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피지컬 AI를 향한 일본의 도전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의 일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산업기술종합연구소, 그리고 공작기계 세계 2위인 DMG모리정기와 건설기계의 거물 코마쓰 등과 손을 잡고 피지컬 AI를 육성하기 위한 전례 없는 관민 합동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전국의 제조 현장에서 가동되는 수많은 산업용 로봇, 건설기계 그리고 공작기계에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공통 ID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파편화되어 있던 제조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대량 수집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집된 제조현장의 데이터는 산업용 피지컬 AI개발에 중요한 자원으로 기능한다. 미·중이 주도하는 범용 생성형 AI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일본은 디지털 공간의 텍스트가 아닌 자신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와 제조 현장 데이터를 무기로 내세웠다. 사람이 직접 조종하던 기계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기계 스스로 상황을 인지하고 움직이는 피지컬 AI 패권을 쥐겠다는 국가적 승부수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관민 합동 프로젝트는 구체적으로 어떤 틀로 움직이는가. 그 흐름은 명확한 역할 분담과 선순환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먼저 DMG모리와 코마쓰 등이 주도하여 협력사들의 공작기계와 산업용 로봇 등 약 1,600대 규모의 장치에 공통 ID를 부여한다. 이를 통해 각 기계의 가동 상황, 온도, 진동, 가공 조건 등의 방대한 물리적 현장 데이터를 산업현장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수집한다. 다음으로 국가 기관인 산업기술종합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서로 다른 제조사의 장비에서 올라오는 데이터의 형식과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고 철저한 익명화를 거쳐 체계적인 데이터 세트로 구축한다. 이렇게 정제된 고품질의 실세계 물리 데이터는 소프트뱅크, NEC, 혼다, 소니 그룹 등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일본의 정부 주도 국산 AI 개발 회사인 노에트라에 제공되어 고성능 피지컬 AI 모델의 학습 데이터로 쓰인다. 마지막으로 개발된 AI는 다시 데이터 제공 기업 및 현장으로 피드백된다. 예컨대 코마쓰는 개발된 AI가 생산 효율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DMG모리는 기계의 고장이나 이상을 조기에 감지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데이터를 제공한 협력사들 또한 각자의 생산현장에서 개발된 AI를 활용하여 다양한 편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원대한 구상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두고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왜 그럴까? 첫 번째 이유는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신산업 육성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뒤처진 AI 경쟁력을 만회하기 위해 3,900억 엔의 보조금을 지원하여 노에트라를 설립하였다. 노에트라에는 소프트뱅크, NEC, 혼다, 소니 그룹 등 일본의 주요 기업들이 핵심 축으로 참여하였다. 미국이나 중국의 빅테크 주도 AI에 맞서기 위해서 일본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일본의 대표적 기업들이 참여해 만든 AI 개발 기업인 것이다. 그러나 노에트라에 대한 관련 뉴스나 유튜브 영상의 댓글 민심은 쌀쌀하다. 이미 너무 늦었다는 지적과 함께 전 세계 빅테크들의 막대한 규모의 자금력에 비해 수천억 엔의 정부 지원이나 기업들의 투자는 투자 규모 면에서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또한 과거 일본의 실패한 관제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결국 공적자금을 도중에 낭비하거나 관료들의 낙하산 및 이권 챙기기용 눈먼 돈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뿌리 깊은 불신이 가득하다. 특히 정부 지원금을 받는 소프트뱅크가 한편으로는 해외의 오픈AI에 수십조 원대 투자를 쏟아붓는 행태를 두고 국가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 것이 맞느냐는 의구심도 끊이지 않고 제기된다.

이러한 우려와 더불어 일본경제신문은 데이터 수집과 활용 단계에서의 여러 가지 난제들을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공장의 가공 노하우와 현장 데이터는 제조업체들에게 생존과 직결된 블랙박스이자 영업 비밀이다. 과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이 핵심 자산을 기꺼이 내놓을지 의문이다. 파낙과 같이 이미 자체 개발력을 가진 대기업에게는 참여 유인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참여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수익 창출 기회나 강력한 보조금 제도가 동반되지 않으면 동력을 잃을 수 있다. 아울러 정밀 기계의 가동 데이터가 중앙으로 집약되는 순간, 이는 해외 세력이나 해커들의 맛있는 표적이 되므로 철저한 익명화와 국경을 넘는 기술 유출을 막아낼 강력한 보안망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프로젝트 자체가 큰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이처럼 경제산업성이 주도하는 일본의 AI 개발 생태계를 둘러싸고 이미 늦었다는 비판, 세금 낭비와 이권 챙기기라는 불신, 규모의 경제에서 투자 규모에 한계가 있다는 우려 등 수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이 모험을 강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전 세계의 공장과 건설·제조 현장에서 사용되는 로봇, 공작기계, 건설기계의 물리적 데이터와 하드웨어 제어 기술에 대한 일본 특유의 강정이 있기 때문이다. 범용 생성형 AI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과 중국에 정면으로 승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이 전 세계에서 가장 탄탄하게 다져놓은 실세계 제조업 인프라와 물리적 기계 장치의 작동 데이터를 활용하여 AI를 개발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구 감소와 극심한 구인난에 시달리는 일본 사회에서 로봇과 공작기계가 스스로 일하는 피지컬 AI 영역만큼은 일본이 절대 놓칠 수 없고 놓쳐서도 안 되는 미래 생존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프로젝트의 성패는 정부가 얼마나 매력적인 인센티브와 철저한 보안 루틴을 제공할 것인지, 각자도생하던 민간 기업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얼마나 단단한 연합 세력으로 뭉칠 수 있는지에 있다. 피지컬 AI를 향한 일본 제조업의 새로운 도전이 대중의 냉소를 극복하고 반전의 카드로 부상할지 주목해 보자.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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