "조용히 살라"고 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발언은 '생각'으로, 자신을 향한 발언은 '악담'이나 '괴롭힘'으로 받아들이는 데서는 자신과 타인의 말을 바라보는 기준의 차이가 드러난다.
이 부분에서 편향 맹점(bias blind spot)을 떠올릴 수 있다. 사람들은 타인의 판단에 작용한 편향은 비교적 쉽게 발견하면서도 자신의 판단은 그보다 객관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내가 누군가를 비판할 때는 내 머릿속이 보인다. 이유가 있으니까 말하고,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이고, 악의는 없다. 반면 다른 사람이 나를 비판할 땐 그의 마음을 볼 수 없다. 내게 보이는 건 나를 향해 날아온 말뿐이다. 내가 공격적인 말을 할 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여기면서도, 날 선 말이 돌아오면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느끼는 이유다.
소재원 작가가 고영욱의 행보를 미성년자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비판하자 고영욱은 오히려 소재원 작가가 자신과 가족,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응수했다. 그리고 며칠 뒤 "부당하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고영욱의 입장에서 각각의 사건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 SNS 계정은 폐쇄됐고, 사회 복귀의 어려움을 호소했고, 글을 쓸 때마다 과거가 재소환됐고, 이미 죗값을 치렀는데 누군가는 여전히 그에게 "숨어 살라"고 한다. 각각 독립적인 비판이라도 당사자의 머릿속에서는 '사회가 계속 나를 밀어낸다'는 이야기로 묶일 수 있다.
그가 반복해 사용하는 '형벌'이라는 단어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법적 형벌에는 끝이 있지만, 타인의 기억이나 평가는 만료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 법이 더이상 그를 처벌하지 않는 것과 누군가가 그를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는 건 서로 다른 문제다.
그러던 중 고영욱은 최근 게시글에서 뜻밖의 말을 인용했다.
"누가 날 좀 싫어하는 게 뭐 어때서요?"
지금까지 고영욱의 글에서는 비슷한 질문이 반복됐다. 왜 내게만 엄격한지, 왜 내가 말하는 것조차 문제 삼는지를 물었다.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다른 질문을 꺼냈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게 그냥 두면 안 될까.'
법적 형벌은 끝나도 사회적 평가는 함께 끝나지 않는다. 고영욱이 느끼는 억울함도 그 시차에서 생겼을 수 있다. 자신에게는 이미 끝난 사건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그가 싸우고 있는 건 사람들의 미움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야 그 차이를 조금은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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