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쇠퇴하는 지방도시, 벳푸에서 찾은 작은 가능성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인구 감소와 고령화, 청년층 유출은 한국과 일본의 지방도시가 공통으로 직면한 문제다. 지방에 공장이나 공공기관, 대학 하나를 유치하면 지역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많지만 하나의 시설이나 사업만으로 장기적인 흐름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인구와 산업이 대도시로 집중되는 구조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외부 기관을 유치하는 것만으로 지역경제의 자생력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부의 사람과 수요를 지역 안으로 끌어들이고 이를 지역의 지속적인 활력으로 연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지방의 인구 감소와 상권 쇠퇴를 경험했고 관광·대학·문화·이주 정책 등을 활용한 다양한 지역 활성화 실험을 진행해 왔다. 그중 최근 필자가 방문한 오이타현 벳푸시는 관광과 국제대학을 중심으로 외국인의 방문과 소비, 지식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역 활성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지방 도시의 사례이다.

벳푸시는 규슈 북동부에 자리 잡은 일본의 대표적인 온천 도시다. 벳푸만과 산지 사이에 길게 형성된 시가지 곳곳에서 온천 증기가 피어오르며 지역마다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온천지들이 분포한다. 숙박업과 음식업, 소매업, 운수업 등 관광 관련 서비스업이 지역경제의 중심을 이루며 국내외 관광객의 소비가 도시를 지탱한다. 최근 벳푸를 찾은 관광객은 약 700만명이 넘었고 이 중 외국인 관광객도 약 45만명에 달했다. 상주인구가 11만명인데 5% 넘는 비율이 외국인이다. 일본 전체로 외국인 거주자 비율이 3%에 미치지 못하는 점을 고려하면 벳푸의 외국인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이다. 이곳 벳푸시의 거리 곳곳에서 젊은 외국인의 모습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만큼 외국인이 많이 찾고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관광객이 많다고 해서 도시경제 전체가 활력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벳푸역 근처를 걸어보면 음식점과 상점이 상당히 많으나 여전히 규모가 작고 건물과 시설이 노후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상가와 좁은 골목, 소규모 음식점이 온천 도시 특유의 정취를 만드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규 투자 부족, 상권의 정체, 영세 자영업 중심의 산업구조라는 지방 경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풍경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벳푸가 다른 일본 지방 도시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장면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내를 걷거나 버스를 타다 보면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젊은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된다. 고령자의 비중이 높고 청년층의 존재감이 약한 일반적인 일본 지방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오래되고 다소 쇠퇴한 온천 도시의 모습과 국제적인 젊은 인구의 활기가 같은 공간에 공존한다는 점이 벳푸의 독특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벳푸의 버스 안에서 100세에 가까운 온화한 할머니 옆에 20대의 젊은 흑인 여성이 함께 앉아 있는 장면은 여전히 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2000년에 개교한 한 대학이 있다.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 APU가 그것이다. APU에는 일본 학생과 국제 학생이 함께 공부하며 현재까지 누적 170개 국가와 지역 출신의 학생들이 거쳐 갔다. 대학 설립이 논의되던 1990년대에는 오히려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외국인이 갑자기 많아지면 치안이 나빠지거나 지역사회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외국인을 일상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지방 도시에서 이러한 반응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대학이 문을 열고 매년 새로운 유학생들이 벳푸에 들어와 생활하면서 지역사회의 인식도 점차 바뀌었다. 유학생들은 지역 행사와 홈스테이, 자원봉사, 문화 교류 활동 등에 참여했고, 주민들도 외국인을 막연한 불안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학생과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초기의 경계심은 다양한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교류 의지로 상당 부분 전환되었다. 벳푸시청에서 외국인 정책을 담당하는 담당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이 점에 대해 매우 높은 긍지를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 유학생의 존재는 이제 지역의 일상적인 풍경이요 나아가 이 지역의 자산이 되었다고 자부하였기 때문이다.

유학생들은 주거와 교통, 음식점과 소매업에 비교적 안정적인 수요를 제공한다. 관광객이 며칠 머물다 떠나는 방문자라면 유학생은 수년 동안 지역에서 생활하는 주민에 가깝다. 이들이 원룸을 임차하고 버스를 이용하고 식당과 상점을 찾는 과정에서 지역경제에 지속적인 소비가 발생한다. 또한 지역 주민에게 외국어와 다른 문화, 해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다. 이들이 벳푸의 인구 감소를 근본적으로 막는 것은 아니지만 고령화된 도시에 젊음과 문화적 다양성, 국제적인 분위기를 공급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역대학이 지방 쇠퇴의 만능 해결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도시가 활력을 완전히 잃지 않도록 하는 하나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은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APU는 일본인 학생의 등록금과 일본 내 기부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외국인 학생에게 장학금과 쾌적한 캠퍼스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APU의 역할은 유학생을 벳푸로 데려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학의 아웃리치 관련 조직은 학생과 교수, 기업, 지방자치단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기업이 실제로 안고 있는 경영상의 과제를 제시하면 여러 나라 출신의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문제를 분석하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활동도 진행한다. 해외시장 진출, 외국인 관광객 대응, 상품과 서비스 개선, 지역 관광 콘텐츠 개발 등이 주요 주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의 의미는 단순히 학생들에게 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다. 인력과 정보가 부족한 지방 중소기업은 해외시장에 대한 지식이나 젊은 소비자의 관점을 확보하기 어렵다. 반면 APU 학생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소비 경험이 있다. 대학이 이들과 지역기업을 연결하면 기업은 자체적으로 얻기 어려운 국제적 시각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다. 대학이 단순한 교육기관이나 소비 인구의 공급처를 넘어 지역혁신의 중개자로 기능하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산학협력이 곧바로 지역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수업이나 프로젝트에서 좋은 제안이 나와도 실제 투자와 사업화, 매출 증대와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졸업생의 지역 정착도 중요한 과제다. APU가 매년 젊고 국제적인 인재를 벳푸로 불러들이고 있지만 졸업생 상당수는 더 나은 일자리와 경력 기회를 찾아 후쿠오카나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로 이동한다. 대학이 젊은 인구를 일시적으로 유입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들을 지역에 정착시키고 지역산업의 혁신 주체로 전환하는 단계까지는 아직 과제가 많다.

벳푸는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한 도시는 아니다. 노후한 상권과 영세한 서비스업, 낮은 생산성과 제한된 일자리라는 문제는 여전하다. 지역대학 하나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관광과 국제대학을 통해 외부의 사람을 지속적으로 불러들이고 대학이 학생과 기업을 연결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쇠퇴해 가는 모든 지방도시를 거대한 개발사업으로 재생할 수는 없다. 벳푸의 경험은 이러한 거대한 개발사업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을 통해 새로운 사람과 수요, 지식을 지역 안으로 계속 유입시키고 지역 쇠퇴를 완화하는 다른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