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기업 총수와 경영진 증인 채택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재계·학계 등을 중심으로 기업 경영상 판단이 국감에서 다룰 문제인지 의문스럽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감이 문제 분석과 해결을 위한 공론의 장이 아닌 총수·경영진을 압박하는 자리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다. 반도체, 방산 등 국가 핵심 제조업까지 증인 채택 대상으로 오르내리면서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에 대한 기업의 부담이 한층 커질 전망이다.
28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정무위원회는 전체 회의를 열고 국정감사 증인·참고인을 채택했다. 다음날에는 교육위원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증인·참고인 채택이 예정돼 있다.
국회는 매년 수십~수백 명을 기업 관련 증인·참고인으로 신청했다가 철회하는 관행을 반복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200명 넘는 기업 증인·참고인을 신청·채택했지만 재계 안팎에서 크게 반발하자 상당수 철회한 바 있다.
특히 기업 총수들은 계열사에 약간 문제만 발생해도 국감 증인 신청이 빗발친다. 지난해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등에 대해 증인 신청이 이뤄졌다가 철회됐다.
정치권 일각에선 총수 망신주기성 국감 소환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기업 총수를 타깃으로 한 증인 신청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국방위원회는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한화그룹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15.89%를 확보한 것과 관련한 내용을 묻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KAI는 엄밀히 말해 정부 기관이 대주주일 뿐 상장된 민간 기업이다. 김 부회장에 대한 증인 신청은 민간 기업 간 인수합병에 정치권이 압박을 가하는 모습으로 비칠 우려가 크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하며 대한항공 기내식에 국산 농수산물이 얼마나 사용되는지 묻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통합 진에어(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본사 유치와 관련해 국토교통위원회 증인 신청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통합한 메가 캐리어를 안착시켜야 하는 조 회장으로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21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선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과 최태원 회장에 대한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 간 설전이 벌어졌다. 두 회장에 대한 증인 신청은 무산됐지만 야당이 3대 메가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정부 압력이 있는지 밝혀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만큼 종합감사 때 추가 증인 채택 가능성이 남아 있다. 기후환노위도 정기선 HD현대 회장에 대해 증인 소환을 추진하다가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왕수봉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업장에서 다수 사람이 사고로 죽는 문제는 분명 국감에서 따져볼 수 있는 것"이라며 "반면 기업 간 인수합병이나 경영권 분쟁 같은 이슈는 주주총회 등 자본시장 메커니즘에 맡겨두는 게 옳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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