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항소심 선고를 앞둔 오세훈, 누가 흔드는가

김두일 선임기자
김두일 선임기자
 
'받)10.09 금 저녁 10시 서울시장 오세훈 사퇴 기자회견.'
한 줄이었다. 이유도, 장소도, 출처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받았다는 표시만 붙었다. 그러나 현직 서울시장의 거취를 단정한 이 짧은 글은 온라인과 메신저를 타고 퍼졌고, 서울시청 출입기자들에게까지 알려졌다. 서울시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며 사이버수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3일 항소심 선고를 기다리는 오 시장에게 느닷없이 사퇴 일정이 붙은 것이다.
 
기자들에게 전달된 공지는 오히려 신중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므로 공유와 보도에 각별히 유의해 달라는 안내였다. 이 공지를 사퇴설에 동조한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그 공지가 필요할 만큼 근거 없는 말이 번졌다는 사실이다. 누가 썼는지 모르는 문장이 해명과 경고를 요구하는 정보가 됐다. 작성자는 보이지 않고, 당사자만 설명의 책임을 떠안았다.
 
시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 짧은 글이 떠돌기 이틀 전인 7일 서울고법 형사7부는 명태균씨에게 무상 여론조사를 제공받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암묵적인 의사 합치를 인정할 증거가 없고, 정치적 조언의 수단으로 제공된 여론조사를 재산상 이익으로 환산해 정치자금법상 기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의 유죄 판단이 뒤집혔다.
 
구회근 부장판사가 이끄는 이 재판부는 오 시장의 항소심도 심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윤 전 대통령의 무죄가 오 시장의 무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무상 제공과 비용 대납이라는 사건의 구조도, 당사자의 인식과 관여를 입증할 증거도 각각 따져야 한다. 다만 명태균 관련 사건에서 1심 판단이 항소심에서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오 시장 역시 법원의 최종적인 사실 판단을 기다릴 이유가 있다.
 
그 직후 사퇴설이 등장했다. 두 사건의 시간적 인접성은 질문을 낳는다. 그러나 질문과 입증은 다르다. 오 시장의 무죄 가능성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소문을 만들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다. 여야의 경쟁자든 주변 인사든,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포자로 지목할 수 없다. 근거 없는 소문을 비판하면서 근거 없는 배후론을 보태면 논리의 토대가 무너진다.
 
그렇다고 진원지를 모른다는 이유로 이 일을 가볍게 넘길 수도 없다. 정책에 대한 비판과 사퇴 일정의 날조는 다르다. 전자는 공개된 사실과 논리로 다툴 수 있다. 후자는 출처를 감춘 채 당사자의 정치적 생명이 끝났다는 인상을 심는다. 선고를 앞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법정에서 다투는 쟁점을 설명할 필요도 없이, '곧 물러날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책임도 살펴야 한다. 사퇴설이 돌았다는 보도와 사퇴한다는 보도는 분명히 다르다. 서울시의 부인과 수사 요청 방침을 전한 기사까지 허위정보에 동조했다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그러나 해명 기사라고 전달 효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제목에서 '오세훈 사퇴'를 크게 내세우고 부인을 뒤로 밀었다면, 독자는 해명보다 사퇴라는 단어를 먼저 기억할 수 있다. 검증하려던 보도가 소문의 확성기가 되는 역설이다.
 
출처 없는 글일수록 보도의 문턱은 높아야 한다.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는 것은 사실의 증거가 아니다. 확인할 취재원도 없이 받은 글이라는 '받)'은 표시만 붙인 문장을 공적인 정보로 취급할 이유는 없다. 언론이 물어야 할 것은 회견이 몇 시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했느냐다. 허위를 부인하는 보도라면 그 부인이 제목에서도 명확해야 한다.
 
서울시가 밝힌 수사 요청 방침은 실제 접수와 후속 조치로 확인돼야 한다. 최초 작성자와 단순 전달자를 구분하고, 유통 경로를 추적해야 한다.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다면 밝혀야 하고, 없었다면 그 또한 분명히 해야 한다. 수사는 정치적 추측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사실을 가리는 절차다.
 
오 시장은 비판받을 수 있다. 재판의 판단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거취에 관한 논쟁 역시 확인된 사실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법원의 선고에 앞서 출처 불명의 한 줄이 시장의 퇴장을 대신 발표하는 일은 정상적인 정치가 아니다.
 
9일 밤 10시라는 시간표에는 근거가 없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간표가 아니라 그 한 줄의 출처다. 오세훈을 누가 흔드는가. 답은 의심의 크기가 아니라 확인된 사실에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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