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직무 정지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되어 박지향 이사장이 업무에 복귀하는 사태로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한 관심이 새삼 일고 있다. 그런데 지난 3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 방안'에 따르면 교육부 소관 역사 국책 연구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고전번역원이 통합되어 '한국학역사고전연구원'(가칭)이 설립될 예정이라 한다. 이번에 통합되는 기관들은 애초부터 필요한 기관인가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았지만 정비를 한다고 하니 몇 마디 하고자 한다.
새롭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기관은 동북아역사재단이다. 이 기관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2004년 설립된 고구려연구재단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체되고 중국의 역사 침탈에 더하여 일본의 역사 왜곡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되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가 아무런 의구심 없이 우리 민족이 세운 국가로 인식해 온 고구려와 발해사를 시작으로 하여 전체 한국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이 이러한 무모한 짓을 하는 이유는 현실의 국제관계가 과거의 역사에 의존하고 그러한 역사가 현실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도발에 대응하라고 설립된 동북아역사재단이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살펴보면 널리 알려진 대로 2008년부터 46억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에 독도가 빠졌는데 이는 한국 국민이면 누구나 지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또한 2012년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북한 급변 사태 시 중국의 개입 가능성 등을 분석하기 위한 보고서(‘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영향, 한반도 내 역사적 경계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주장’)를 작성하면서 한국의 의견을 문의하였을 때 재단은 ‘한·중 경계의 역사적 변화에 대한 한국의 시각’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제출했는데 이 자료에는 중국의 주장을 수용하는 내용이 상당 부분 들어 있었다. 심지어 재단은 모 미국 대학에 거액의 돈을 주고 상고사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한군현(漢郡縣)’에 관한 소위 ‘식민사관’ 쪽 주장을 홍보하는 영문 책자의 발간을 의뢰하기도 하였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이러한 행태는 우리 사회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였다. 박지향 이사장은 최근 모 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주권과 영토 수호에 좌우는 없다. 독도를 수호하고 동북공정에 맞서는 재단이 정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국경 문제를 언급하였다. 박 이사장에게 묻고 싶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언제 국경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가졌는가? 엄밀히 말하면 그간 그나마 의견을 낸 것도 중국이나 일본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책 연구기관 운영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기관의 임무와 책임을 명문화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기관의 존폐를 검토하는 것이다. 일반 대학이나 대학원은 연구자들이 각자의 소신에 따라 연구하는 곳이지만 국책연구기관은 분명한 정책목표를 갖고 연구하는 곳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 쪽에서도 각오를 새로이 해야 한다.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을 이야기하면 일부에서는 ‘중국과 외교적 마찰이 우려된다’는 조선시대에나 나올 법한 한심한 소리를 하는데 새 기관은 강력하고도 분명하게 중국의 논리를 반박해야 한다.
중국의 역사 침탈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 기능은 통합 이후 더욱 강화되어야 하며 특히 동북아 역사 전쟁에 있어 컨트롤타워로서 역할과 기능이 재정립되는 것이 긴요하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데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즉 고구려, 발해 등 역사가 누구의 역사인지, 즉 ‘귀속’ 문제를 따지는 측면과 고구려, 발해 등 강역과 같이 주요 역사적 이슈를 따지는 측면이 있는데 이를 분리하여 대처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중국의 황당한 주장에 대한 반박 논리가 이미 충분하므로 적극적으로 우리 입장을 대외적으로 알리면 된다. 이 과정에서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러시아 학계와 교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역사의 귀속 문제 외에 주요 역사적 이슈에 관해서는 우리 내부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탓에 이제까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대외적으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새 기관은 주류 강단사학에 휘둘리지 말고 주요 쟁점에 대해 우리 내부 입장이 정리 내지 수렴되도록 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여야 한다. 질서 있고 치열한 학문적 토론의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하여 우리 내부 입장이 가급적 통일되도록 해야 한다. 소위 주류 강단사학계가 ‘학문 권력’을 지키기 위해 토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되며, 동시에 비주류 학자들 또는 재야사학계가 주류 의견에 대해 정제된 토론을 하기보다는 ‘성토’로 일관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모든 기관이 그렇듯이 기관의 장이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새로 출범하는 기관의 장은 무엇보다도 역사문제에 대한 의식이 투철해야 하겠다. 그렇다고 특정 방향성이 지나친 학자는 연구 방향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 수 있으므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 역사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고, 역사 전쟁의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이에 따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조직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이 있는 정치인 또는 행정가를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대 법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외교관 연수과정 수료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러시아 공사 ▷상명대 글로벌지역학부 초빙교수 ▷현 유라시아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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