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정부의 사회연대경제 정책도 실행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등 개별 조직에 집중됐던 지원을 금융과 판로, 지역경제로 확장하는 게 핵심이다. 돌봄·주거·에너지 등 생활경제와의 연계도 강화한다.
사회연대경제는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입법 과제로 다뤄온 분야다. 2016년 20대 국회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을 대표발의했고, 법안이 임기 만료로 폐기되자 2020년 21대 국회에서 다시 대표발의했다. 장관 취임 이후에는 제도화를 넘어 정책 실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20개 관계부처 합동 종합계획을 마련했으며, 기본법 제정 이후 금융·판로·지역경제를 중심으로 후속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윤 장관은 최근 사회연대금융 국제심포지엄에서 "제도적 기반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제도화에 이어 현장에서 작동할 기반을 갖추는 데 정책의 무게를 두겠다는 것이다. 사회연대금융과 판로 확대, 지역 혁신모델, 해외시장 진출 등이 주요 수단이다.
분산정책 통합…지역경제 생태계 구축
정책 대상의 규모는 이미 작지 않다. 2024년 기준 국내 사회연대경제 조직은 3만5000여 개에 이른다. 고용 인원은 36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기업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8%다.
정부가 지난 6월 마련한 '사회연대경제 발전 종합계획'은 흩어진 정책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성장·경쟁력 지원, 지역 혁신 생태계 조성, 제도·인프라 혁신 등 3대 전략이 중심이다. 개별 조직에 집중됐던 지원을 지역 단위 생태계 조성으로 확장하고 돌봄·주거·에너지·농어촌 등 생활 분야와 연계한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은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법 제7조에 따라 행안부 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과 협의하고 지방정부 의견을 수렴해 5년마다 사회연대경제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부처별 시행계획과 시·도별 계획도 기본계획과 연계한다.
지역 단위에서는 지방정부와 사회연대경제조직, 공공기관, 기업, 대학 등이 협력하는 구조를 구축한다. 개별 기업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지역 문제 해결과 일자리·소득 창출을 함께 추진하는 방식이다.
실제 사업도 시작됐다. 정부는 올해 사회연대경제 혁신모델 17개를 선정했다. 지역의 특성과 자원을 활용해 지역 문제를 사회연대경제 방식으로 해결하는 사업이다. 충남 아산에서는 지역 먹거리와 관련 기업, 사회연대경제조직을 연계한 어르신 통합 식사·돌봄을 추진한다. 제주에서는 잉여 농산물과 관광을 결합해 지역소득을 높이는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전남 신안군 정원수사회적협동조합은 지역 안에서 생산과 소득을 연결한 사례다. 주민들이 생산한 정원수를 신안군의 '1섬 1정원' 사업에 공급한다. 행안부 우수사례 자료에 따르면 누적 80억원의 주민 소득을 창출했다. 2023년 이후 군 예산 절감액은 506억원으로 집계됐다.
사회연대금융 본격화…판로·성장 기반 확충
윤 장관이 정책 실행수단으로 특히 강조하는 분야는 사회연대금융이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도 담보나 재무실적이 부족한 사회연대경제조직은 기존 금융시장에서 성장자금을 확보하는 데 제약이 있다는 게 행안부의 판단이다.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은 사회연대금융 전담기관을 지정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법 제18조에 따라 행안부 장관은 사회연대금융 기반 조성과 중개기관 육성·지원을 위한 전담기관을 지정할 수 있다. 전담기관은 투자·융자·보증과 중개기관 육성, 지역·민간기금 조성 지원 등을 맡는다.
정부의 재정 투입도 확대한다. 사회연대경제 관련 예산은 2026년 약 1000억원에서 2027년 정부안 약 30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를 성장·경쟁력 강화와 지역 혁신 생태계 조성, 제도·인프라 개선 등에 투입한다.
이 가운데 2027년 정부 예산안에는 사회연대금융 전담기관 관련 예산 413억원이 반영됐다. 금융 지원 방식도 민간자금이 함께 들어오는 구조로 확장한다. 공공재원을 마중물로 민간 사회투자기관과 은행·상호금융 등의 참여를 유도한다. 회수된 자금은 다시 사회연대경제조직에 공급한다.
판로는 공공구매 중심에서 민간시장으로 넓힌다. 대규모 유통채널과 소셜벤더를 활용하고 민간기업의 사회공헌·ESG 사업과 연계한다. 성장 단계에 따라 국내외 시장 진입도 지원한다.
대구 무한상사 사회적협동조합은 판로 확보가 기업 성장으로 이어진 사례다. 56개 사회연대경제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매년 약 180개 공공기관과 계약을 맺는다. 매출은 2017년 3억원에서 2024년 96억원으로 늘었다.
정부는 사회연대경제의 경제적 규모를 키우는 목표도 제시했다.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에서 사회연대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7%, 고용 비중을 6%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연 매출 100억원 또는 고용 100명 이상인 선도기업 1000개 육성도 목표로 잡았다.
생활경제 연계…KOTRA·ODA로 해외 진출
금융과 판로를 통해 성장 기반을 확충하는 동시에 사회연대경제의 적용 범위도 넓힌다. 돌봄과 주거, 에너지, 농어촌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가 대상이다.
의료·요양을 연계한 통합돌봄에 사회연대경제조직의 참여를 확대한다. 사회주택 공급과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도 추진한다. 농어촌에서는 사회적농장과 서비스공동체 등을 활용해 부족한 생활서비스를 보완한다.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참여해 의료·돌봄·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민이 직접 출자해 태양광발전소를 운영하고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에너지협동조합도 지역 단위 사회연대경제 모델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축적한 모델은 해외시장과 국제협력으로 연결한다. 국제노동기구(ILO), 유엔 사회연대경제 태스크포스(UNTFSSE),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과 정책 교류를 확대한다. 국제 민관협력 플랫폼인 GSEF를 통한 지방정부·민간조직 간 네트워크 확대도 추진한다.
사회연대경제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도 강화한다. KOTRA를 통한 수출 지원과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연계를 추진한다. 해외 전시회와 수출 상담, 투자유치 등을 연계하고 기업과 시민사회의 국제개발협력 사업 참여도 지원한다.
국제사회에서도 사회연대경제의 제도화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은 2023년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활성화' 결의안을 채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2년 사회연대경제·사회혁신 권고안을 발표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같은 해 양질의 일자리와 사회연대경제에 관한 결의안을 내놨다.
프랑스는 2014년 사회연대경제법을 제정했다. 영국은 사회적가치법, 이탈리아는 제3섹터법 등을 통해 관련 정책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정부는 해외 정책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국내 사회연대경제조직의 해외시장 진출도 지원할 계획이다.
기본법 제정 이후 정책의 초점은 후속 실행으로 옮겨가고 있다. 행안부는 법 시행에 맞춰 5년 단위 사회연대경제 발전 기본계획을 마련한다. 사회연대금융 전담기관 지정과 지역·민간기금 활성화, 판로 확대도 순차적으로 추진한다.
윤 장관도 지방정부와 후속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지역에서 성과가 확인된 혁신모델을 다른 지방정부로 확산하고 KOTRA 수출 지원과 ODA 연계 등 해외 진출 사업도 관계부처와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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