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자 구금·中 자본 유치…쿠릴열도 둘러싼 러일 갈등 격화

  • 푸틴 첫 방문 뒤 미사일 훈련·전승기념비…中 대표단도 에토로후 시찰

  • 日, 에너지 조달·대화 통로 유지 고민…강경 조치엔 제약

쿠릴열도 지도사진게티이미지뱅크
쿠릴열도 지도[사진=게티이미지뱅크]



러시아가 사할린에 주재하는 일본인 기자를 간첩 혐의로 구금하고,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쿠릴열도의 에토로후(러시아명 이투루프)섬에 중국 자본 유치를 추진하면서 러일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8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첫 에토로후 방문에 이어 미사일 훈련과 전승기념비 설치로 일본을 자극해 왔다.

최근 마찰의 발단은 2달 전인 8월 13일 푸틴 대통령의 첫 에토로후섬 방문이었다. 쿠릴열도 남단의 에토로후·쿠나시리·시코탄섬과 하보마이군도는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일본이 '북방영토'라 부르며 반환을 요구하는 지역이다. 일본 정부가 강하게 항의했지만 러시아는 같은 달 20일 에토로후 주변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을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9월 4일에는 하바롭스크에 옛 소련군 병사가 일본을 상징하는 국화 문장이 새겨진 표석을 소총으로 부수는 모습을 담은 전승기념비를 세웠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철거를 요구했다.

대립은 이달 들어서도 이어졌다. 일본은 지난 2일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추가 제재로 러시아의 제재 회피용 '그림자 선단' 선박 35척에 보험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군사 관련 33개 단체와 9명도 자산 동결 대상에 추가했다. 다카이치 내각 출범 후 첫 대러 제재다. 러시아 외무부의 마리야 자하로바 대변인은 5일 일본이 국익보다 미국·유럽과의 연대를 택해 자주성 없는 외교를 펴고 있다고 비판하며 일본이 중시하는 분야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사할린주 정부는 13일 중국 헤이룽장성 정부 관계자와 기업인들이 에토로후섬을 방문했다고 발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이들은 관광시설 건설 후보지를 둘러보고 호텔 사업과 성게·해삼 양식에 관심을 보였다. 러시아 측은 투자 기업에 일부 세금을 최장 20년간 면제해 준다며 중국 측에 투자를 권유했다. 구체적인 방문 날짜와 참가 인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제3국 대표단이 북방영토를 찾는 것은 이례적이다. 러일은 2016년 정상회담에서 이들 섬의 공동 경제활동에 관한 협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하고, 이듬해 양식·관광 등 사업 후보를 정했지만, 협의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중단됐다. 이후 미국·유럽과 일본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을 키웠고, 정치적으로도 다카이치 정권을 비판해 온 중국에 동조해 왔다. 앞으로 러시아가 중국과 보조를 맞춰 대일 강경 기조를 한층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도 러시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의 에토로후섬 방문을 사실상 지지했다. 중국 외교부는 당시 "세계 반파시즘 전쟁(2차 대전)의 승리 성과는 반드시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중러는 다카이치 정권의 방위정책을 '신형 군국주의'라고 비난하며 일본 주변에서 군사적 압박도 이어왔다.
 

러, 日 기자 간첩 혐의로 구금


이런 가운데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13일 홋카이도신문 유즈노사할린스크 지국 기자를 간첩 혐의로 구금했다고 발표했다. FSB는 이 기자가 일본 정보기관의 지시로 쿠릴열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된 병사와 지원병의 수 등 정보를 수집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출국 전날 구금된 기자는 모스크바로 이송됐으며, 모스크바 법원은 12월 12일까지 두 달간 구금을 허가했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러시아 형법상 징역 10~20년에 처할 수 있다. 주러 일본대사관과 홋카이도신문은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2019년 군사기밀 입수 의혹으로 억류된 교도통신 기자는 약 5시간 뒤 풀려났고, 2022년 일본 영사관 직원은 일시 억류 후 추방됐다. 닛케이는 이번 사건이 오히려 2023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구금과 공통점이 많다고 짚었다. 당시 간첩 혐의로 구금돼 모스크바로 이송된 WSJ 기자는 16개월 만에 미국과 러시아의 죄수 교환으로 석방됐다. 닛케이는 이번에 구금된 기자가 러시아 외무부에 정식 등록된 특파원인 만큼 중앙 당국의 의중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구금을 러시아가 강화하는 대일 압박의 일환으로 봤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13일 일본이 기자를 이용해 러시아 안보를 해치는 정보를 모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이 유일한 사례가 아니다"라고 덧붙이며 일본에 대러 정책 재검토를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의 반러 노선과 재무장 움직임 탓에 양국 관계가 후퇴했다는 주장도 폈다.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 등은 일본 수사당국이 랜섬웨어 조직의 핵심 조직원으로 지목된 러시아 국적 남성을 붙잡아 독일에 넘긴 직후 이번 구금이 이뤄졌다며 두 사건을 연결 짓기도 했다.

일본이 당장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다카이치 총리는 13일 중국 대표단 방문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며 일본의 입장에 따라 적절히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러시아 관할권을 전제로 한 분쟁 지역 출입과 제3국의 경제활동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 푸틴 방문 때도 일본은 강경 조치를 유보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201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대통령의 쿠나시리 방문 때는 이틀 만에 주러 대사를 일시 귀국시켰지만, 8월에는 러시아의 태도를 바꿀 효과가 적고 사태만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으로 소환을 접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상도 지난달 "대사 소환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러시아산 에너지 조달과 대화 통로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 중 약 10%는 러시아산이며, 일본 기업들은 러시아 극동의 석유·천연가스 개발 사업인 '사할린2'에도 지분을 갖고 있다.

요미우리는 중동 정세가 악화하자 경제산업성 당국자들이 지난 5월 러시아를 찾아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확대를 타진했다고 전했다. 일본은 8월 대학생 등의 러시아 단기 파견도 7년 만에 재개했다.

쓰루오카 미치토 게이오대 교수는 닛케이에 "LNG 공급을 러시아에 의존한다는 이유로 영토나 주권 문제에서 필요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본말전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 대통령이 북방영토를 방문해도 일본의 별도 조치가 없다면 "앞으로 방문의 문턱은 낮아진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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